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 | [특집]
문화예술기관 민영화의 허와 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그 불안한 '폭풍 전야'
'민간위탁' 방안에 따른 도내 문화계 반응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4-02-17 14:46:28)
공공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민영화' 바람이 드세다.
'민영화' 방침의 핵심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최소화하고, 경영 및 운영에 전문인력을 배치함으로써 문화예술기관의 생산성과 전문성을 담보해내는데 있다.
해마다 만성적인 적자운영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분야의 '공공성'을 들어 꼬박꼬박 예산을 배정받아왔던 전국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이 이제는 '온실 속의 화초'로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규모로는 도내 최대이자 전국에서는 일곱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소리문화전당도 예외일 수 없다. '민영화'라는 큰 줄기에서 전라북도가 뽑아낸 결론은 '민간 위탁'.
한해 57억원의 예산을 지원해주는 대신, 경영전문화를 이뤄낼 능력있는 법인이나 단체에 운영관리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세에 따라 도의 사업소로 운영되던 도립국악원과 전북예술회관, 도립오페라단 역시 소리문화전당으로 전체, 혹은 부문별로 예속될 예정이다.
전라북도는 최근 전국 비영리법인이나 단체를 상대로 사업 설명회를 열고 이들의 적합성 여부를 검토, 신청서를 접수한 뒤 심사를 거쳐 위탁자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어서 그 어느때보다 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소리문화전당 민간위탁에 따라 예술회관은 소리문화전당의 분원체제로 전환하고, 도립국악원의 국악단과 도립오페라단은 소리문화전당의 전속 예술단으로 통합, 운영된다. 여기에 도립국악원의 시설과 교육기능(교수부 및 학예연구실)은 소리문화전당과 분리, 별도 민간위탁된다.
민간위탁 방안은 도내 문화예술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꾸어 놓을 만큼 '위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리문화전당 민간위탁에 따른 도립국악원과 예술회관, 도립오페라단의 사업소 탈피는 도내 문화예술계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립국악원 예술단이 소리문화전당 전속 예술단으로 예속될 전망인 가운데 예술단원들에게는 개개인의 '경쟁력'이 최대의 화두이자 동시에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안정된 구도 내에서 진행되던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이 이제는 관객을 '고객'으로 모시는 서비스형 조직으로의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는 의미로, 예술인들에게도 바야흐로 '경쟁력'의 개념이 도입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원 개개인의 실력과 창작능력, 전문성은 더욱더 중요한 요건으로 대두되고 있고, 관객 확보를 위한 전방위적 마케팅 전략까지 두루 갖춰야할 상황이 전개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민간위탁 시스템은 경영자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예술단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들의 반응은 더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 더욱이 전당 운영에 필요한 예산 가운데 예술단이 차지하는 인건비 등의 비중이 적지않아 문화사업이 흥행이나 수익에 치중할 경우, 예술단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더욱더 단원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실제로 민간위탁자 공모 신청에 유일하게 참여한 중앙일보문화사업본부에 가장 큰 거부감을 드러낸 것도 도립국악원 예술단 단원들이다. 단원들은 지난 3월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민간위탁은 찬성하되, 위탁 희망자로 나선 중앙일보문화사업본부의 능력과 '철학'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민간위탁 방침에 따른 예술단의 구조조정 등이 공공연히 거론되면서 이들 사이에 불안과 술렁임이 적지 않았지만, 위·수탁자 협약서를 통해 '고용 승계'가 위탁 조건으로 명시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진정된 듯했다. 그러나 57억이라는 1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가까운 미래의 구조조정", " '실력없는' 예술단의 예정된 '퇴출'" 등의 입소문이 떠돌자, 예술단 사이엔 '폭풍전야'의 불안감마저 감돌고 있다.
도내 문화예술인들은 대부분 민영화라는 대세를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그 미래에 대해서는 '기대반 우려반' 인게 사실이지만, 위탁 신청자 심사 마감일인 4월 초까지는 섣불리 그 결과을 예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다. 전라북도에서는 "위탁 신청자가 한곳뿐이지만, 명확한 기준을 갖고 '절대평가'를 통해 결론짓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위탁 추진과정에서 문화계가 지적하는 한결같은 맹점은 열린 행정과 공론화 작업을 어느 정도 성의있게 진행했느냐는 점이다. 전라북도 문화계에 한바탕 커다란 변화를 몰고올 '민간위탁'이라는 화두가 도민들이나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재단법인을 통한 민간경영인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가 수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 등 공론화작업을 거친 것은 물론,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전문가 집단에 의뢰했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전라북도의 행정 처리 절차는 "늘 이런식"이라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