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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 | [문화저널]
【먹거리 이야기】
문화저널(2004-02-17 15:09:58)
꽃샘 추위에 장독 깬다는 옛 말씀을 실감하는 삼월이었다. 삼월에 눈이 발목 넘게 쌓인 것도 기억에 드믄 일이지만 헛간에 두고 짚으로 유지절이를 해준 김치독이 얼어버린 일도 처음 일이다. 산골 살이 첫 겨울을 만만히 보았던 게 실수였다. 봄부터 여름까지 묵은 맛이 그리울 때 꺼내 먹으려 했던 김치들이 숨죽었다고 아내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대신 땅에 묻어둔 동치미는 사월까지도 끄덕 없이 먹을 수 있을 듯 하니 다행 아닌가? 해마다 시차를 보름정도씩 두고 동치미를 몇 단지 담가두면 늦게까지 동치미 맛을 즐길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삼월이면 물러지기 쉬웠는데 올해는 아직도 빳빳하게 살아있고 국물 맛이 톡 쏘는 게 그렇게 시원하고 짜릿할 수가 없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시장에 가면 싱싱한 채소가 없는 게 없고 각종 과일이며 산해진미도 없는 게 없지만 그 옛날 그렇지 못한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싱싱하게 오래 보관하는 것이 주부들의 솜씨였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저장했던 것도 봄이 되어 싱싱한 날것들이 나왔을 때 뒤쳐지게 되는데 이것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방법들 또한 실로 다양했으니 오늘을 사는 우리가 꼭 한번 짚어 볼일이다. 쓰레기 대란 속에서 음식물 쓰레기 비중이 적지 않은 이 때에 환경을 생각하여 짚어 보자 함도 없지 않지만 우리들의 삶의 문화, 즉 생활문화의 순환구조가 분명하게 살아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더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들 삶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며 그 근원을 올바로 인식할 때 우리의 삶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겨우내 먹고 남은 김치로 물고기도 지져먹고 동치미 무우로는 장아찌도 넣었으며 동치미 무 우 정과도 만들었다. 동치미 넣었던 무를 물에 담가 간기를 빼고 식혜국에 졸여 정과를 만들면 간조름하고 달큰한 그 맛은 말 할 것도 없고 더하여 아삭하고 쫄깃한 맛에 투명할 정도로 맑은 멋은 동치미 무가 아니면 낼 수 없는 멋과 맛이다. 뿐만 아니라 어시 떨어진 동치미 국물도 잘뜬 메주를 넣어 숙성시키면 맛있는 짓국장이 되는데 삼삼한 그 맛은 안 먹어 본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짓국장을 한 수저씩 떠서 밥에 비벼 먹으면 나른한 봄 입맛이란 있을 수 없겠다. 시절 따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신들 삶의 순환 구조를 잃고 허둥지둥 사는 요즈음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 볼 일 아니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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