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1 | [문화비평]
북한은 왜 김대중의 집권을 원치 않는가?
글ㆍ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2004-02-17 10:06:46)
많은 사람들이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북풍’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한 염려는 결코 기우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꼭 선거때만 되면 이상한 짓을 저질러 남한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겼으며 그건 늘 집권여당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게 한 두 번이면 모를까 선거때만 되면 예외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니 많은 사람들은 아예 선거하면 죽지도 않고 또 오는 작년의 각설이처럼 ‘북풍’을 연상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왜 북한은 선거때만 되면 엉뚱한 짓을 저질러 집권 여당을 돕는 걸까? 물론 답은 간단하다. 북한은 야당, 좀더 꼬집어 말하자면 김대중씨의 집권을 원치 않는 것이다. 이건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이미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주장한 것이다. 서울대 백낙청 교수의 그 유명한 분단체제론도 남북한 지배층의 암묵적 결탁과 미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현상유지적 이해관계를 상정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그 누구도 보다 구체적으로 김대중씨와 연결시켜 북한이 김대중씨의 집권을 원치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지는 않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때만 되면 김대중씨는 ‘용공조작’에 시달리며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한은 김대중씨의 집권을 원치 않는다. 그런데도 남한의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김대중씨에 대한 그 용공조작에 놀아나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하기야 우리 사회에서 말이 안되는 게 어디 하나 둘인가? 북한이 김대중씨의 집권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선거때에 북한이 무슨 이상한 짓만 저지르면 그걸 남한 정부여당이 ‘북풍’을 선거에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과장과 중상모략을 일삼은 경우도 있었지만, 북한이 저지른 이상한 짓까지 행여 집권여당이 조작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건 넌센스다. 「시사저널」(97년 10월 23일)의 다음과 같은 해설을 들으면 정리가 잘 될 것이다.
“학계에서는 북풍을, 북한이 적극 작용해 일으킨 것(자연풍)과 정부측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조성한 것(인공풍)으로 구분한다. 87년 대선때의 KAL기 폭파사건이나 DMZ 사건이 전자의 경우이며, 선거 때 정부가 발표하는 간첩단 사건은 후자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두달 남짓 남은 이번 선거에는 어떤 북풍이 불까. 학계와 정계의 ‘기상관측관’들은 북한이 돌발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으로 신포 경수로 현장에서의 한국 근로자 억류, 서해 5도 지역에서의 군사적 시위 행위 등을 꼽는다. 또 KAL기 폭파같은 테러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인공풍’이다.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조직 간첩단 사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폭탄 발언, 황씨 못지 않은 북한 고위 관료의 망명, 이산 가족 관련 사업이나 남북 경협, 관광사업 등 획기적인 대북교류정책 발표 등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인공풍’도 북한이 왜 김대중씨의 집권을 원치 않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냉전시대의 미소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머레이 에델만은 그의 저서 『상징적 행위로서의 정치』에서 미국의 호전적인 매파와 소련의 호전적인 매파는 상호 적대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돕는 관계라는 걸 아주 설득력있게 분석하고 있다. 소련의 매파가 미국에 대해 호전적인 발언을 하거나 그런 행동을 취하면, 그건 미국에서 국방비를 쉽게 증액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며 그래서 군수업자들은 큰 재미를 본다. 당연히 미국 매파들의 입지와 발언권도 강화된다. 또 반대로 미국의 매파가 소련에 대해 호전적인 발언을 하거나 그런 행동을 취하면, 그건 소련에서 매파의 입지와 발언권을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매파와 소련의 매파는 겉으로는 극렬한 언어를 주고받으며 싸우면서도 사실은 서로 돕는 그런 기묘한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기묘한 공생관계는 ‘적의 창출’이라고 하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의 지지와 복종을 얻어내는 데에 ‘적의 창출’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대중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반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을 만드는 데에 따라붙는 것은 ‘위기’니 ‘국가 안보’니 하는 개념들이다. 위기와 국가안보는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다. 그 상징 앞에선 국민의 절대적인 단결과 희생이 요구되고 정당화된다. 민주적 절차와 합리적 판단도 무력화된다. 바로 이런 매커니즘에 의해 미국의 매파와 소련의 매파는 각기 자국에서 자기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그 기나긴 냉전시대를 끌고 왔던 것이다.
남북관계는 어떠한가? 북한은 체제 유지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남한과 계속 으르렁거리고 싸워야만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 만약 남한에 ‘바람론’이 아니라 ‘햇빛론’을 실천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의 붕괴는 시간문제다. 붕괴되지 않으려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서야하며 그로 인한 변화가 북한의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북한의 수구 기득권 세력은 남북 긴장관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그런데 김대중씨는 평생을 일관되게 ‘햇빛론’을 주장해 온 정치인이다. 게다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대중씨에 대한 평판은 호의적이다. 언젠가 김대중씨가 김만철씨 일가를 만났을 때 김만철씨는 북한 주민들의 김대중씨에 대한 그런 평판을 이야기했다가 김대중씨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늘 용공조작의 망령에 시달리는 김대중씨에겐 그런 평판이 고맙기는커녕 오히려 두려운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집권 여당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대중씨의 인기가 높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김대중씨의 색깔이 빨갛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라고 선전할까봐 그게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씨는 그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김대중씨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평판이야 북한이 남한 내의 분열을 위해 정략적으로 만들어낸 측면이 강하고, 또 북한이 김대중씨의 집권을 방해하기 위해 그간 저지른 짓이 하나둘이 아닌데 무어 그리 겁을 먹는가?
문제는 김대중씨에 대한 북한 주민의 평판이 어떻게 만들어졌건 그게 바로 북한 정권이 남한의 김대중 정권을 더욱 두렵게 생각하는 이유라는 점이다. 남한의 대통령이 김대중이라는 데 북한 주민들을 향해 남한 정권을 그간 해온 방식으로 매도하고 중상모략하는 것이 먹혀 들겠는가? 김대중씨는 자신이 집권하면 1년 내에 남북의 긴장관계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비아냥 거렸지만, 그건 결코 과장은 아니다. 그로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북한이 여전히 김대중씨의 집권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며, 대선 막판에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 민감한 선거 국면에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건 온당치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김대중씨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게 아니다. 공정선거를 위해 이번만큼은 용공조작과 북풍을 우리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척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