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 | [문화저널]
문화저널 창간 10주년 기념 '소슬한 가을밤 뜨락음악회'
내집 앞마당 마냥 편안했던 따뜻함
글·김정수 전북도립국악원 상임연출
(2004-02-17 13:31:10)
지난 10월의 마지막날, 여러 가지 면에서 기억하고 싶은 예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문화저널 창간 10주년 기념행사의하나로 전북문화저널사가 주최 ‘뜨락음악회’가 그것이다.
전북지역에서 현대한국음악 - 국악의 현대화가 아닌 -을 선도하고 있는 실내악단 ‘소리샘’, ‘전주국악실내악단’ , ‘한음사이’가 공동출연한 이 음악회는 기획의 참신함으로부터 진행의 자연스러운 방식까지 평소 음악을 자주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보통의 음악회가 주는 중압감을 가볍게 벗어던지고 음악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했다. 세 실내악단 중 가장 이른 지난 92년 창단되어 12회의 정기연주회를 비롯 국내외에서 조용하고 은근한 한국의 전통적인 음률을 떨쳐보엿던 ‘전주국악실내악단’은 이날 영상회상의우아한 무게에 성악가 김선식, 이용승씨와의 가곡 협연을 더하여 그 연륜을 보여주었고, 올 4월에 창단연주회와 더불어 활동을 개시한 ‘소리샘’은 창작 음악은 가요를 감칠맛나게 연주하는 발랄함을 선보였다. 또 94년부터 다양한 경로로 활동했던 구성원들이 보다 의욕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금년 4월 공식출범시킨 ‘한음사이’역시 전통 음악의 현대적 해석뿐만아니라 동서양을 아우르는 폭넓은 레파토리 선정으로 참석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평소 각각의 무대를 통해서만 볼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이 음악회의 흐뭇한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유사한 성격의 단체는 함께 모이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까 하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깨고 각자가 지향하는 음악세계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한자리에서 느끼게 해준 것은 선의의 경쟁이 갖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음악회의 주인은 관객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갖고 있는 열린음악가들 다운 모습이었다.
이들이 연주한 음악은 주변 여건과 진행 상황 때문에 섬세히 전해들을수 없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정열과 실험 정신만은 선명하게 관객들에게 전달 되었다. 이번 ‘뜨락음악회’는 분명 실내악단 축제였지만 공연장소는 야외였다. 그것도 인적이 드문 시외곽 국립전주박물관 앞뜰이었다. 건립이래 최초의 일이라는 박물관 측이나 시린손을 호호불던 출연자들, 그리고 외진 장소 마다않는 관객 모두는 다소의외의 장소, 그래서 셀레게 하는 장소에 그냥 흐뭇한 표정이었다. 이상한 파에 비바람까지 뿌린 다음날이라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저녁이었지만 대형 모닥불이 주는 잔잔한 흥분은 쌀쌀한 마음까지 녹이고 남았다.
동네 장난꾸러기 친구들 같았던 조용안, 류재준씨의 노래 무대, 마이크 상태불량에 연주를 다시 시작한 심인택 선생님의 여유있는 지휘, 공연날짜를 감안해 특별곡으로 합동연주한 ‘잊혀진계절’등은 관객들에게 지극히 편안한 안도감을 주었다. 저녁식사후 산책이나 하듯 하나둘 모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음악회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으로 대처했다. 가족끼리 옹기종기 의자에 앉거나 혹 서있는 사람. 모닥불 주변에서 장작을 지피거나 하릴없이 팔장을 낀채 불꽃을 지켜보며 음악을 듣는사람, 넘치는 흥을 춤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이번 음악회의 특징이자 장점이 되어주었다.
당일공연장의 분위기는 앞으로 다양한 공연양식 개발에 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관객들이 일정한 시간동안 같은 방향으로 같은 규격의 의자에 앉아있는 음악회도 있어야겠지만 이같이 편안한 공연이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자 중심의 공연, 대형극장 중심주의에서 한발 빠져나와 음악의 향유자 편에 서 보는일, 그거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하겠구나 하는 느낌, 그것은 분명히 수확이었다.
관립기관과 지역기업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는 것도 이번 음악회의 큰 의의였다. 각종 단체와 기업의 예술에 관한 지원과 협조는 항상 요구되어 왔고 현실적으로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 지원 자세나 방법은 제고의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박물관의 경우는 경제적 지원말고도 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지원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전범이 되었다.
비록 쌀쌀한 날씨 탓에 출연진의 불과 몇배에 불과한 관객과의 공연이었지만 한국 음악계의 기대주들의 풋풋한 열정과 여유있는삶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관객의 어우러짐은 깊은 가을, 시월의 마지막 밤 하늘에 불꽃처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