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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7 | [문화저널]
명창이 되는 필수과정·최상화
최상화 (2004-02-12 15:27:55)
초복을 지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판소리를 연마하는 소리꾼들은 이른바 「산공부」를 위해서 깊은 산중을 찾는다. 인적 없고 적막한 산 속, 혹은 폭포수 아래에서 보통 백일 정도의 일정으로 행해지던 예전의 산공부는 지금과 달리 주로 독공(獨工)으로 이루어졌다. 토굴이나 움막을 거처삼아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며 오로지 소리에 살을 붙이고, 득음(得音)에 도달하기 위해 벌였던 산공부야말로 명창이 되는 필수 과정이었던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두 가지 일화는 소리꾼이 명창이 되는 과정에서 산공부의 역할과 비중이 어떠했는지 잘 시사한다. 순조 무렵에 활동하였던 전기 8명창 중의 한 사람이 송흥록(宋興綠)은 판소리의 중시조(中始組)요, 가왕(歌王)이라고 불려 진다. 그가 처음으로 공부를 마치고 세간에 나와서 명창으로서 명성을 얻을 무렵, 한번은 대구 감영에 불려가 소리를 하게 되었다. 소리를 마치자 여기 저기서 과연 명창이라고 칭찬하는데 다만 한사람, 당시 일등 명기(名妓)로 있던 맹렬(猛烈)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송흥록의 그 연유를 물은 즉, 명창은 명창이나 앞으로 피를 세동이는 더 토(吐)해야 비로소 참 명창이 되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송흥록은 그 길로 고향인 운봉 비전리에 돌아와 폭포 밑에서 산공부를 시작하고, 석달이 지나자 과연 검붉은 피가 서너 동이나 쏟아졌다. 그리고 목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소리가 폭포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다시 송흥록이 대구 감영에 가서 맹렬 앞에서 소리를 했는데, 그날 밤으로 맹렬이는 행장을 차리고 송흥록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역시 전기 8명창 중의 한사람인 주덕기는 원래 송흥록, 모흥갑의 고수(鼓手)였으나, 나중에 명창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벌목정정(伐木丁丁)이라는 별호(別號)를 얻었는데, 그가 소리 공부를 결심하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 소나무 밑둥지를 베어놓고 주야로 치제(致祭)하면서 수련하는 과정에서 소나무 수십주가 채벌(採伐)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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