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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 | [문화시평]
서신갤러리 개관 가난한 고장의 새로운 자존심
글ㆍ김선태 미술평론가 김선태 / 60년 전주 출생. 전주대 미술학과의 홍익대 대학원을 나(2004-02-17 10:58:38)
정치적으로는 가시적으로나마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있으나 문화적 지방자치는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역미술의 현안 중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대두되는 것은 아무래도 재정의 빈약함이다. 최근 이 지역에 기반을 둔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보여주듯 이 도시의 열악한 경제상정 때문에 의욕있는 작가들은 그대로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서울무대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결국 이것이 지역미술의 낙후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 미술사를 뒤돌아 보아도 파트론(후원자)의 역할은 예술창작 의욕에 절대적은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듯이, 경제적 토대는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에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렇듯, 모든 문화의 발전 가능성은 경제와 밀접한 관계선상에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니 만큼, 자본주의 수요와 공급의 시장논리 아래에서 미술인들의 창작여건이란 미술시장의 판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에 비해 특히 전북지역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데다 창작의욕을 감퇴시키는 경향이 심하다. 이와같이 경제적 궁핍이란 작가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며 어느 지역이든지, 그림이라는 것을 통해서 자기발전을 이룩해 나가고 버티려는 젊은 작가들에게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 부분은 일정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비롯되겠지만 미술시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림을 전혀 소화시킬 수 없는 지방의 상황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작가들이 경제적인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학원이나 화실을 한다든가, 교직으로 나간다든가 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길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움츠러들게 하고 굉장히 협소한 공간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미술발전의 부수적인 조건인 전시공간, 미술행정과 재정의 궁핍 등 젊은 작가들의 예술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고 격려할 후원이 절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과 전문큐레이터나 미술전문기자의 부족, 미술시장의 빈곤 등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언제 해결될지 현재로써는 미지수로 남겨두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의욕이 앞선 젊은 작가들은 그 시절을 열정으로 보낼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적으로 작가가 되어 작품에 전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 몇 년간 이 지역에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상업화랑의 신설되었으나 거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몇몇 화랑의 출현과 후원을 바라고 있으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지금도 역부족이다. 미술시장의 형성은 근본적으로 수요층의 확보가 필수 조건인데, 지방애호가의 경제력이나 미적 안목을 단기간에 높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술문화와 관련된 정신적 물질적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 지역 화랑들의 움직임은 그 나름대로의 신선함을 주고 있다. 얼화랑 매년 주관으로 젊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켜 주기위해 청년작가 한명을 선정하여 후원금과 작품전을 마련해 주고 있으며, 우진문화공간에서도 도내 5개 대학의 졸업생을 추천받아 전시회를 기획하는 등 신진작가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갤러리는 보다 넓은 전시공간을 확보하고 사업화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이 도시의 낙후된 경제사정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화랑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우진문화공간은 지방기업이 자본의 사회환원이라는 차원에서 작가를 후원 육성하거나 화랑 본연의 임무인 신인작가 발굴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서신갤러리는 전문화랑으로서 최소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치밀한 기획아래 열린 이번 개관전은 주목할만하다. 특히 2부에 개최된 <미술평론가가 추천하는 젊은 작가 6인 초대전>은 비평부재라는 지역미술의 한계를 어느정도 극복해 보려는 화랑측의 기획의도가 엿보였다. 빈약한 경제를 생각해 볼 때, 다른 어떤 곳보다도 민간부분의 재원이 아직 충분히 개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신갤러리와 같은 미술의 장이 열렸다는 것은 미술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더불어 정부가 세제 등 간접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민간기업이 문화예술에 투자 내지는 지원할 수 있는 호의적인 여건을 조성해 나감으로써 열악한 미술환경을 개선해 나아가야한다. 서신갤러리의 참신한 개관전은 앞으로도 무미건조한 화랑운양에서 벗어나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성격있는 기획전, 작가발굴의 장기적인 지원 등 화랑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성격있는 화랑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한편 상업화랑 못지 않게 중요한 전시공간으로는 공공미술관이다. 우리나라에도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이 92년부터 발효되었으나 현재까지 지방에 공립미술관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광주 한 곳뿐이다. 젊은 작가들이 공공미술관(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해서 굳이 상업화랑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창작의욕이 북돋아져야 하는데 전북은 아예 공공미술관이 전무하다시피한 형편이다. 하루빨리 반듯한 시립미술관이 건립되어 작가들의 창작열기, 문화행정 당국의 여건조성과 지원, 일반인의 문화적 관심도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이 지역미술이 발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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