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 | [특집]
'암기'와 '학벌'이 앗아가는 예술적 '창의성'
예술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3-04-07 09:18:01)
"윤이상 이후 우리나라에서 나온 음악인이 누가 있냐?"고 묻는 한 음대 교수의 질문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정명훈, 정경화, 조수미, 장영주? 그의 질문은 그동안 재능있는 음악인이 배출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유학을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고, 우리의 정서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후세까지 길이 남을만한 음악인이 누가 있냐는 것이었다. 예술교육을 꼬집는 말이었다. 잘못된 예술교육으로 인해 더 이상 예술적 '식물인간'으로 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그의 말은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술교육에는 어떤 문제들이 잠복해있는 걸까.
대학을 위한 '잘못된 선택'
모대학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ㄱ양은 2년전 자퇴서를 내고 다시 대학시험을 치러 철학과로 전공을 바꿨다. ㅈ군 또한 고교시절부터 4년을 넘게 해오던 음악공부를 접고 지금은 자신의 새로운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둘 모두 '예술가'의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예술가의 꿈을 이루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도중에 학업을 중단하고 진로를 바꾸는, 자신의 계획됐던 꿈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려야만 했다. 어렵게 들어온 대학을 그만둘 만큼 이들을 괴롭힌 '좌절'의 내용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애초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소질이나 재능 없이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덜컥 들어서버린 '예술의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했다.
"성적이 대학에 못갈 만큼 부진했던 건 아니였지만, 그림을 그리면 원하는 대학에 더 쉽게 입학할 수 있을 거 같아 시작했는데 지난 2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느끼는 능력의 한계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ㄱ양은 고등학교 2학년때 미술을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원하는 대학을 더 쉽게 진학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지만 그림에 그리 소질이 없는 편도 아니어서 입학하고 나서도 얼마간은 수월하게 대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시미술학원을 다니며 배웠던 그림 그리는 '기술'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이렇게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물음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림 그리는 일에 큰 욕심이 없었던 그에게 전공을 바꿔 다시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ㅈ군은 입시경쟁이 다른 분야에 비해 치열하지 않은 한국음악을 선택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그의 경우 ㄱ양보다 더 짧은 기간 음악공부를 해 대학에 입학했다.
"사실 음악 공부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어요. 공부 시작해서도 실기곡만 연습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음악에 대해 공부를 한다든가 실력을 쌓아가지도 않았죠. 그때는 어쨌든 대학에 합격만 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입학해서 보니까 저는 정말 실기곡 두곡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진학한 제 자신이 가장 한심했지만 이런 나를 합격시킨 학교가 오히려 원망스럽더군요."
물론 ㅈ군 외에도 같은 과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실기곡만 연습해 들어온 친구들이 없는 건 아니였지만, ㅈ군의 경우 다른 친구들에 비해 음악성이 좀처럼 발휘되지 않아 몇배의 연습시간을 가져도 허사였다. 그의 그런 고민을 아는 한 교수는 전공을 바꾸거나 학업을 잠시 접고 군대에 갔다오라는 충고까지 건넸다.
ㄱ양과 ㅈ군 모두 자신의 실패를 두고 "우리나라 입시예술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수 있는 극단적인 경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비단 우리의 교육 문제가 예술분야에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시대'를 맞아 문화가 중심이 되고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 날이 갈수록 예전과 달리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 또한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낮지 않은 장벽 탓인지 일반적으로 예술교육에 관한 고민이나 대안이 좀처럼 제시되거나 실험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 더욱 심각성을 더한다. 철저히 개인의 영역임과 더불어 교육계에서 예술교육은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그 폐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예술'과 '창작'을 암기하다
예술교육에 있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쳐두고 보자면 단연 '입시'에 관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거나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예술교육은 전적으로 학교나 사설학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전문적인 첫 교육과정은 사설학원이 그 역할을 떠맡게 된다. 우리나라 예술교육은 예술고 등 몇몇 특수학교를 제외하고는 사설학원이 절대적인 통로가 될 수 밖에 없다. 예술에 뜻이 있건 대학 진학만이 목표이든 간에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셈이다.
그렇다면 예대 지망생들의 입시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사설학원의 교육방식은 철저하게 '암기'위주의 교육이다. 똑같은 그림, 곡, 동작을 반복해서 '외워야만'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위해 '예술'을 갈고 닦는 경우가 훨씬 많다보니 한 명이라도 합격자를 더 배출해내야 하는 사설학원에서는 각 대학에서 출제되는 실기문제를 학생들에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주입시키지 않을 수 없다.
전주시내 입시미술학원의 한 강사는 입시미술은 곧 '시간미술'이라고 말한다. 시간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각 대학의 실기문제가 발표되자 마자 지망대학 실기시험 그림만을 '암기'해 시간안에 그려내는 연습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술학원 강사 ㄴ씨는 "물론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절반가량 된다. 가장 안타까운 건 그런 아이들까지 대학입시에 맞춘 교육을 시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고 말하며 "그래서 학원에서도 예술교육에 대한 분석이나 고민을 할 필요를 못느끼는 거다. 사실 나도 10년전에 학원에서 미대 입시 준비를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르치고 배우는 건 하나도 변한게 없다"고 말한다.
서양음악이나 한국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각 대학에서 발표된 실기곡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기는 마찬가지. 전북대 한국음악과 최상화 교수는 "한 마디로 김치는 담글줄 아는 애들이 김치찌개는 못끓이는, 음악에 대한 창의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심할 경우에는 악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북대 한국음악과의 경우 전공을 바꾸거나 과를 떠나는 학생이 해마다 두세명에 이른다.
무용의 경우에는 작품비를 둘러싼 부정과 폐해가 적지않아 일부 대학에서는 비디오로 녹화한 작품을 연습해 그것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또한 부작용이 적지 않은데 '비디오용 학원'과 지망 대학의 졸업생이나 교수들에게 또다시 특별과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뒤로 한 채 대학의 취지와는 달리 선배나 유명 무용인들의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문제와 많은 경제적 부담이 따르고 있다.
이같은 예술교육의 더 큰 문제는 예술적인 소질과 적성이 있는 학생들마저 그런 교육과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한 학부모는 "어릴 때 취미로 가르쳐준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아예 진로를 이쪽으로 정했지만 교육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경제적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학을 안나오면 사회에 진입하기 조차 힘들지 않은가.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다.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어쨌든 대학에 가고 봐야 한다. 입시에 맞춘 연습 때문에 흥미를 잃는거 같아 걱정도 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재능이 탁월한 아이들도 '입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대학을 통한 전문교육이나 졸업후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일 모두를 이룰 수가 없다. 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는 한송이씨는 학력사회에서 그 문제를 찾는다.
한씨는 "나는 근본적으로 학벌위주 사회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인 재능이 아무리 풍부한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예술계에서 조차 인정받기 힘들다. 단적인 예로 예대 지망생들이 예술교육전문학교인 한국종합예술학교보다 서울대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교수들, "제대로 평가하고 싶지만…"
여기에 가세해 각 예술대학의 교수들 또한 고민이 적지 않다. 실기시험을 두고 종종 발생하는 부정사건 등 예대 입시는 공정하지 않다는 세간의 시선에 시달리는 교수들의 고민은 역시 '평가'에 관한 부분이다.
각 분야별로 주어지는 실기시험시간은 미술의 경우 3∼4시간, 음악의 경우에는 한곡당 10분, 무용은 3∼5분이다. 이 시간안에 한 학생의 예술적 재능을 평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무리일 수 밖에 없다. 한 교수는 "일본같은 경우 미대 실기시험 시간이 1박2일이다. 우리도 한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학생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줘야 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당락이 결정되는 일은 적어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몇해전부터 예술대 입시 부정을 막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출제문제 사전 공개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사전에 문제를 공개함으로써 그동안 말이 많았던 입시 부정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능'만을 익힌 학생들을 더욱 양산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실기시험 문제를 본인이 결정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학도 있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따라 당락이 결정돼 입시부정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많다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각 대학 교수들은 외국과 같이 포트폴리오 제출이나 추천제도, 또는 각 대학의 교수들에게 평가의 전권을 부여해 해당 교수의 예술의 맥을 이어갈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과열된 입시 분위기에서 신뢰성을 그 바탕으로 하는 이같은 방식들이 입시에 적용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절대적이다.
적어도 '잘못된 선택'은 막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예술교육과 '창의적' 예술교육을 저해하는 커다란 요소들이 모두 잘못된 사회구조와 맞물려있다면 이 뼈아픈 현실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더욱 간단치 않다. 고정불변의 제도교육 속에서 진정한 예술을 꿈꾸는 이들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대학입시'라는 물리치기 힘든 공룡앞에서 제도권 교육에 이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뜻있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예술교육의 변화를 위해서는 그 '저변'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경직성을 풀고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표현에 대한 자율의 권리를 주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99년 서울시에서 청소년 시설을 민간에게 위탁운영하게 한 대안적이면서 실험적인 공간 '하자센터'가 대표적이다. 하자센터는 청소년의 새로운 문화실험과 문화생산의 장이다. 미술의 경우를 살펴보면 매주 전시장을 다니며 그 주의 주요 전시를 관람하고 관람평 쓰기, 전시기획프로젝트, 미술사 스터디, 미술관련 포털사이트 제작 등의 계획을 진행한다. 실제로 문예진흥원의 기획공모에 응모해 새로운 미술, 주류 미술과는 다른 미술문화를 주제로 한 <미술관 습격>전이 당선돼 실제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전시장 한번 가본 적 없이 몇 달을 입시학원에서 같은 그림만 반복해 그리는 수많은 예대 지망생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는 엄청나다.
'하자센터'는 '놀이'로부터의 예술교육에 착안해 있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창조적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놀이'이며 결국 이것들은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문학 활동 등 다양한 예술의 형태로 나아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물론 '하자센터'의 경우가 우리 예술교육이나 예술대 입시를 치유하는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문화와 예술이 통용되는 분위기속에서 그것을 향유하는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잘못된 선택으로 재능없는 자신을 입학시킨 학교를 향해 '우리나라 예술교육이 엉망'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거나 대학 진학을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예술의 길로 입문하는 잘못된 선택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대안예술교육의 확산과 실험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은 산적한 문제속에 자리잡고 있는 안타까운 우리 예술교육을 바로잡는 출발도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