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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 | [특집]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전북도립국악원 민간위탁 교육·연구는 안된다? 명분이 약한 도립국악원 민간위탁…박물관 보는 시각이 필요
글 장세길 문화저널 기자(2004-02-17 15:20:35)
해질녘부터 다음날 해뜰녘까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전주시 경원동)는 요즘 대금 배우는 재미가 솔솔하다. 밤새 일해도 손에 쥐어지는 돈이라곤 혼자사는 살림을 겨우 꾸릴 정도. 한달 부식비와 맞먹는 사설학원비를 내고 대금을 배운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터였다. 그러니 한달 수강료가 2만원인 도립국악원은 당연히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그런데 그 재미가 끝날지도 모른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함께 도립국악원도 민간위탁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같은 사람은 못배우죠. 어떤 민간단체가 적자보며 운영하겠어요? 결국 수강료는 오를 거고 그러면 우리 같은 사람은 그만 다녀야죠." 수강료 인상을 우려하는 수강생들 3월 17일 공개모집을 마감하고 심사가 진행중인 도립국악원 민간위탁에 대해 박씨 같은 수강생들은 "당장 오를 수강료 걱정"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위탁공모에 참여한 대사습놀이보존회(이사장 황병근)와 한국국악협회전북지부(지부장 김학곤)는 "수강료 인상은 절대 없다"고 못박는다. "괜한 걱정"이라는 얘기. 지난해 도립국악원 운영예산은 13억8천5백18만3천원. 도가 위탁예산으로 제시한 금액이 10억원. 지난해보다 3억8천여만원이 줄어든다. 그러나 이들은 사무국이 11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면서 확보된 5명의 인건비와 수강생을 적극적으로 모집해 수강료 수익을 올리면 별 문제될게 없다는 계획을 내놓는다. 그들의 말처럼 '수강료' 문제는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민간위탁의 큰 뜻에 쓸데없는 '발목잡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매년 1천3백여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몰리는 이유는 저렴한 수강료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점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수강료 인상의 문제는 도립국악원 전체운영의 효율성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라는 점도 수강료 문제가 부각되는 이유기도 하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렇다. 물가인상과 인건비 상승으로 올해 부족분 3억8천여만원은 차기 민간위탁에서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더구나 위탁참여자들이 내놓은 수강생 정원을 늘리는 방안도 교육여건상 무한대로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적자의 폭은 늘어가고 위탁관리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듯. 그 조치가 수강료 인상이라는 얘기다. 교육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도립국악원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분야는 수강료뿐이기 때문이다. 수강료 인상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전북도가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수강료 인상 불가에 대한 의무규정은 없다"고 말한다. 수강료 인상은 위탁책임자의 권한으로 경영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한 여지를 남긴 셈. 수강생들이 전북도의 '특단의 조치'를 희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이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그러나 막상 위탁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수강료 인상 불가 등의 조치가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수강료 외의 수익발생 원인이 없는 도립국악원을 부족한 예산으로 위탁하는 발상부터가 잘못 꿰어진 단추이기 때문이다. 전북도가 밝히는 민간위탁의 이유는 '인력 및 예산 절감'. 민간단체를 통해 방만한 경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도다. 결국 도립국악원을 '경제논리'로 바라보는 셈.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도립국악원이 경제논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국립민속국악원 주재근 학예연구사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국악원은 제도와 운영내용뿐 아니라 교육, 연구, 문화재 보존이라는 역할에서 보면 박물관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 유형문화재를 다루느냐, 무형문화재를 다루느냐의 차이만 있을뿐, 국악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박물관과 같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껏 벌여온 도립국악원 사업들이 주씨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현대 공연문화에 맞춘 국악기 개량사업, 10주년 계획으로 추진중인 전북민속음악 발굴총서작업, 연수교재 발간, 인터넷을 통한 국악관련 네트웤 구축, 국악창작음악의 구심체 역할, 국악전래동요 조사작업 등 도립국악원의 사업들은 하나같이 '돈'과는 무관한, 관이 나서지 않으면 벌일 수 없는, 그러나 꼭 필요한 사업들이다. 그러나 '적자를 책임질 단위가 없는' 민간위탁의 운영체제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기란 녹녹치 않을 것이라고 도립국악원 관계자는 전망한다. 대사습놀이보존회 황병근 이사장은 "운영주체인 대사습놀이보존회에서 출연하고 협찬 등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협찬만을 바라보고 선뜻 일을 벌이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문제는 관이 나서도 부족할 판에 국악의 교육과 연구를 민간위탁자에게 떠넘기려는 전북도의 자세다. 물론 최초로 민간위탁의 길을 걸은 정동극장의 경우 당초 지원예산이 5억원이었던 것이 발전적인 사업성과를 냄에 따라 97년 8억원, 98년 10억원으로 지원금액이 늘어난 전례도 있다. 그러나 예산절감'을 노리는 전북도에 추가예산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 민간위탁의 명분을 잃었다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도립국악원 교수부 한 관계자는 "덩치큰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민간에게 일임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려는 와중에 도립국악원이 '끼워넣기'식으로 민간위탁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는 말을 들려준다. 민간위탁의 명분이 약하다는 얘기. 이와 관련해 전북도 관계자는 "국악단이 분리돼 도립국악원만이 덩그란히 남게 됐다. 민간위탁은 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는 "2001년 상반기까지 마무리되는 정부의 제2단계 지방행정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기구와 인력증원을 수반하는 신규 사업소 설치 승인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한다. 별수없이 민간위탁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인 것이다. 물론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처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지침이 신규사업소 설치에 국한돼 있는데 현재 사업소로 운영되는 도립국악원을 신규사업소 설치 대상에 올린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기에 박물관 등을 민간위탁하려던 정부계획이 '헤프닝'으로 끝난 사례도 있어 이번 민간위탁의 명분은 더욱 약해보인다. 정부는 IMF 이후 '96개 정부사업의 민간위탁'(1998년 5월 25일) 방침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중앙도서관 등 10개의 공공문화기관을 민간위탁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적이 있다. '경제논리에 문화가 죽는다'며 문화예술단체의 비난이 이어짐은 당연했다. 결국 청소, 주차 등 극소수의 업무만을 민영화하고 민간위탁 계획은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당시 문화예술계도 예술의 전당 같은 문화공간의 민영화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반대는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한 박물관 등 교육·연구분야에 국한돼 있었다. 그렇게 철회됐던 교육·연구 관련 문화기관의 민간위탁이 전북도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저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사습놀이보존회와 한국국악협회전북도지부가 내놓은 사업계획서의 검토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두 단체의 자격요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전북국악협회의 경우 '지회가 법인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자격인정에 대한 검토가, 황병근 도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사습놀이보존회는 황 이사장의 '도의원 신분'에 문제가 불거지고 있어 전북도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민간위탁 적임자가 없으면 추가 공모없이 재단법인 체제로 운영할 것"이라고 도 관계자는 밝히지만 항간에선 "적임자가 선정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도립국악원은 민간위탁의 길로 들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공익'을 우선할 지원과 체계, 구조를 마련해 놓지 않고 민간위탁 책임자에게 '공익'만을 내세우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지나친 억지가 아닐까. 이것이 이렇다할 명분과 계획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는 도립국악원 민간위탁 과정을 눈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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