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 | [문화비평]
강준만의 문화비평 / 언론망국론
글. 강준만 전북대교수. 신문방송학과
(2004-02-17 14:09:43)
강 교수! 언제는 ‘서울대 망국론’을 펴더니 ‘망국론’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니요? 나의 ‘언론 망국론’ 에 대해 너무 선정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대뜸 나올 법 하다. 내가 그런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것 한가지 만큼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사회 커뮤니케이션 시장에서 모든 ‘론’은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데 언론은 언론의 문제를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언론 망국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반감을 느끼는 분들은 자신이 언론의 실체에 대해 구조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우선 인정하고 나서 내 이야기를 들어 주시기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97년 11월 17일이다. 신문을 보자. ‘공정선거’ 라는 구호가 요란하다. 대통령서부터 검찰, 아니 시민운동 단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정 선거를 하자고 목청을 높인다. ‘엄단’이니 ‘척결’이니 하는 살벌한 단어들까지 난무하는 걸로 보아 공정 선거를 하지 않았다간 정말 큰 일 날 것처럼 보인다.
아무렴 그래야지. 나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의미이자 목표가 공정선거에 있다고 생각한다. 건국 이래 최초로 정치 선진국들이 하는 수준의 진짜 공정선거를 하는 것만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길이라 믿는다. 공정선거를 하지 않으면 패배한 후보와 그지지 세력이 선거 결과에 대해 수긍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또 그로인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첨예화된다고 생각해봐라.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이건 정말 아찔한 일이다. 좀 상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정권교체고 나발이고 세대교체고 나발이고 3김 청산이고 나발이고 간에 공정 선거를 하는 것만이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는 길이라는 게 나의 굳은 신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 만큼은 관권선거니 금권선거니 하는 단어들이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다. 아니게 아니라 정말 그럴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게 있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을 문제삼지 않고 있다. 그게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전혀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언론은 여론을 만든다. 선거는 여론이 결정한다. 언론이 공정치 않다는 것은 공정 선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언론이 선거의 대세를 결정한다는 것은 지나친 ‘언론 결정론’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른지도 모르겠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절대 다수 유권자들은 언론이 어떻게 보도와 논평을 하건 특정 후보를 죽어라 하고 반대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선거는 10-20%의 부동층이 결정하게 돼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 부동층은 언론의 보도와 논평에 민감하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신문협회, 신문편집인협회, 기자협회 3개 단체가 1957년 4월 7일 신문윤리강령이 제정 공포된 이후 39년만인 지난 96년 4월 7일에 새로 제정해 공포한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9조 2항은 “사설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지지 또는 반대를 표명하는 등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로이 표명할 수 있다” 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말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현행 선거법 상으론 그렇게 할 수 없게 돼 있거니와 신문들 스스로 그렇게 하고자 하는 뜻도 없다. 신문들이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지지 또는 반대를 밝혔다간 신문판매 부수가 크게 떨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신문들은 공식적으론 그 어떤 정당이나 후보자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질 못하니 그게 문제인 것이다.
당연히 언론은 아주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이르면 그런 교묘한 방법마저 내팽개치고 노골적인 지지 또는 반대로 돌아선다. 물론 그런 노골적인 지지나 반대도 나름대로 교묘한 장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삼기가 어렵다. 아니 윤리적으로 문제삼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지난 87년, 92년 대선에서도 일부 언론이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지만 선거 후에 그 누구도 그 언론을 문제삼지 않았다. 언론은 그걸 믿고 선거때만 되면 온갖 술수와 농간을 부리면서도 이만저만 당당한 게 아니다.
언론은 도덕성이 언론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선거보도 및 논평에서 그 수준일진대 다른 분야에선 어떻겠는가? 정치권의 음모와 책략이 어떻다고 떠들어대지만 언론의 음모와 책략에 비할 바가 못된다. 또 정치와 언론의 기능과 속성이 각기 다르다는 걸 감안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모든 음모와 책략은 언론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어찌 ‘언론 망국론’을 부인할 수 있으랴.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힐 때는 아마 선거 막바지일 게다. 나는 독자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만큼은 언론의 공정성을 선거 후에 반드시 따져 음모와 책략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불공정한 보도와 논평을 자행한 언론에 대해선 반드시 응징하도록 하자. 김영삼 정권의 실패를 통해 잘 목격했지만 언론이 바로 서지 않고선 그 어떤 정권도 성공적인 업적을 남길 수 없게 돼 있다.
내가 늘 노파심에서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언론 비판과 기자 비판은 구별해주시기 바란다. 기자들은 보통 봉급 생활자들처럼 언론자본과 언론사 조직에 얽매여 있는 소시민들이다. 그들이 소시민이면서도 보다 투철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도 기자 비판이 아닌 언론 비판은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국민이 언론을 향해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사독재정권도 지긋지긋 하지만 언론독재도 지긋지긋하다. 지들이 뭔데 감히 대통령 선거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가? 뭐? ‘킹 메이커’ 노릇을 하겠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불행히도 이번 97 대선 만큼은 언론의 그런 역할을 제지 하는 것이 어렵게 됐지만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차기 정권의 성공적인 과업 수행을 위해서도 언론 개혁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절박한 개혁과제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