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 | [문화시평]
더욱 절실한 학술 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
호남사회연구회 창립 10주년 심포지움을 보고
글·조문익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교육선전국장
조문의 / 64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 전북(2004-02-17 13:30:25)
지난 10월 30일 호남사회연구회 창립 1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지역문제와 21세기 한국사회의 과제’라른 주제로 전주대에서 열렸다.
주제가 10주년 기념학술대회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은 그동안 호남사회연구회가 수행해온 학술적 성과들이 많았던 때문일까. 물론 87년 6월항쟁을 거치면서 교수사회가 대변동을 겪게 되면서 만들어졌던 수많은 학술단체들 가운데 지역단위 조직들은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호남 사회연구회가 1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치루고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을 터이지만 87년 8월부터 본격화된 전주지역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에서부터 시작하여 89년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의 결성, 96년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건설로 이어지는 전북지역 민주노총운동과 그 길은 달랐지만 항상 함께해온 호남사회연구회의 10주년 기념학술회의를 보는 것은 여하튼 우리에게 많은 감회를 주었다.
호남사회연구회는 학문적 교류를 통한 학제성의 확보, 이데올로기적 균형을 추구한 진보성의 획득, 지역문제에 대한 실천적 연구와대안제시를 내용으로 하는 지역성의 추구를 자신의 설립취지로 하였다. 그리고, 10년동안 분과활동, 월례발료회, 학술대회연합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서 전북지역의 진보적 학술역량을 축적함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여론과 정책방향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조직적으로도 사단법인화 하여 안정된 활동체계를 확보하게 되었다.
사실 전북지역에는 호남사회연구회이외에도 연구소니, 연구회니하는 지역단위 학술연구단체들이 적지않게 있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이 몇몇의 교수와 학술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실을 내고, 가뭄에 콩나듯이 나오는 지방기관들, 또는 언론사의 프로젝트와후원을 받아 조사사업이나 일회적인 학술발표회를 진행하는 수준을 그리 많이 넘어서지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업의 방식이나 내용도 실첮넉 용도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나중에는 학문적으로 보다더 체계화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일부는 아예 내놓고 정치지망생들의 사무실이나 정치지망생들의 후견단체 역할이나 하는 경우도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꼬박 꼬박 1년이면 적어도 몇차례씩 공개토론회나 학술회의를 펼쳐놓은 호남사회연구회, <호남사회연구>와같은 학술지도 발간할 수 있는 호남사회연구회는 지역사회에서는 가장 비중한 학술단체라 하여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는, 호남사회연구회에서 발간한 어떤 자료에서 스스로 언급했듯이 ‘학제성과 진보성을 지역성에 통합시키는’ 노력을 경주해온 것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지역학술단체로서의 위상을 구축하는데 성공하게 만든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10주년 학술회의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10주년이면 학술운동으로서는 하나의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는 의미도 있을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87년 호남사회연구회가 출범할 당시와 97년 현재의조건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정치적으로는 군부통치가 그 흔적을 감추었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안착되었다. 지방자치가 실시되었고, 문민정부(?)라 불리우는 김영삼정부가 곧 마감되고 문민정부 2기(?)가 될 정부가 탄생되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10년을 마무리하는 학술회의라면 이런 한국사회의변화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학술적 순환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과정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번 학술회의에서 부족한 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충족시켜주기에는 주제발표와 토론이 약간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대 김만흠 교수는 ‘한국정치와 지역균열의 재인식’이라는 주제를, 전북대 김영정교수는 ‘한국지역 발전격차의 실태 및 균형발전전략의모색’이라는 주제를 발표하였다. 모두 다 지역문제를 다루는데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너무 단순화하는 것 같지만 정치와 경제문제만 다루면 지역문제의본질이 드러나고 ‘21세기 한국사회의과제’가 도출될 수 있을까? 그날 학술회의 내내 아쉬웠던 점은 김만흠 교수가 발제에서 ‘지역주의문제에 대한 양비론자’라고 지적했던 ‘진보주의자’의 목소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지역문제는 지역으로의 접근보다 계급계층으로의 접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날 학술회의가 ‘정권교체가 민주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자리가 되었다고도 판단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근년에 들어 더욱 확실해진 산업구조조정의 과정과 추이, 그리고 96,96겨울총파업과 이후의계급적 갈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계급적 갈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계급적 균열이나 적나라하게 확인되고 있다. 지금은 아직 지역의 문제가 더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계급의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한국사회의 21세기에 대해 논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를 앞서서 혜량하는 학술운동은 이러한 문제를 개방적으로 담아내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지역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술운동을 조직해온 호남사회연구회가 이러한 흐름까지 담아내면서 다시 올 10년을 기약하는 10주년 토론회를 만들어 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남사회연구회가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운동들과 교류의 폭과 깊이를 더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사회운동단체들에서 개인적으로 참여한 몇몇 인사들이 참여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운동의 체계성과 깊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보여주는 정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호남사회 연구회와같은 진보적 학술운동이 그동안 ‘개방성’을 모토로 활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운동과 유기적 연관을 맺어가는데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보편화되고, 한국에서도 21세기를 신자유주의체제로 인입하려는 총자본측의 노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사회운동과 학술운동이 서 있다. <호남사회연구 2집>에서 밝혔듯이 ‘지방자치시대의 개방, 그리고 WTO체계로 대표되는 국제화, 세계화의 시기’인 것이다. 이제 사회운동도 변화하고 있고, 학술운동도 변화를 강제 받고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를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사회운동들은 사회변화의흐름과 깊이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운동전략을 재구성해 가야할 상황이다. 학술운동 또한 자신의 진보성을 다시 갈무리하고, 현실사회의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제 문제와이러한 문제에 조응하여 생기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을 수용하여 새로운 인식의 틀거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특히, 전북지역사회는 봉건적, 근대적, 현대적 과제들이 다양한 형태로 복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신학술운동의 자기변화는 더욱더 강력하게 요망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데 가장 필요한 말은 새롭게 ‘학제성, 진보성, 지역성’과 더불어 지역사회의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재편을 위해 사회운동과 학술운동의 교류를 강화하는 ‘연대성’의 개념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