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 | [서평]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지음)
경제 논리로 본 세상
글 김종필 동아작가·군산중앙초등학교 교사(2004-02-17 15:17:19)
나는 이번 학기에 학교를 옮겼다. 그 동안 아무 연고도 없는 군산에서 칠 년을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칠 년이 지난 올부터 그 동안 닫혀있던 전주, 익산, 군산 간 인사교류가 시작된 덕분에 나는 전주 시민이 되었다. 내가 전주를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내 때문이었다. 조그만 집도 장만하고 아들도 둘이나 낳아 잘 크고 있는데, 소위 안주를 하고 있는데 웬 날벼락 같은 소리냐는 거였다. 도무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아내는 같은 곳에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십 년 후를 따지며(전주에서 최대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십 년이다) 아이들의 성장과 우리들의 변방생활을 대차대조표를 들이대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주장 속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논리라도 감성에는 지는 법이다. '이 도시가 내게 별로 만족을 주지 못해. 지금이 기회야. 또 법이 어떻게 바뀔지 알아?' 비빔밥을 사주며 설득했다. 아무튼 비빔밥 덕분인지 궤변 때문인지 우리 가족은 드디어 전주시민이 되었다.
그런데 첫 술 밥에 배부를 리 없다고 문화의 향수는커녕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새롭게 찾아간 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이것은 스트레스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화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수용하라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광고 없이 베스트 셀러에 오른 책'이라고 진명출판사는 책에 덧표지까지 씌워 광고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 책을 신입사원들의 필독서로 선정한 기업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일 년만에 14판을 발행했으니 많이 팔리긴 팔린 모양이다. 요즘 줄글(소설)의 생명이 두 달로 줄어든 시대에 일 년 넘게 장수하고 있으니 베스터셀러 제조기라는 저자 '스펜서 존슨' 박사가 이름 값을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것. 나는 별로 익숙하지 않으나 이번엔 밑줄을 열심히 그으며 봤다. 그렇게 세심하게 보았는데도 한 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 짧은 글이다. 짧은 글인 만큼 지은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잡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감동은 그리 크게 일지 않았다. 마치 잘 정돈된 교훈서 한 권을 읽는 느낌만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주인공과 비슷한 체험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 할 수 있는 가장 큰 밑천은 비슷한 체험일진대 내게는 아쉽게도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처음에 말한 것처럼 교직의 특수성 때문에 자주 직장을 옮기며 느끼는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정도였다. 책 뒤에 나오는 것처럼 토론거리로 삼을 정도로 심각한 체험은 없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우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4명이다. 두 생쥐 스니프(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는 의미의 의성어)와 스커리(종종거리며 급히 달린다는 의미의 의성어), 두 꼬마인간 헴(헛기침한다는 의미의 의성어)과 허(점잔을 뺀다는 의미의 낱말)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치즈를 먹이로 삼고 살아간다. 미로 속에 감춰진 치즈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생쥐인 스니프와 스커리는 간단하기는 하지만 비능률적인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치즈를 찾고 인간인 헴과 허는 생각하고 과거의 경험을 살리는 방법을 사용해서 치즈를 찾는다. 마침내 모두는 C창고에서 치즈를 찾는다. 치즈를 찾고 나서 꼬마인간들은 게을러진다. 안락을 추구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 집도 치즈 창고 옆으로 옮기고 치즈를 통해 삶을 즐긴다. 생쥐들은 그 반대다. 쌓여있는 치즈를 먹으면서도 운동화 끈을 항상 고쳐 맨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치즈창고가 텅 비었다. 인간들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인간들은 비어버린 창고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누군가 다시 치즈를 가져다 놓기를 기다린다. 반면 생쥐들은 미련 없이 즉시 그곳을 떠난다. 새로운 치즈창고를 찾아 미로찾기를 시작한다. 생쥐들은 변화를 대비해 온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N창고의 치즈를 찾아낸다. 그러나 인간들은 헛기침만 해대며 눈앞에 닥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태를 분석만 하지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허' 는 두려움을 없애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헴은 여전히 분석만 하고 참고 기다린다. 변화를 시도하는 '허'를 비웃는다. '허'는 치즈를 찾아다니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치즈를 찾는 것보다도 찾는 과정을 즐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허'도 N창고를 찾아낸다.
이 책에서 '치즈'는 직업, 인간관계, 재물, 자유, 건강, 명예 등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미로찾기'는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지역사회 등 어떤 관계를 뜻한다. 누군가 내 치즈를 옮겼다면 갔다가 놓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미로찾기를 다시 시도하라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수용하되 빨리 할수록 좋다는 것이 글쓴이의 권고다.
변화를 거부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97년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조정을 생각했다. 책 끝머리에 토론을 통해서 노동자뿐만 아니라 기업가도 새로운 치즈찾기를 시도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크게 울리지 못한다. 책임을 크게 가진 기업가와 제공할 것은 건강한 노동뿐인 노동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현실에 안주하던 기업가가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해서 한마디 사과도 없이 노동자에게 미로찾기에 나서라고 권하는 것 같다. -구조조정을 하나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빨리 새로운 치즈를 찾으라. 그대 노동자들이여- 미국적 가치관의 결정판이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를 수용하는 것뿐이다. 세계화로 치장한 오늘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얘기다. 왜 그 많은 기업들이 이 책을 신입사원 필독서로 택했는지 그 속에는 다른 논리는 숨어있지 않은지 궁금하다. 매번 모든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면 정체성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부분의 문화는 정체성이 생명인데 경제 논리로 모든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우리 주위에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항상 그대로 있길 원하지..... 인생은 변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영국병을 치유했다던 대처리즘이 요즘엔 영국에서조차 두들겨 맞고 있다는데 '신자유주의' 깃발을 치켜들고 우리도 그 길로 가자고 주장하는 분들도 이 책을 필독했을까. 정말 변화만이 살길일까 책을 놓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