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약’인지 ‘곶감’인지 우리가 가려야 한다
-미술시장 개방, 그 파고의 의미-
치열한 자기진단이 절실하다
-미술시장 개방과 전북화랑의 전략-
97년의 미술계는 ‘개방’이라는 이슈로 소란스럽다.
개방의 파고는 정치·외교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우리는 자의건 타의건 올해부터 미술시장의 빗장을 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미 1992년 개방이 시작 된 미술시장은 다시 화랑업.
미술관을 개방하는 절차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미술시장도 그 동안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나름의
성장을 보여주었으나, 외국 화랑의 객관화된 가격제도,
고도의 마케팅과 서비스 등을 무기로 한 미술시장은 아직 경쟁력이
못 갖춰진 우리나라 화랑에 큰 타격을 줄 것임은 이미 예상된 일이다.
개방의 물결을 헤쳐나가기 위해 국내 화랑들은 가격 적정화를 위한 시도로
경매제를 도입하고 기존 작품가격의 불합리성을 깨기 위해
작품당 가격제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으며, 또 인터넷에 우리 미술품을
홍보하는 홈페이지를 마련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고심중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미술시장 개방이 우리 화랑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그간의 우리 화랑계에 대한 진단과 아울러 고쳐져야 할 병폐들을 살펴보고,
특히 중앙과 지방이라는 격차, 미술시장이라는 개념조차 서있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기만 한 도내화랑이 살아나갈 전략들을 살펴보았다.
특집 / ‘97 한국미술시장 개방
‘쓴 약’인지 ‘곶감’인지 우리가 가려야 한다
-미술시장 개방, 그 파고의 의미-
글·김태호 문화저널기자
전주와 같은 중소도시 미술시장 사정은 개방 초기부터 표면적으로 큰 변동을 감지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방의 파장이 미치는 영향력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그 파장 자체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다.
밀려온 개방의 물결
요즘 전주 화랑가와 전시공간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림전은 전과 다름 없이 전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룹(혹은 작가)의 그림이 주종을 이룬다. 평소 짬짬이 틈을 내 화랑을 돌아본 사람이면 익숙하게 이 곳 화랑을 돌아보며 유화는 물론이고 수채화, 판화, 테라코타 및 대리석 조각 혹은 농담과 여백의 미를 맛볼 수 있는 한국화 등을 구상과 비구상이라는 표현방식을 떠나 어렵지 않게 감상하고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구매력을 갖춘 고객이 아니더라도 소박한 관람객의 경우 맘만 먹으면 그 곳에서 작가의 약력이나 작품이 담긴 인쇄자료를 구입하거나 얻어 올 수도 있다. 판화처럼 작품이 크지 않고 깔끔한 색감과 선처리 등에 좀 더 욕심이 생기면, 가격을 묻기도 하고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경우 월급봉투나 곧 만기가 되는 적금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그 동안 수요자 측면에서 이루어졌던 이런 일련의 행위 대상은 대부분 국내작가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개방된 올해부터는 그 대부분의 자리를 놓고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작가들의 그림들이 국내 작가의 작품들과 자리다툼을 하게 된다. 일찍부터 ‘작가-화상-소장가(소비자)’의 객관적 생산·소비구조를 구축해온 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화상들이 축적하고 있는 노하우나 미술사적 매력은, 국내 미술시장에서 자리를 확보하는데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될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카소나 고호 또는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사 일리아레핀 등과 같은 몇몇 근대 유명 작가의 특별전과, 현대작가 위주로 이루어진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국제규모의 미술전 등이 보여준 관객 원력과 반응은 이를 보다 쉽게 증명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이 개방되면서 더욱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은 이들 외국의 중견 작가나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국내 화랑가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피카소, 고호와 같은 세계미술사의 큰 획을 긋고 있는 몇몇 유명 작가에 한정했던 특별전이나 국제규모의 미술전람회 등이 경제력과 시장규모가 뒷받침되는 서울, 부산, 광주 등 대도시 위주로 열렸던 점을 생각할 때, 물론 전주와 같은 중소도시 미술시장 사정은 개방 초기부터 표면적으로 큰 변동을 감지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방의 파장이 미치는 영향력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그 파장 자체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국내 작가들이 작품에 천착해 온 국내 미술시장이 새롭고 보다 다양한 흐름을 접하기 위해 우물 안 울타리를 넘어 세계 미술시장으로 눈을 돌릴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시장이 짧은 기간 동안 잘못 끼운 단추
여타의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술문화는 서양의 그것처럼 이 땅에 사람이 살면서부터 자리를 잡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자본주의 구조에 따른 상업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미술시장’은 언제부터 자리잡은 것일까.
한국 현대 미술의 짧은 역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술시장’이라는 말이 성립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미술품이 재화(財貨)로서 값매김이 시작된 것은, 그 동안의 산업화 정책의 효과가 서서히 가시화되던 1970년대부터로 설명할 수 있다. 월남전 참전과 토목·건설업계의 중동 진출과 같은 특수가 국내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되었고 이어 국내에서도 주택 건설 경기의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아파트 건설 붐도 이때 시작되었는데 이와 함께 한국화를 중심으로 한 그림의 수요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게 되었다. 화상이 속속 생겨나고 미술인구의 증가와 함께 미술에 대한 정보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돼 외형적으로 하나의 시장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각 대학의 미술 관련 학과가 증설되고 미술의 장르도 확대되었다. 특히 서양미술에 대한 관심은 큰 촉으로 확대되었으며, 80년대 들어 색감적이고 동적인 서양화가 이전의 한국화 주도의 국내 미술 시장을 이끌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거쳐 갑작스럽게 형성된 국내 미술시장은, 수요자나 화상이 아닌 작가가 직접 가격을 정하게 되었고 작품가격 또한 작품크기에 비래하는 호당가격제가 관행으로 굳어지는 기형적 성장을 하게 되었다. 대단히 주관적인 작품가 형성과 함께 음성적 거래가 이루어져 공식적인 거래 가격과는 다른 이중성을 보이는 등 불합리한 시장 구조로 정착돼 오다가 1990년대 들어 국제사회로부터 대외적인 시장개방의 요구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개방의 혼란을 줄이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단계적 시장개방이 추진되고 1993년 4월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 화랑이 주최하는 ‘작가로서의 국외화단 진출방법론’이 열려 미술계도 시장개방을 실감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두 달간 열린 이 특강은 외국화랑과 계약서 작정하는 법, 화랑·작가의 책임과 권리, 해외반출입 절차와 통관 등 외국화단의 전반적인 유통구조와 전시개최방법 등 여러 가지 실무적 지식에 관해 소개됐었다. 당시 강사로 참여했던 미국 빅터피셔 갤러리 코디네이터인 소피아 한씨는 “한국 미술시장의 개방과 관련 외국화단의 문을 두드리는 작가들이 늘고 있지만 대부분 소모적인 일회성 행사로 그쳐 안타까웠다”고 말해 전면 개방을 앞둔 당시의 국내 미술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어 12월 2일부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 견본 시장의 하나인 미국 LA아트페어에 국제화랑, 샘터화랑, 박여숙화랑, 부산의 월드아트 등 국내 4개 화랑이 참가했었다. 유럽의 미술 시장과 함께 세계적인 시장 규모와 다양성을 갖추고 있는 미국 미술시장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해‘로 지정참가비를 30%이상 할인해주면서 국내 화랑의 참여를 유도했던 ’93 LA아트페어는 한국 미술 시장을 겨냥한 탐색의 시발로 해석 할 수 있다.
국내 미술시장의 불합리한 가격 구조와 관련해 이 사이 국내에서는 ‘작품값을 전액 지불하고 소장하되 일정 기간을 정해 그 안에 작품을 되물리고 싶을 경우 언제든지 값을 반환받을 수 있는 ’은행지급보증제‘가 도입됐다. 박영선·김흥수·안동숙·나상목·오룡길 씨 등 서양화 및 한국화가 1백 15명의 작품 3천여 점이 등록됐으며 ’살 때는 고가, 팔 때는 저가‘라는 당시 미술시장의 병폐속에서 ’작품의 환금성을 보장‘이라는 긍정적 평을 얻었었다.
1994년에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루 국내 미술시장이 새로운(?) 각도에서 주목받았다. 금융개혁에 맞물려 미술품 거래가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이 때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문제가 제기되어 재계와 미술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시장은 크기보다는 작품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작품당가격제가 조직적인 시장구조와 함께 뿌리를 내려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국내에서도 일부 화랑을 중심으로 작품당가격제를 도입하는 등 체질개선을 꾀하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체질개선 없이 맞닥뜨린 개방
1995년은 유네스코 지정 ‘미술의 해’였고 이와 함께 광주에서는 국내 최초의 국제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가 개최돼 국내 미술계의 긴장과 함께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런 즈음 국내 미술시장의 수요가 늘면서 침체와 불황을 거듭하고 있는 유럽 미술 시장이 한국을 주목한 것이 피악(FIAC)이다.
세게 최고 수준의 국제 미술견본시장인 프랑스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견본시장(FIAC)은 1995년 말 1996년을 ‘한국미술의 해’로 지정해 국내화랑의 적극적인 참여를 타진해왔다. 국내 15개 화랑, 34명의 작가가 1996년 10얼 2일부터 7일까지 열린 피악(FIAC)에 세계 15개국 142개 화랑과 함께 출품했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작가의 역량을 국제무대에 널리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고 , 대내적으로는 미술시장의 전면 개방을 코앞에 두고 국내 미술계의 현주소를 세게 미술시장의 흐름과 함께 진단하는 값진 계기가 되었었다. 파리의 피악(FIAC)이 국내 미술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포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내미술시장의 국제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피악의 개최를 전후해 3국내에서도 외국화상들의 한국시장 진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미술시장 전면 개방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들을 보여주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 지난 12월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서울 국제미술제(AIS)이다. 서울 국제미술제는 외국 유력 화상과의 교류를 트고 국내 작가의 세계무대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 계획으로 피악(FIAC), 미국 시카고, 스위스의 바젤 등 국제미술시장을 주도하는 3대 아트페어를 모델로 구상됐었다. 당초의 의욕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국내 시루시장의 자생력 강화를 목적으로 가격 경쟁력의 회복과 개선 의욕이 구체적으로 표출된 행사였던 것은 분명하다.
국내 미술시장 개방을 전후해 국내 작가들도 세계 미술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크고 작은 혹은 집단적 개별적인 돌파구 찾기가 계속었으며 그 동안 미술품 경매제와 가격 정찰제의 도입 등을 통해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호당 가격제의 폐해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편 이전에 화랑회와 일부 화랑에 의해 몇 차례 미술품 경매가 시도되었었는데 이런 흐름은 1996년 3월에 국내 최초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한국미술품경매주식회사(대표이사 김정웅)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가격의 객관화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이러한 자구의 노력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조급함이 아닌 자기진단을 위한 고심
올해부터 개방된 '미술시장의 개방'이란 구체적으로 화랑업, 미술관업 등의 개방을 말한다. 이미 지난 1992년 개방된 한국의 미술시장에서 유럽이나 미국 등 세계 유수의 화상들이 이제는 버젓이 활동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울러 울타리 안에서 대부분 국내 작가의 작품을 위주로 기획해오던 국내 화랑들은 그 동안 쉽지 않았던 유명 외국작가의 작품들을 기획해 전시할 예정이다. 미술시장의 전면 개방이 한국 미술발전에 '쓴 약"이 될지 '곶감'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내 미술계가 미술시장의 많은 문제점과 어려운 창작여건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 힘입어 짧은 기간동안 많은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시장개방이 국내 미술계의 위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쟁과 자아형성에 득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치열한 자기진단이 앞서야 할 것이다. 세계 미술시장을 주도해나가는 유럽·미국시장이 불황을 현대미술의 전반적인 혼돈상황으로 해석하는 나름대로의 진단은 하나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시장들이 국내미술 시장을 그 들의 새로운 시장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편 각 나라는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해 한국종합전시관에서 열린 서울국제미술제(AIS)를 두고 나온 '단지 방황하는 마음의 조급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일군의 평은 한편 귀담아들을 만하다. 세계미술계의 흐름과 현대미술의 지향하는 흐름 위에 우리 문화와 미의식을 보여줄 수 있는 미술시장을 일구는 것은 시장개방과 함께 손님을 맞은 주인의 바른 자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삶의 질을 가꾸는 측면에서 미수문화가 한 사회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게 하는 것은 미술계 내부만의 문제일 수 없다.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미술문화만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술품에 대한 가격형성의 불합리한 요인과 이로 한 인플레 현상, 상대적으로 객관성이 결여된 거래구조,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외국 화상에 견주기 힘든 국내 화상의 영세함 등은 미술시장의 차고 속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