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0 | [문화저널]
‘안전할 권리’, 포기하지 마세요
글·김보금 소비자고발센터 사무차장
(2004-02-12 16:36:14)
“안,정,신,의,보,쿄,쾌,조”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가정시간에 배운 소비자 8대권리를 외우기 위하여 중얼거리는 소리다. 외우는 입장에서는 힘이 들겠지만 한편으로는 소비자운동이 여기까지 왔나 생각하니 기분이좋다.
그동안 소비자 문제를 다루며 가장 우선적으로 짚어보는 내용은 어떠한 경우라도 소비자는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에게 아주 작은 실수가 소비자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경기도 용인에서는 생후 4개월의 아이가 침대 난간에 머리가 끼어 질식사한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질까봐 만들어진 난간에 오히려 머리가 끼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례이다. 이 문제가 발생후에 아이 침대에 대한 법적 규정을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난간의 간격사이가 6cm이하이고 일본은 8.5cm로 난간살에 대한 규정이 있어 침대 제조업자들이 규정대로 만들고 있다.
또한 얼마전 녹즙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손가락이 절단된 사건이 우리지역 김제에서도 있었다. 서울에서는 고발이 많아 병원의 협조로 사고자 통계를 내고 제조업자와 제품에 대한 시연과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확인결과 녹즙기 투입구에 야채를 부수는 롤라가 있어 아이들의 손가락이 들어가면 아주 위험하며 제조처에 설계를 변형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가끔안전과 과 관련된 고발을 받다보면 애매모호한 경우가 있다. 사업자가 소비자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면 보상을 해주어야한다는 P.L.법(제조물책임법)이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지역에 모대학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학생이 커피를 마시려고 파이렉스 스타일의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그러나 사용도중 이상한 소음이 들려 커피포트를 들고 아래 밑부분등을 확인하던중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터지면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심한 화상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이 고발건을 놓고 업체와 우리사이에는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치료비뿐만아니라 화상흉터를 수술하는 성형비까지 받아야할 입장인데 사업자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깨어진 유리조각은 당시 상황을 증명할 수 없고 그 당시에 함께 있던증인도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제조물 책임법을 들어 화상을 입은 부분과 커피포트를 들었을때와 각도등을 재현하고 소지바 잘못이라는 근거를 사업자가 제기하라는 항의에 결국 소비자 보호차원에서 상당히 많은 손해를 업체에서 감수하고 처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발생시 소비자, 사업자, 또한 처리를 하는 소비자 단체도 진실한 마음과 인내심이 있다면 대부분은 처리가 가능하다.
며칠전에는 아침부터 상당히 인내심을 요구하는 고발을 받았다. 사연인즉, 젊은 남편인 박모씨가 아침에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부인으로부터 급하게 집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갔다. 이유는 평소 이부인은 생리중에 사용하는 생리대가 보통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생리대가 아니고 질속에 삽입하는 삽입형 생리대이다. 이 생리대는 외부로 실 한가닥이 나와 있어 실만 잡아당기면 쉽게 교체할 수가 있다. 그러나 부인이 아무리 확인해도 당겨져야할 실이 없는 것이다. 이에 부인은 출근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남편이 생리대를 빼기는 했지만 그과정에서 몸에 시술한 루프까지 빠졌다는 사연이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금중요한 것은 몸에 이상유무이니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토록 조치하고 제조처로 연락하였다. 이건을 처리해보니 먼저 실이 생리대 몸체에 박혀져 있어 불량품이었고 다음은 내용을 확인하는 소비자의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병원치료비와 루프 시술비등을 보상받고 처리했지만 처리과정에서 곤욕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남편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고보니 요즘 들어 우리 사무실에 젊은 남편들의 발길이 많아져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성과 관련된 내용을 쓰다보니 그동안 너무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보온병이 폭발하여 눈이 실명되어 의안을 끼게된 소양면에 사시는 아저씨, 임실 사선대에 친구들과 캠핑을 와서 밥을 하던 도중 휴대용 가스렌지가 폭발하여 5명의 총각들 치료비를 처리하기 위해 경기도 안양까지 터져버린 가스렌지와 코펠등을 가지고 가 실험의뢰하던일, 자동차 구입시 판매사원이 선물로 준 3백원 가격의 가스라이터가 주차중에 차안에서 햇빛을 받아 폭발한일, 압력밥솥이 폭발하여 주방 천장이 날라가고 폭발하면서 날아간 뚜껑에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진 소비자를 위하여 애타게 뛰어다닌일 등...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지역에 문제발생시 확인할 수 있는 실험기관이나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안전사고는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데도, 안전교육이 충분치 못한 점도 문제이다. 얼마전 우리지역 스키장에서 일어난 청소년 사망사건을 계기로 청소년들에 안전을 생각하는 의사들의 모임이 전국최초로 결성되어 활동중이다. 반복적인 사고가 일어난다면 바보같은 일이다. 작은 안전사고라도 제품이나 제도등의결함으로 일어난 문제라면 시정이 될 수 있도록 관련업체나 단체등에 알려야한다.
끝으로 아무리 내가 안전하려고 노력해도 달리던 도로가 내려앉고, 반찬거리 준비하려고 간 백화점이 무너진다면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진정한 안정은 각각 위치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가을이다. 단풍이 꽃보다 고운 이계절에 안전사고 없이 신나게 뛰어놀수 있는 우리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