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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8 | [서평]
향토적 정서의 전통적 표상 권오표 처녀시집『여수일지(麗水日誌)』, 문학동네 ·이기반
문화저널(2004-02-12 15:43:01)
권오표 시인의 처녀시집 『여수일지(麗水日誌)』가 도서출판 문학동네에서 지난 5월30일 발행되었다. 변형 신국판 총111면에 63편의 주옥편(珠玉篇)을 제 4부로 나누어 싣고 있다. 시집을 받아든 순간부터 정감이 넘치도록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이것은 권오표 시인과의 긴밀한 인관 관계라기보다는 그 작품성에서 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신인의 첫 시집답지 않게 완숙된 작품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적 재능이 탁월함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가림 시인이 그의 작품해설에서 “권오표의 시는 경박스럽게 춤을 추고 까발려지고, 드날리고,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그런 상인논리의 선정적 스캔들의 유행과는 아예 담을 쌓은 전통적 서정의 길을 지향한다”고 말하면서 “서럽고 한 맺힌 임방울의 쑥대머리의 한 바탕, 또는 비내리는 남도의 어느 흐드러진 술판에서 들었음직한 창(唱)한 토막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그만큼 토속적인 풍류의 전통적 가락을 시편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의 맨 앞자리를 장식하고 있는 다음 시에서 옛날의 향토적 삶의 모습을 친근하게 읽을 수 있다. 누이야 아직도 청솔가지 연기에 눈 매워 옷소매 젖어 있는가 하동 포구 울리는 임방울의 쑥대머리 한 대목에 건너 산만 바라는가 석삼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임 -「압록(鴨綠)을 지나며」전문- 간결한 시적 구성도 구성이려니와 응축된 내용이다. “석삼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임”은 하동 포구의 풍류속에 숨겨진 이야기의 주인공일 것이다. ‘오지 않는 임’을 그리며 기다림에 지친 한숨과 애타는 몸부림, 그 뒤에 남은 한(佷)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석삼년’이라는 주관의 세월 속에 멍들어 잇는 한, 그것보다도 곡진하게 남아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지속되는 인생의 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는 번민에 싸여 고통스럽게, 때론 슬픈 이야기로 점철된다. 조아리며 조아리며 오다보면 더러는 조선의 지어미 가난한 눈썹에도 내려 눈물로 지다가 때로 동백꽃 이파리에 앉아 양지바른 섣달 초이레 피멍울로 되다가 -「눈2」전문-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고뇌를 자연과 연관시켜 사유(思惟)하는 심연의 정서가 아픔으로 피멍울진다. 낭만을 구가하는 겨울의 서정시인 눈(雪)을 ‘눈물’, ‘피멍울’로 상징하여 “조선의 지어미 가난한 눈썹에도 내려” 쌓이는 슬픔과 아픔으로 아롱지게 한다. 그러나 슬픔과 아픔을 딛고 일어설줄 아는 권오표 시인의 의식세계는 그의 시에 강인하게 드러나고 있다. 웃지 마라 이 비린 세상 거품 입에 물고 두 눈 흡떠 오늘도 나는 긴다 당당히 긴다 웃지 마라 -「게」전문- ‘게’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이 비린 세상/거품 입에 물고 두 눈 흡떠”는 비리와 부정이 난무하는 시대상황을 직시한다. 그리하여 감시하고 질타하며 주어진 분수를 지켜 당당히 굽히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강한 정의감의 표현이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작품들 중에서 다음의 시를 본다. 아들아 내 죽거든 행여 울지 말아라 그리고 이내 동 터오는 새벽 동산에 올라 차라리 에미 애비도 없는 후레자식이라 목청껏 말하라 저 강물 오장이 뒤집혀 환장하도록 목놓아 말하라 아들아 모진 하늘아 -「만경강 3」전문- 이 시 속에 담긴 역사성과 공간성을 따져 보면 그것은 결국 우리 민족의 과거요, 현재요, 미래다. 여기에서 “에미 애비도 없는 후레자식”이 시사(示唆)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망국한(亡國佷)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진 하늘아”를 외치는 치열한 몸부림으로 피끓는 의분(義憤)을 토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적 공간은 아름다우면서도 때론 비극적이기도 하다. 그런 이중공간이 그의 시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본적인 축(軸)으로 여겨진다. 시「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2」에서 “갓길 없음/안개 주의”라고 단 두 줄로 한 편을 엮었는가 하면 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청맹과니 청맹과니 눈보라 속을 지등(紙燈)하나 들고 절뚝거리며 가는 사내 -「마흔여섯의 길 건너기 3」전문- 이렇게 인생을 조심조심 살아가는 권오표 시인은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을 닦으면서 자신의 마음거울에 비춰진 사물이나 정황을 순수하고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 시적자아(詩的自我)를 스스로 탐구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권오표 시인임을 나는 거듭 확인한다. 우리땅에 대한 사랑 넘치는 문학작품 『한국의 자생풍수(1·2)』, 최창조 지음, 민음사 ·김두규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한국의 자생 풍수』(1·2)두 권을 출간했다. 그가 펴낸 『한국의 자생풍수』는 한국 풍수의 본질과 역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한 풍수적 해설을 해놓은 귀중한 학술서이다. 학술서이지만 딱딱하지가 않아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까지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그 흥미는 ‘명당을 찾는 법’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유발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우리 땅, 우리 국토에 대한 진득한 사랑과 감상을 진솔하게 기록한데서 비롯된다. 단지 저자가 우리 땅에 대한 사랑을 그저 진솔하게 기록하였다고 해서 흥미롭게 읽혀진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땅에 대한 관념인 풍수사상과 그 흔적들을 설득력있게 잘 해석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저자는 제도권 학계에서 풍수를 학문적 대상으로 가르치고 연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서울대 교수직을 끝으로 제도권 학문을 그만둔 풍수학자다. 그는 “우리의 땅은 우리식의 지리학이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러한 우리식의 전통적 지리학이란 다름아닌 우리 고유의 풍수임을 확신한다. ‘강단학파’와 결별하고 다년간 전국을 답사하면서 우리 고유의 지리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파악하려는 외로운 노력의 결실이 바로『한국의 자생풍수』두 권이다. 저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사상은 다름아닌, ‘자생풍수’였으며 그러한 자생풍수는 중국풍수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초기 자생풍수의 흔적을 감은사지, 제주도와 서남해 도서지방, 그리고 강화도에서 논밭에조차 이름을 붙여주는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정에서 확인한다. 이러한 초기 자생풍수는 도선국사를 거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우리 ‘자생풍수’가 정립되는 것으로 본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초기 자생풍수를 정리하고 당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이론 풍수를 우리 풍토에 맞게 재구성한 ‘도선풍수’를 저자는 ‘자생풍수’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자생풍수’와 ‘도선풍수’는 동일한 개념으로 보아 별 문제가 없다. ‘자생(도선)풍수’에 대한 개념정의에서 출발한 저자는 『한국의 자생풍수』제 1권 첫 자에서 도선풍수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가를 현장답사를 통해 추적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풍수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생(도선)풍수’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도선풍수는 우리 땅 전체를 살아있는 어머니로 본다. 어머니가 편찮으면 그 자식이 편할 수 없다.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려야 한다. 병든 어머니, 병든 땅을 고쳐드리는 주된 방법이 비보(裨補)풍수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문제가 있는 땅에 절을 짓거나 탑을 세우는 비보사탑설(裨補寺塔設)이다” 동네 입구의 조산(造山)과 돌탑, 돌무덤, 비보수, 장승, 돌판에 서 있는 선돌(입석)과 남근석 등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비보풍수의 흔적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는 “풍수란(···) 땅의 질서와 인간의 논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점과 갈등 속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땅에 대한 지혜”라고 결론 내린다. 『한국의 자생풍수』1권 제 2장은 그러한 자생풍수(도선풍수)의 현장을 찾아 전국을 답사한 저자의 풍수기행문이다. 단지 도선풍수의 흔적을 찾아내 기록한 글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저자의 우리 땅에 대한 사랑과 감상을 적은 빼어난 문학작품이다. 직접 발로 뛰면서 썼기 때문에 생동감과 현실감, 그리고 설득력을 더해주며, 우리 국토, 우리 문화,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글들이다. 저자는『한국의 자생풍수』1권 2장에서 못다 수록한 풍수기행문을 『한국의 자생풍수』2권에서 ‘한국의 명당 자료집’이라는 이름으로 보충한다. 전국을 읍, 면 단위까지 돌면서 그곳 마을과 산하 및 땅이름에 대한 풍수지리적 해설과 견문(見文), 그리고 기초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록한 글로 기존의 어떤 관찬(官撰)지리지(地理誌)보다도 뛰어난 우리땅 안내서이다. 『한국의 자생풍수』에서는 묘지풍수가 발붙일 소지가 없다. 묘지풍수의 유행을 저자는 중국풍수가 본격적으로 이땅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조선조 성종 무렵으로 본다. 이러한 중국풍수는 주로 묘지 발복을 중시하는 술수적 요소가 강해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던 것이다. 저자는 중구그이 이론 풍수와는 달리 한국의 ‘자생풍수’는 양택(집터)과 양기(마을, 중소 대도시)풍수의 주류가 되었음을 현장답사를 통해 밝히고 있다. 『한국의 자생풍수』1권 제 3장은 제도권 학계(주로 지리학과 역사학)의 풍수비판에 대한 반론이었다. 90년대 전후, 풍수를 빙자한 황당무계한 책들과 자칭 ‘풍수도사’들이 설쳤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손석우의 『터』이다). 또한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명당잡기 및 호화 분묘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마치 그 잘못이 최창조에게 있는 것처럼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언론과 일부 지식인들의 풍수비판이 간헐적으로 시작된 이후, 1994년에 출간된『한국사 시민강좌』제 14집에서 촤창조 풍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최교수는『한국의 자생풍수』1권 제 3장에서 반론을 전개한다. 이 부분은 풍수 호사가들뿐만 아니라 역사학, 지리학, 민속학, 조경학, 국문학, 인류학, 생태학, 문화사 전공 등 다양한 학자들이 정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글이다. 풍수에 관한 올바른 이해와 학술적인 풍수논쟁을 위해서이다. 논쟁과 토론을 통해 제국주의(특히 서구의 문화제국주의)침략 이후 거세당한 풍수를 비롯한 우리 전통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복권(復權)을 기대해본다. 다른 한편 근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고조와 그에 편승한 ‘문화 복고주의’의 맹목(盲目: 까닭없이 아무 곳에나 장승을 세우는 것도 그 단적인 예이다)도 『한국의 자생풍수』를 통해 개명(開明)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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