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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8 | [문화와사람]
문화와 사람 -전 국림민속국악원장 박재윤-
문화저널 -전 국림민속국악원장 박재윤-(2004-02-12 15:39:21)
남원은 전라북도가 자랑하는 관광의 명소이다. 그곳에는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 있다. 그 신비함의 정체는 남원의 광한루를 지나 요천을 건너보면 조금은 분명해진다. 그곳에는 동편제의 거리가 있고, 그 너머 단정하게 꾸며진 관광단지에는 춘향문화예술회관과 국립민속국악원이 떡 버티고 서있다. 지난달 23일로 국립민속국악원의 수장을 퇴임한 박재윤 선생(79)은 남원의 느낌을 간추려온 남원 국악사의 산 증인이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만큼 정정하고 강단진 음성은 그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능히 짐작케한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지난 5월30일 개관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우선 국악의 본향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남원에 드디어 국립국악원이 들어서면서 이제 국악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였고, 두 번째는 이 국악원에 붙여진 ‘민속국악원’이라는 명칭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원이 새삼스럽게 국악의 본향으로 주목받게 되는 언저리에는 박재윤 선생이 일생을 바쳐오다시피한 열정이 배어있다. “국립민속국악원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연구와 교육활동입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아악의 전통과 함께 민속음악의 본거지가 될 것입니다. 민속음악은 서민대중의 음악이고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생활 속에서 지켜온 음악입니다.” 그가 정리하는 민속국악원의 목표는 결국 국악의 대중화와 만난다. 그가 보는 국악의 방향은 곧 민속음악의 강화에 있고, 그것은 물론 끈질긴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남아있는 민속음악을 샅샅히 찾아낼 것입니다. 그렇게 발굴된 민속음악을 정리하고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재창작하고 무대화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생각입니다.” 그는 팔십평생을 남원사람으로 살아왔다. 남원을 거쳐나간 수많은 국악인들은 그의 동지였고 후배들이었다. 그가 국악과 인연을 맺었던 것은 50년대 도의원으로의 활동을 끝으로 지방정치에서 손을 떼면서부터였다. 끝간데없이 추락하고 있었던 남원의 국악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72년 오랜 방황을 끝내고 막 남원에 돌아온 강도근 명창과 함께 남원시립국악원을 제조직하고 나서 지금까지 그는 남원의 국악을 이끌어온 야전사령관이었던 셈이다. “강도근 명창과는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국악발전에 있어서도 오랜 동지사이입니다. 강도근 명창이 남원에 돌아와 남원국악원을 재조직하면서 남원국악은 전성기를 맞은 셈입니다.” 강도근 명창으로부터 소리와 창극의 기초를 배운 제자들이 전국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그 노력은 80년대 초반 창극의 부활로 이어졌다. 그의 남원국악에 대한 애정은 때때로 너무 지역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 비판들에 대해서 그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전망을 이야기한다. “전체 국악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국악은 지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올해 남원 명창대회와 전주의 대사습을 보십시오. 올해 처음으로 두 개 대회에서 모두 정규대학을 졸업한 명창들이 탄생했습니다. 국악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국악이 남원만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세운 민속국악원의 목표는 남원국악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속음악에 대한 것이지요.” 김영훈과 강도근이라는 걸출한 명창으로부터 시작된 남원국악의 제 1세대는 이후 창극시대로 넘어가고 이제 다시 체계적인 교육을 거친 새로운 세대로 주된 흐름이 넘어가고 있다고 그는 평가한다. 남원에 자리잡은 민속국악원과 그 든든한 후원자인 박원장은 이제 적은 장비와 인원으로 진정한 우리 색깔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는 곧 국립민속국악원의 원장자리를 후진에게 넘겨주고 남원 국악의 원로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그의 뜨거운 열정은 여전하다. 노병은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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