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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 | [문화저널]
바른 음식문화가 필요한 세가지 이유
글ㆍ김두경 서예가 김두경 / 서예가. 전 문화저널 편집위원. ‘서예’란 모르는 사람이 보(2004-02-17 11:35:39)
건강한 신체야 말로 개인이나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와 강한 체력이 유지되어야 모든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사회도 밝고 건강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른 식생활, 적당한 운동 등의 여러 가지 요건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바른 식생활의 중요성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모든 것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시대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당연히 음식 전문가가 써야 한다. 그런데 전문성도 없는 사람이 왜 주제넘게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미식가이기 때문에?’ 아니다. ‘까탈스런 성격 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억울하다. 나는 음식에 관하여는 물론 어떤 것에 관하여든 까탈스런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소탈한 사람이다. 그런데 항변에 가까운 나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까탈스럽다는 말을 듣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무엇이든 근본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음식문화에 대하여 근본에 서서 바라보는 이야기를 조금 흘린 것을 주워담을 기회가 주어진 덕분이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이야기를 하게 될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10여회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른 음식문화 왜 필요한가?’이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 세가지만 말하겠다. 첫째는 건강한 신체야 말로 개인이나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와 강한 체력이 유지되어야 모든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사회도 밝고 건강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른 식생활, 적당한 운동 등의 여러 가지 요건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바른 식생활의 중요성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몹시(?) 발달하여 우리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무엇인지를 거의 분석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렇게 분석해낸 자료를 이용하여 가장 이상적인 영양 식품을 만들어 내면 좋을 것 같지만 아직 그런 것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의 한계 내에서 가능한 것이지 자연의 전부를 포용한 것이 못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두뇌로 파악한 자연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자연의 극히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론 사람들이 자신을 만물의 영장 어쩌고 하면서 오만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 앞에 인간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모든 생명에게도 유익하고 인간 자신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요즈음 채소류를 수경재배하여 키우는 곳이 많은데 품질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경재배 채소는 채소가 자랄 수 있는 온갖 조선을 인간이 분석한 한계내에서 갖추어 주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스스로 경쟁하여 일어서는 꿋꿋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궤변일까. 만약 궤변이라고 하거나 그까짓거 정도야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을 수 있고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글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글자보다 훨씬 더 많은 여백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식생활이 오염된 자연을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기아로부터 벗어난 많은 국가의 음식문화가 식도락의 개념으로 가는 것이 정해진 순서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걸맞게 먹거리의 풍요 속에서 원없이 먹고 남을 뿐 아니라 입맛에 맞지 않거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시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식도락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양초, 양어, 양계 등의 사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게 되고 그것은 또다른 오염과 파괴를 가져오고 그런 오염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 이러한 가공식품에 익숙한 사람은 자연의 섭리에 대한 경외심이나 서정적 낭만과 여유를 지닌 원만한 성격이 되기보다는 자극적이고 즉흥적이며 날카로운 성격을 가져와 사회를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많다면 틀린 말일까. 물론 모든 원인이 음식에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음식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 필요성도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때 우리가 풍요롭고 세상도 풍요롭기 때문이다. 서양적으로 분위기 있는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와인을 홀짝거리는 것을 품위와 여유의 상징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의, 식, 주 모두에서 완전히 넋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많다. 만일 지구상에 지금처럼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존재하지 않고 한 종류의 인간과 그 인간에게 필요한 동식물 몇 종류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결코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뒤섞여 있는 지금처럼 풍요롭지는 못할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똑같은 환경과 똑같은 관습이라면 정말 편리하기는 하지만 역시 풍요롭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가 풍요롭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 정 불편한 점이 있다면 우리를 지키면서 편리성을 도입 개선할 지언정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며 정신적 문화적 종속을 의미한다. 이러한 종속은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직접 느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도 생각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문화의 발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문화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종속인지 계승발전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주가 될 때는 발전이지만 반대일 때는 종속이다. 종속은 주체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엄청난 손실을 가져와 식민상태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기우라 할 수 있을까. 식생활의 종속은 우리 생활의 1/3을 잃은 것에서 그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먹거리는 우리의 생명과 가장 밀접하기 때문이다. 음식문화의 종속, 먹거리의 종속은 곧 우리 생명의 종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음식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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