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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 | [저널초점]
그들의 축제, 그들의 고민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시평-
글·사진ㆍ김성식 전북도립국악원 연구원 (2004-02-17 11:48:51)
그들을 위한 축제여야할 민속예술경연대회에 그들이 없다. 당연하다. 농사일은 ‘적기’가 있다. 못자리 적기, 모심는 적기, 농약주는 적기, 벼베는 적기 등 집약적인 노동력이 투여되는 시기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때를 놓치면 풍년농사에 비상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은 벼베는 적기이다. 전주에서 익산가는 길은 세갈래 길이 있다. 번영로가 있고, 대장촌 길이 있고, 금마를 경유하는 길이 있다. 번영로는 오로지 달려야만 하는 길이다. 달리지 않으면 다른 차들의 인상이 험악해진다. 대장촌 길은 시종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탁 트여서 좋지만 아기자기한 굴곡이 없다. 금마길은 창밖으로 눈길이 많이 간다. 야산의 갈대도 한가롭고, 벚나무 사이로 이마만 드러내 보이는 왕궁리 5층석탑도 예쁘기만 하고, 경지정리가 된 듯 안된 듯한 황금들판에서 볏짚 태우는 연기도 아슴아슴하다. 어디 그 뿐인가. 금마의 먼발치에 이르면 돌출된 미륵산이 마중나온 듯 반기고, 추수에 분주한 농촌의 모습은 오래된 앨범의 한켠에 꽂혀있는 빛바랜 흑백사진같다. 그리고 익산공설운동장에서 3일간 예정으로 시작된 제38회 민속예술경연대회장으로 갔다. 그런데 스탠드가 휑하다. 관객들이 없다. 그때서야 관객들이 모두 논에서 추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들을 위한 축제여야할 민속예술경연대회에 그들이 없다. 당연하다. 농사일은 ‘적기’가 있다. 못자리 적기, 모심는 적기, 농약주는 적기, 벼베는 적기 등 집약적인 노동력이 투여되는 시기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때를 놓치면 풍년농사에 비상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은 벼베는 적기이다. 아무리 기계화가 보편화 되었다지만 농번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부엌의 부지깽이도 한몫 거들어야 할 판이다. 쇠털같이 많은 날에 하필이면 이때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구경꾼의 문제만이 아니다. 행사 출전자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출연자들도 농사짓는 농민들이다. 각 시도에서는 그들을 데리고 두어달씩 연습하여 경연대회에 출전한다. 셋째날로 일정이 잡혀있는, 부여에서 충남대표로 출전한 ‘세도 두레놀이’패의 이장님에 의하면 첫날 입장식 때문에 왔다가 입장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되돌아가서 벼베기를 하다가 이날 다시 왔노라고 한다. 그러면서 ‘왜 하필이면 이땐지 모르겠네유’를 연발한다. 그들의 축제인데도 그들이 없다. 현장에 있는 그들도 마음은 이미 그들의 논두렁에 서 있다. 일테면 그들의 참여를 원천봉쇄 해놓고 그들을 위한 축제를 펼치는 셈이다. 그래놓고 해당 도시의 공무원들은 방울소리나게 뛰어야만 한다. 동사무소 단위로 부녀회를 소집하랴, 학생들을 동원하랴, 정신이 없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밖에 없다. 이제 농어민 축제를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적어도 개최시기 조정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도시민들의 일체감 조성과 향수를 달래기 위한 축제라고 해도 그렇다. 주중에 행사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먹고살기 바쁜 도시 사람들이 주중에 운동장에서 죽치고 향수를 달래고 있을 겨를이 없다. 겨우 주말이나 되어야 한시름 놓는다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단지 TV중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중에 치러야 한다면 차라리 방송국스튜디오가 훨씬 낫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지난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익산의 공설운동장과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졌다.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인 각 지방의 향토민속발굴 및 보존전승과, 전통민속예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증폭시키며, 한마당 민속축제를 통한 지역주민의 협동적 향토혼과 국민적일체감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회이다. 1955년 건국1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61년에 전국적인 규모로 해마다 개최한 이래, 67년부터는 중앙과 지방의 문화격차 해소 차원에서 전국의 시도를 순회하면서 개최하고 있다. 우리 전라북도에서도 71년과 88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행사였다. 그동안 민속경연대회가 이룩한 성과는 대단하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의 혼돈기와, 근대화와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과 농촌공동체의 해체로 인해서 숨통이 끊겨가던 민속예술이 그나마 이 대회를 밑거름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 대회를 통하여 390여종이라는 민속예술이 발굴되었고, 이 대회를 통하여 35종의 민속예술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시도지정 무형문화재도 54종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매년 10종목 이상이 새롭게 발굴되어 선보이고 있으니 그 취지와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본다. 굿 좋아하고 소리 좋아하는 필자가 올해의 대회를 보면서 그동안 현장에서 직접 보지 못하고 자료를 통해서만 접하였던 관계로 생각이 못 미친 점을 몇가지 피력하고자 한다. 먼저 올해 제38회 대회에서는 ‘두레놀이’가 많이 출전하였던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두레는 전통농경사회의 ‘일과 놀이’라는 차원에서 노동형태와 그들의 세계관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두레는 전통농경사회의 공동노동형태이다. 즉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협동조직이다. 어느 마을이나간에 이러한 두레는 조직되었고, 마을의 힘과 세를 과시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학문적으로도 두레는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어왔다. ‘굿과 노래’라는 입장에서는 음악과 문학적인 접근이 시도되었고, ‘일과 놀이’라는 측면에서는 민속학분야의 연구대상이 되어왔고, 역사학분야에서는 조선시대 향약에서 출발하여 두레까지 섭렵되고 있으며, 사회학의 사회사에서는 ‘촌락과 노동’이라는 주제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고, 경제학에서는 ‘생산과 노동조직’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그것이다. 올해 출전한 경연과 시연종목에서도 ‘통진두레놀이’ ‘광산풀두레’ ‘세도두레놀이’ ‘고양호미걸이’ ‘대전목상동 들말두레놀이’ 등 두레의 명칭이 붙은 종목만도 5종목이었고, 이 밖에도 명칭만 다를 뿐 엄밀한 의미에서 두레와 관련된 종목은 대여섯 종목이 더 추가된다. 이렇듯 두레를 토대로 해서 연출된 작품이 대거 출전하는 까닭은 왜일까. 몇가지 이유가 현장에서 직감되었다. 첫째는 ‘민속돌이’분야와 ‘민속극’분야의 퇴조를 들 수 있다. 즉 더 이상 발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민요’부문과 ‘농악’부문이 아직도 발굴의 여지가 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두레’가 외형은 ‘놀이’부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그 배경에는 ‘민요’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특히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두레놀이’로 출전한 모든 팀이 그 지역의 일노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두레놀이가 가능한 것이다. 두레놀이의 높은 점유율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장소에 있는 것 같다. 자고로 전통사회의 현장에서는 전혀 경험해 볼 수 없는 대운동장에서 그것도 3만 이상을 수용하는 스탠드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데. 특정 마을에서 전승되어올 모습으로 일개 마을 주민들이 재현한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초라하고 왜소해 보이겠는가. 오히려 민속예술경연대회가 우리의 민속을 더욱더 초라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공공연하고 태연자약하게 수행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규모의 인원이 동원되고, 각색되고, 연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 결과 그것이 용이한 ‘두레놀이’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놀이마당이 간절할 뿐이다. 다시 물꼬를 틀어서, 우리 지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각 시도에서는 대부분이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할 대표를 선발하기 위해서 해당 도에서 도민속예술경연대회나 문화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회의 대상수상종목이 자연스럽게 시도를 대표하여 전국대회에 나간다. 그런다 전통문화예술이 꽃을 피운 예도라고 일컫는 전북만이 그러한 행사가 없다. 이러한 점은 비단 이 대회를 출전하는 대표를 선발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대표선발은 부차적일 수 있다. 전통농경사회의 문화유산과 미덕은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도민들의 정서함양과 일체감 조성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도단위의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전북에 축제는 많다. 각 시군 축제에서부터 도단위의 축제까지 많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지역성을 계승, 확산하고 있는 축제는 없다. 전북에 11개나 되는 아가씨 선발대회로는 더 이상 향토축제를 계승할 수 없다. 풍남제도 그렇고 전라예술제도 마찬가지이다. 기왕의 축제는 도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이름뿐인 예술제’라는 신문기사가 항상 등장한다. 당연하다. 관계자들만의 축제, 협회회원들을 위한 백화점식 축제는 우리의 축제가 아니라 ‘당신들의 축제’이다. 우리식 축제의 원형을 회복하고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민속예술경연대회는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나아가서는 이러한 도단위의 행사를 거쳐서 명실상부한 도대표를 선발해야만이 올해와 같은 향토불명, 원형불명의 작품이 도를 대표하는 일이 없지 않을까 한다. 애써 발굴한 민속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그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발굴자뿐만 아니라 우리 민속은 그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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