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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 | [문화칼럼]
제것을 버리고 남의 것 흉내내기
글·이오덕 교육운동가 이오덕/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났다. 40여년 동안 교직에 있다(2004-02-17 13:35:49)
동요시인 권태응이 남겨놓은 작품에 ‘옥수수’가 있다.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작품이기에 여기 들어서 우선 감상부터 해 보고 싶다. 내가심은 옥수수 내키보담 더 컸네 봄에 옥수수를 심은 것이 벌써 커 자라 열매 열었네. 내가 가꾼 옥수수 내가 따먹네. 밭가에 쭉 쭉 달린 옥수수 휘파람 불며 골라 땁니다. 옥수수를 심고 가꾸는 일은 아이들도 한다. 누가 시켜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제손으로 심고 가꾸고 거두어서 그 열매를 먹게 되니 얼마나 기쁜가. 옥수수는 멀리 있는 산비탈이나 감자밭, 고추 밭에도 심지만, 마당한쪽이나 울타리 너머 나물밭 가에도 심는다. 이른 봄 괭이로 땅을 파서 거름을 깔고, 겨울동안 소중하게 갈무리해 두었던 옥수수 씨를 호미로 묻어 놓고 싹이 터 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연두빛 고운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는 기쁨! “야아, 내가 심은게 죄다 났네.” 아이들은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날마다 마음은 옥수수 밭에 가 있다. 날이 가물면 비를 기다릴 것이고, 물을 길어 주기도 할 것이다. 옥수수는 다른 어떤 나물이나 곡식보다도 쑤욱쑥 잘도 커서 아이들의 키보다 더 높게 되고 보리매미가 한창 울어대는 어느날, 여기저기 생겨난 탐스런 송이에 고운 수염이 나와 있는 것을 보는 아이들은 좋아서 팔짝팔짝 뛸 것이다. “엄마, 엄마, 옥수수에 수염이 났어!”하고 뛰어와 알리기도 할 것이다. 이래서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그날 아침 어머니와 약속한 대로 알맞게 여문 옥수수 송이를 골라 따서 솥에다 쪄온 식구가 둘러 앉아 먹게된다. 옥수숫대에서 옥수수 송이를 따는 기쁨, 그 송이의 껍질을 한 겹씩 벗겨서 드디어 온갖고운 빛깔의 옥수수알들이 눈부시게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는 놀라움, 솥에서 막 쪄내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옥수수를 까먹는 그 달고소한맛! ‘내가 가꾼 옥수수’기에 그 기쁨, 그 자랑스러움, 그 맛은 열배도 백배도 더할 것이다. 그래서 송이를 따면서도 저절로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게 되고, 옥수수를 까먹으면서는 우리 옥수수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동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할 것이다. 같은 시인의 작품을 한 편 더 적어본다. 제목은 ‘호박씨’. 호박국 끓이는 날 호박 배 가르는 날, 아기 남매 엄마 옆에서 보고있네. 늙은 호박 뱃속엔 머가 들었나? 소꿉 양식 호박씨가 가득 들었지. 방한구석에 놓여있는 누런 호박 덩이들은 겨울동안에 호박국을 끓이고 범벅을 쑤고 떡도 만들어 먹는 귀한 양식이다. 호박국을 끓이기 위해 호박배를 가를 때는 아기들이 엄마 곁에서 보고 있다. 그 속에서 나오는 호박씨를 얻기위해서다. 호박씨는 아기들에게 소중한 소꿉양식이다. 칼자루를 쥔엄마의 손에서 드디어 딱, 하고 호박덩이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속에 금은 보화같이 가득 들어 있는 호박씨를 보는 순간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소꿉양식이란 말도 재미있지만, 호박을 쪼개는 엄마 옆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앉아 있는 아기들을 찾아낸 시인의 맑고 고운 마음이 부럽다. 이것은 60년대까지 우리 아이들이 살아왔던 모습이다. 아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들과 산을 뛰어다니면서 온갖 풀뿌리와 나무열매를 따먹고, 감자를 구워 먹고, 옥수수를 쪄 먹었다. 그러다가 겨울이면 방안에서 호박씨를 까먹고 볶은 콩을 먹으면서 봄을 기다렸다. 그런데 요즘은 호박씨, 볶은 콩은커녕 감자고 옥수수도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조리 돈으로 사서 먹는 공해 식품만을 즐기면서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간다. 어른들이 먼저 병들어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노는것도 달라졌다. 그 때는 늦가을 타작이 끝난 마당에서 팽이를 돌렸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대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렸다.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대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렸다. 그리고 팽이고 썰매고 연이고 모두 제 손으로 만들었다. 놀이가손으로 무엇을 궁리해서 만드는 재미있는 공부로 시작되는 것이다. 또 그 놀이 자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운동경기처럼 서로 상대편을 ‘죽이기’위해 아귀가 되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즐기는 운동이 되어 있었다. 학자들의 머리에서 짜낸 어떤 교육방법도 우리 아이들이 하여온 놀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놀이 따로 공부 따로다. 놀이가 거의 없어지기도 했지만, 있어도 대게는 어처구니 없이 잘못된 것 뿐이다. 공부는 아주 어릴때부터 서로 미워하고 해치는 잡아먹기다. 제것은 버리고 남의 것 흉내내기다. 며칠전 어느 신문에 보니 미국말 잘하도록 아이의 혀를 수술하는 부모들까지 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아이들을 이 꼴로 가르치면서 무엇을 바라는가? 잘 살기를? 민주주의의를? 통일을? 다 헛소리다. 그런잘살기, 그런민주, 그런 통일을 다 무엇에 쓰나? 짐승보다 못한 교육을 하면서! 나는 미래학자도 예언자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제 손으로 가꾼 옥수수를 따면서 즐거워 휘파람을 부는 아이들을 이땅에서 다시 키워낼 수 없다면, 우리의 앞날에는 오직 암흑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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