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7 | [저널초점]
풍납동에 토성이 있다·정철성
정철성
(2004-02-12 15:29:50)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보면 무덤 파는 사람들이 가엾은 오필리어를 위해 무덤 자리를 만들다가 해골을 세 개 캐낸다. 어린시절 자신을 업어주기도 했던 광대 요릭의 두개골을 들고 햄릿은 알렉산더의 몸이 지금 술통마개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읊조린다. 무덤에 여러 손님이 들어간 것은 연극에나 나오는 일이 아니었다. 평생 돈에 쪼들렸고 그래서 공동묘지에 묻혔던 모차르트의 묘지는 정기적으로 묘지를 개장하면서 파헤쳐졌고 그때 그의 유골도 사라졌다. 몇해 전이던가 모차르트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는데 그후 별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슷한 경우를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 있다. 몇해전에 윤선생이 고분을 발굴하는 현장에 구경갔다가 두 무덤이 겹쳐있는 것을 보고 애틋한 사연이라도 있는 것 같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서운하게도 서도 시대가 다르다고 일러주셨다.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조사의 무덤 옆구리에 어느 불손한 후손이 들어가 누웠던 것이다.
사람이 죽어 혼백이 분리되면 탁하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아 땅으로 내려가고 맑고 가벼운 것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생사의 경계를 넘어가는 까닭에 이런 말은 시시비비를 따져봐도 결론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끈질긴 욕망은 그것이 무엇이든 육체의 그릇 속에 죽음을 견디고 살아남는 불멸의 요소가 숨어있다고 믿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그 불멸이 요소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다고 믿는다. 사는 일도 어려운데 나중 일을 걱정해서 무엇하리오만, 죽어도 끝나지 않음이 우리의 인연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좀더 진지하게 삶의 태도를 가다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환생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다시 돌아온 세상이 다른 세계가 아니라 지금 이 세계와 연속성을 가질 때 우리의 마음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쉴 것이다. 돌아와 보았자 터럭만큼도 근 닿는데가 없는 곳이라면 구태여 돌아올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망각의 강을 건너면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다고 하니 모두 부질없는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가 다시 돌아올 곳이 이곳이라면 우리는 이곳을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것처럼 우물에 침뱉고 떠난 사람이 머지 않아 그 물 마시러 다시 온다고 하지 않던가? 당신이 환생을 믿으려면 우리들의 지구를 재활용할 의지부터 갖추어야 할 것이다.
환경보호론자들은 우유통으로 휴지를 만드는 재활용이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권고이다. 예컨대 우유는 좀 무겁더라도 유리병에 담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토지의 경우에는 재활용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인다. 대를 물려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논밭을 갈아 일구는 것은 흠이 아니라 자랑거리이다. 논을 메워 공장을 짓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감내할 수밖에 없다. 좋은 묘자리에 여러 사람이 순서를 좇아 들어가는 것도 같은식으로 생각하면 괜찮은 방법이다.
이렇게 토지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재활용을 절대적인 규범으로 삼는다면, 다시 말해 그곳이 어느 곳이든 다시 써야 한다고 우긴다면,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정하는 방법이야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과거의 중요한 유적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동안 개발에만 치중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과 유적의 원형을 보존함으로써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의 가치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개발의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역사는 종족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며 유물과 유적은 문화의 유전자가 새겨진 역사의 유골이 아닌가? 내가 환생하여 다시 올 때를 대비하자고 해도 좋고, 나의 분신인 후손들을 위하여 아껴두자고 해도 좋다. 쓸 것은 쓰고 아낄 것은 아껴두자.
5월에 서울근교로 백제기행을 다녀왔다. 교하에 들러 황혼녘에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것도 보고, 다음날 올림픽공원의 몽촌토성과 석촌동 고분군, 암사동 유적, 이성산성 등을 둘러보았다. 석촌동에 있는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적석총은 복구하기 전에는 어느 시민의 안방이 반 가까이나 고분속으로 파고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몽촌토성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올림픽 덕분에 해자에 들어선 조형물도 볼만했다. 그러나 풍납동 토성자리를 둘러보면서 나는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격정에 휩싸여 몇장의 누추하고 쓸쓸한 풍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풍납토성은 사실 이 토성의 제 이름이 아니다. 행정구역상 풍납동에 있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일뿐이다. 둘레가 십리가 되는 이 성이 하남 위례성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지만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높이가 8미터에 밑면폭 30미터라는 이 토성은 한강에서 밀려오는 토사에 묻히고 안팎이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이리저리 훼손되어 조그마한 둔덕으로 변하고 말았다. 내다버린 쓰레기가 푸석푸석한 먼지를 날리고 잡초가 삐죽거리는 모습이 버려진 무덤처럼 쓸쓸했다. 조금 평평한 곳에는 인근 주민들이 고추며 옥수수를 뿌려놓아 제 모습을 그려보려는 나의 상상에 빗금을 치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최근에 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하다가 지하 4미터 깊이에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건설현장이었다. 한강의 범람이 참으로 고맙게도 백제의 삶을 덮어 보호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인부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아무 볼 것 없으니 들어갈 것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된다고 길을 막았다. 게다가 이미 발굴조사가 끝난 곳은 파헤쳐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주택조합이며, 건설회사며, 서울시 당국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피고 쏠리는 것을 느꼈다. 너무 늦었다는 말이 외국어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이십년 전만 해도 풍납리는 군데군데 호박줄기가 늘어진 한적한 곳이었다고 한다. 버림받은 성이었지만 원형의 흔적은 간직하고 있었던 셈이다. 토성은 흙더미가 아니다. 판축기법으로 한켜한켜 쌓아올린 토성은 곡괭이로 찍으면 자루를 되튀길 만큼 견고한 구조물이라고 한다. 천사오백년을 견뎌온 우리들의 성이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 말은 지금 당장 풍납토성을 발굴하자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손대지 말고 제발 그대로 두어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풍납동에 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