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 | [문화와사람]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사 - 최선주
"본전을 뽑읍시다"
글·최주호 문화저널기자
(2004-02-17 13:32:16)
어수룩한 까치머리가 떠오르고 농부의 모습이 물씬 풍긴다. 수더분하고 순진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는 사람.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사 최선주씨의 첫인상이다.
그동안 매달려 있던 박물관 특별 기획전 [묵향와 채색의 마음 -석전 벽천의 서화]가 큰호응을 얻은 가운데 11월 19일 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21일 불적조사를 떠난 학예사 최선주씨는 전북 문화유산의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다니는 일꾼이다.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섭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서 기쁩니다"
최씨는 박물관의 일꾼중의 일꾼이다. 그가 박물관에서 담당하는 일은 미술사를 중심으로 학술조사와 기획전시, 사회교육 등이다. 특히 널리 알려져 있는 박물관행사인 어린이 미술 문화재 실기대회와 어머니와 함께하는 청소년 강좌, 성인문화강좌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우리 문화유산 사랑회와 국립 전주 여성 박물관에서 활동을 하면서 우리 문화유산의 보급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가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부터다. 전남대학교 사학과에 다니면서 전남향우회 동아리에 가입, 전국을 무대로 유적에 대한 답사를 하면서부터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전공을 살려 홍익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93년 학예사 시험을 거쳐 같은 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 무형문화재 지정 조사화 민속 향토축제, 전통공예기술부문 등 의 연구에 전념했다. 그의 말대로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현재도 그에 걸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95년 전주에 첫발을 내디딜 때 까지 문화유산 연구에 몰두한 셈이다. 농부의 부지런함이 풍년농사를 기약한다고 했던가. 이듬해 단원 김홍도전, 고려말 조선 초 미술전, 97년 눈그름 600년등 굵직한 기획 전시를 성공리에 끝마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그림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고충도 많았다. 물론 마당발 이종철 박물관장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마음고생은 피할 수 없었던 고충이다.
그의 전공은 고고미술사, 출토된 유물(미술)중에서 형태와 양식을 통해 시대의 문화와 삶을 복원하고 역사를 서민들의 입장에서 재해석 하는 일로 당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고고미술사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생이 턱없이 부족해 학술조사 등에서 팀을 구성하기가 쉽지 않죠. 다행이 이번에 전북대 고고인류학과에 불교 미술사를 강의하게 되어 그나마 미술사에 대해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최씨의 하루 일정은 너무나 빡빡하다. 취재당일에도 김제 교육청에서 유적순례의 동행을 부탁하는 등 학예사로서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개발할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박물관의 행정처리와 대외홍보 및 사회교육 등 그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를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요.”
딱 잘라 말한다. 저녁에 시간을 내어 틈틈히 공부를 한다고한다. 그래야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에 비해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데 공부마져 게을리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고한다.
“이젠 시민들도 본전을 뽑아야 합니다”
전주에 국립전주박물관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최씨는 전주시민이 자신이 낸 세금으로 건립된 박물관인 만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충분한 역사의 교육장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투자를 하고도 어떻게 지어 졌는가 와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돈으로 건립된 만큼 충분히 그 활용가치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박물관의 주인은 시민에 있고, 시민의 기인은 선인의 문화유산에 있기 때문이다. 조금 욕심을 부려본다면 이 곳 국립전주박물관을 기점으로 해서 문화벨트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더. 21일부터 떠나는 불적조사가 걱정된다고 한다. 예전의 학술조사는 유물의 쓰임새 등에 많은 관심을 표하던 사람들이 모 TV의 [진품명품]방영이후 값어치를 물어오기 때문이다.
과연 문화유산이 값어치로 환산될 수 있는가, 그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