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문화저널]
풍성했던 '사건·사고'…지역문화 지각변동 일었다
사건으로 들여다본 2001 전북문화계
편집부(2003-04-07 09:21:36)
2001년 전북의 문화계는 여느 해보다 뜨거운 쟁점들과 화제가 풍성하게 쏟아진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지역 문화의 외연이 확대되고, '문화'라는 화두가 지역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여느 해보다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만큼 전북 문화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만큼 해를 넘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도 적지 않다.
문화저널 편집부는 뜨거운 논쟁과 화려한 담론들이 오갔던 올 한해 전북 문화계의 사건 사고들을 중심으로 지역문화계의 변화와 앞으로의 전망을 차분히 정리해보았다.
여러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중에서 편집부는 문화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다섯가지의 주요 쟁점들에 주목했다. 이외에도 많은 일들과 변화가 있었지만 문화계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문화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저널초점을 통해 올 한해 지역 문화계를 돌이켜보면서 미처 풀지 못했던 숙제들의 해법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편집자주
여전히 ‘뜨거운 감자’
지역 문화시설 민간위탁 바람
2001년 문화계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민간위탁'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전북도립국악원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건립중인 전주시 전통문화특구, 도립미술관 등 민간위탁에 관한 문제들이 문화계의 외면할 수 없는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북도립국악원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은 앞으로 이어질 문화시설 민간위탁에 있어 우여곡절을 겪었던 만큼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전북도립국악원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민간위탁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4월. 도립국악원 학예연구부와 교수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도립국악원 예술단으로 민간위탁을 결정했던 도의 방침에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우선협약대상자로 중앙공연문화재단이 선정되면서 도립국악원 예술단에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두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국악원 과 지역 언론에서의 문제제기, 예술단원들의 거리 시위, 국악원 전직원이 사직서 제출, 국악원장 사표 수리 등 우여곡절 끝에 분리위탁은 철회됐고, 도립국악원의 민간위탁은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고,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은 자격시비가 일었던 중앙공연문화재단이 재공고에 접수해 최종 수탁자로 결정됐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의 당사자들을 비롯해 지역 문화예술계는 적지 않은 '딜레마'에 빠져 고민해야 했다. 문화의 내재적 가치를 경제성에만 맡길 수 없다는 입장과 문화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면서 '대안찾기'에 나서야 했던 것.
결론적으로 민간위탁이라는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북도의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민간위탁 이후 높은 참여율속에 진행된 전주시 전통문화특구 문화시설 민간위탁이 이어졌고, 곧이어 도립미술관 민간위탁 문제도 거론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북도를 비롯해 전주시에서는 문화예술의 내재적 가치 보호와 지역에서 수탁 희망자를 찾기 위해서는 위탁기간 동안 일정액의 예산을 보조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기왕에 문화시설에 대한 민간위탁이라는 대세를 따르고 있다면 운영능력과 기획력을 철저히 검증하고 문화행정의 공론화를 통해 도립국악원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의 사태는 두 번 다시 겪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많은 찬반양론이 지금도 뒤따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문화시설 민간위탁이 지역 문화예술계와 문화행정의 제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일종의 '찬스'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도 제도적으로 행정적으로 뒷받침 돼야만 그 경쟁력이 발휘될 수 있어 문화행정의 전문성도 함께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축제…'사람'의 빈곤을 자각한 계기
전주가 낳고 키워갈 국제 행사 봇물
2001년 전주와 전북의 한해는 그야말로 축제로 시작해 축제로 저물어갔다. 도내 각지에서 게릴라처럼 쏟아져 나온 지역축제에서부터 '세계'를 지향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들에 이르기까지 축제의 열기는 여느해 보다 뜨겁게 이어졌다. 그 과정 속에서 전주와 전북의 문화 지형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세계'를 표방한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세계소리축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등 대규모 문화행사를 치르면서 전북 문화계는 지역의 문화 인프라와 문화 환경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축제에 필요한 문화 기획자, '사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게 되면서 전문적인 실무 능력을 갖춘 지역의 인적 인프라 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을 자각하게된 기회를 얻었다. 이와 함께 여론을 주도하고 축제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문화계 인사나 축제 실무자들의 효율적인 연대 및 융화,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 등도 새롭게 정비하고 성장시켜야 할 과제로 인식됐다.
소리와 영화, 서예가 대규모 축제의 소재로 채택되면서 이들이 전북지역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임을 재확인한 기회가 됐음은 물론이다. 세계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으로써 상대적으로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을 새롭게 환기시킨 기회였다.
정신적·무형적 문화 자산이 축제라는 형식의 '보여주는' 문화 행사로 부상하면서 도민들과 문화계 안팎으로 전북이 가진 문화적 자산을 어떤 철학과 자세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기본적인 문화 마인드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형성되고 표출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도 축제를 치르면서 얻은 중요한 수확이다.
국제 규모의 축제가 기획되고 치러지면서 지역의 문화 환경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일기도 했지만, 긍정적 시너지 효과도 적지 않았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역의 전문 인력이나 상영 환경 등 인프라 확보의 절실함을 상기시킨 반면, 영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 예기치 않은 '영화 붐'을 조성시킨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았다. 전주 시민들이 직접 작품을 내고 참여한 시민영화제가 올해 처음 태동한 것이나 전주 단편영화협회가 꾸려져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점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2001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소리'의 개념 설정이나 축제의 정체성이 흔들려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지만, 전북이 소리의 발상지요 중심지임을 되새기는 기회를 안겨줬다. 또 올해로 세 번째 행사를 치른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서예'라는 소재의 축제적 가능성을 확인시키면서 국제 행사로 성장시킬 만한 중요한 문화적 자산임을 인식케한 기회였다.
서울의 독선인가, 지역의 보수성인가
영화제·소리축제, 지역·서울 인력 갈등 심화
전주를 세계 속의 도시로 성장시키는데 '영화'와 '소리'는 전주가 선택한 중요한 문화 화두였고, 두 거대 '문화 프로젝트'는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중요한 첨병으로 떠올랐다.
올해 두 번째 행사를 치른 2001 전주국제영화제와 본대회 첫 무대를 가진 2001 전주세계소리축제. 두 행사 모두 정치·문화적으로 적잖은 기대와 목표치를 안고 출발했지만, 축제를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여러 문제점과 한계가 돌출됐지만, 전북 문화계가 가장 크게 절감한 것은 단연 '사람'의 문제였다.
특히 축제 준비과정에서 줄곧 불거져 나온 인력간 갈등은 조직의 근간을 흔들고 축제의 개최 여부마저 불투명하게 하는 등 축제의 위협요소로까지 작용했다. 대규모 문화 행사를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전문 인력과 그들이 쌓아온 노하우가 중요한 밑천임은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영화제나 소리축제 모두 축제나 행사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췄다는 서울 인력들이 대거 참여해 실질적인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규모가 커질수록 지역 인력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데다가 전문성을 강조하다보니 서울 인력들이 실질적인 축제의 정체성을 결정할 행사 기획을 맡게 되면서 '행사를 치러주는 식의 시스템'이라는 비난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소리축제는 이른바 서울팀으로 불리는 기획국과 행정 업무 전반을 맡은 공무원집단이 이원화된 조직체계를 형성, 적잖은 폐해와 갈등을 낳았다. 지난 예비대회 이후 새로운 조직체계가 꾸려진 이후에도 이 같은 문제는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른바 서울팀으로 불리는 예술총감독 이하 서울 분소 직원들이 행사를 불과 수개월 남겨 놓은 상황에서 집단 '사의 표명'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소리축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던게 그 대표적인 예.
영화제의 경우 행사 성격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김소영·정성일 두 프로그래머의 사임으로 한바탕 홍역을 앓았던 것에 이어, 2001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린 이후 사무국장을 비롯한 실무팀들이 대폭 교체되는 등 조직 내부의 '인화(人和)'문제가 큰 화젯거리가 되어왔다.
전북 문화계는 이를 두고 지역 인력을 성장시킬 만한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나, 지역 문화계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어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역정서에 대한 몰이해로 독단과 독선으로 일관한다는 극단적인 비난이 새어나온 반면, 서울 인력들은 그들대로 전주 사람들의 보수성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어 여전히 인력간 불협화음은 풀기 힘든 과제로 남아 있다.
지역의 문화 환경을 고려하는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제대로 담아내는 의미 있는 문화행사로 성장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전북 문화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를 담보해낼 의사소통의 효율적 구조를 회복하는 일이 문제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인력을 찾아 성장시켜내는 데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요건이 갖춰질 때 전문성과 노하우를 배우고 익혀나갈 수 있는 '서울팀' 수급의 문제도 서서히 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인 신분보장·활동의 자율성 보장 단초
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 노조 설립
'공무원인가 노동자인가'라는 논란 끝에 지난 8월 노조설립 신고증을 받은 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 노동조합.
도립국악원 노조는 조례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구로는 최초로 노동조합 설립에 성공함과 동시에 시·군 단위의 국악원 단원들도 가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단체 산하의 각 예술관련 기구 모두가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허가사항이 아닌 신고사항일 뿐인 노조설립 신고필증 교부가 3개월이 지나서야 교부된 것에 대해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도립국악원 노조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역시 예술활동의 진정한 자율권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도립국악원 예술단 노조는 88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고용·산재 보험, 지난 민간위탁 반대 시위기간중 불법해고된 8명 단원에 대한 복직판결 미이행, 미지급된 임금 문제 등 1백47개의 단체 협약 조항을 내걸어 놓은 상황이다. 그동안 이뤄진 잘못된 행정과 국악원의 관행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노조위원장 이항윤씨는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모순은 결국 예술인들과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도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며 "어려운 일을 감행한 만큼 제대로 된 노조활동으로 그동안 고용불안의 문제에서 소외돼온 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립국악원 예술단 노조는 궁극적으로 예술활동의 자율권 보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단체 협약 조항을 살펴볼 때 관립 예술단체의 운영의 문제나 예술인들의 신분 보장 등의 그동안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음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율성 침해, 보장되지 않은 신분, 불명확한 고용관계, 복지혜택 전무 등 다른 직업인들과는 다른 '권리' 속에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일단 문화예술계에서는 노조 설립을 환영하고 있지만, 해당 관청과의 문제로만은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국악원을 비롯한 관립 예술단의 경우 공적인 관계보다 사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많은 부분을 합리적이고 공적으로 이행하는 관행이 자리잡을 수 있는 분위기 형성해, 예술단체들도 체계적인 활동 구조나 관계가 마련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도립국악원의 예술단 노조 설립으로 예술단 노조에 대한 물꼬가 트여 문화계에서는 타 관립예술단의 움직임에도 주목하는 분위기 였으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잘못된 문화행정 꼼짝마라
적극적인 참여로 돋보인 문화 NGO 활동
문화가 사치가 아니라 생활임을 확인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문화가 하나의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 필요성이 절실해진 문화 NGO들의 활동이 올해는 여느해보다 돋보였던 한해였다.
문화예술계에 굵직한 사안들이 많았던 만큼 곳곳에서 드러난 문화 NGO들의 활동은 지역문화 발전에 많은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의견이다. 무엇보다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세계소리축제, 도립국악원 사태 등에 대한 평가작업이나 공청회 및 토론회 개최, 문화행정 집행기관에 대한 감시기능 등 그동안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등한시해왔던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나선 것.
전라북도에서는 시민단체 '시민행동 21'의 문화센터와 문화개혁회의가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 '시민행동 21'의 문화센터의 경우 각종 문화행사 평가작업은 물론 도립국악원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전북도청과 직접 협의를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등 행사 주최 조직과 행정기관의 행정 집행 감시에 주력했다. 소리축제 예비행사 방만한 예산집행과 관련해 쓰임새를 꼼꼼히 따져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행사가 끝나면 모든게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뒤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문화예술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던 문화개혁회의의 경우 실천적인 집행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방만한 조직을 새롭게 정비, 월례토론회를 정착시키고, 지역문화예술계에서 나타내는 문제들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등 조직적인 활동을 선보였다.
지역 문화예술계의 문제를 함께 풀어갈 문화 NGO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늘어난 것은 두손 들고 반길 일이지만 좀더 전문성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은 여전하다. 전문성 확보로 지자체의 활동에 대한 비판, 견제, 감시 역할에 이어 대안적인 문화 활동을 촉매하고 주민들이 그것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포함한 영역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