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3 | [저널초점]
동계유니버시아드 문화행사, 무엇을 남겼는가
문화저널(2004-02-12 15:01:33)
벽두의 법안 기습처리와 한보사태 그리고 황장엽 망명사건. 그리고 국가적 위기를 호소하는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를 보면서 봄을 실감(?)하게 된다. 어물어물 넘어가는 아지랑이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봄날의 춘곤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지우는 사람도 없다. 너나 없이 ‘쉽게 잊는다’는 얘기를 이젠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2월 초 막을 내린 동계U대회. 모든 경제적 문화적 역량이 서울중심으로 편중돼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제규모의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룬 것은, 다름 아닌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숨은 저력의 공이다. 하지만 손님 맞을 채비를 서두르면서 보여주었던 동계U대회 관련 문화행사는 분명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부족으로 비롯된 행사의 면면들, 일을 코앞에 두고서야 황급히 서두른 고질적 병폐가 예외 없이 발휘된 것이다. 저널초점에서는 동계U대회관련 문화행사를 전시와 공연부분으로 나누어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했던 도내 일간지 문화부 기자들의 시각으로 그 잘잘못을 따져보았다. 소를 잃고 난 뒤에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던가.
공연 나열식 행사,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글·이상덕 전라매일 문화부 기자
‘97무주 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문화축전 가운데 성대하게 치뤄진 공연문화는 양적으로 풍부했으나 질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는 것이 이번 행사를 지켜본 문화예술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전북도가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10 이벤트 문화축전과 전주시 주최의 각 종 공연과 전시, 선수촌 곳곳과 성화봉 송길에서 열린 축제문화, 그리고 사단법인 호남오페라단이 기획한 〈춘향전〉, 우진문화공간이 주관한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등은 이번 행사를 대표하는 공연들이었다.
특히 도내 일원에서 다양하게 열린 각종 공연행사는 도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적극적인 형태로 치뤄졌지만, 일부 문화행사에 있어 드러난 운영상의 문제점과 과연 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축전으로 정착됐는지 하는 의문에는 한계점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이번 축전이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규모를 갖춘 문화 행사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지적은 문화행사가 단순한 전북잔치에 그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자아냈다.
그러나 성화봉송길에서 그 지역에 맞는 각 종 농악놀이와 길놀이 축제 등의 민속놀이는 각 지역이 갖는 문호행사의 원형발굴과 토착놀이 정착이랑 점에서 향토축제의 전형을 보여주었으며 이번 기회로 향토문화예술이 새로운 의미에서 조명, 발국되어야 함을 시사했다.
97동계U대회 문화축전 가운데 호남오페라단의 춘향전과 우진문화공간의 판소리다섯바탕의 멋은 민간차원에서 기획해 무대화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의 가장 돋보이는 공연으로 평가된다.
「판소리 다섯바탕의 멋」은 그 동안 매년 소극장 무대에서 현존하는 판소리의 전모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공연이었으나 동계U대회를 맞아 전북예술회관 무대로 그 장소를 옮겨 대형으로 치뤄져 축제의 의미를 더해줬다. 이 시대의 명창으로 통칭되는 박동진, 이임례, 송순섭, 전정민, 안숙선이 참여해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수궁가 등을 선보인 이 행사는 짜임새있는 행사와 수준 높은 판소리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뜻있는 행사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전북의 정서를 집약해 놓은 춘향전을 서양오페라로 구성한 호남오페라단의 〈춘향전〉은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지역에서 오페라 무대를 꾸준히 이어온 호남오페라단의 역량을 집약해 놓은 무대였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호화 배역진들의 예술성은 이 지역 오페라 무대를 한 단계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전북도가 기획한 문화축전 10대 이벤트는 도비지원 5억3천4백만원과 자체경비 7억8천4백만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수많은 국내외 공연으로 큰 관심을 자아냈던 전북도립국악원의 춘향전과 정읍사 가무악극은 전국순회공연으로 이번 대회 홍보에 크게 기여했으나 배역진들의 잦은 교체 등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또한 풍요로운 전북한마당 종합축제는 국악협회 전북지부가 도내출신 명인명창과 국악인들을 초대해 각 시군의 날을 지정, 흥겨운 한마당 축제로 펼쳐 도민들의 많은 애호를 받았다. 특히 매일 각 시군의 날을 지정, 특산품과 국악의 한마당으로 치룬 이번 행사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주관부서의 공연시간 변경과 홍보책자와 출연진이 맞지 않아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다.
더욱이 부대행사로 마련한 각 종 특산물 판매장과 먹거리장은 향토색을 내세운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난장을 연상케 하는 각 종 음식점과 판매장으로 변해 이번 행사의 옥의 티로 평가되었다.
이와 함께 리틀엔젤스예술단 공연은 이 예술단이 명성에 걸맞게 한국의 전통무용과 세계 각국의 민요 등이 호평을 받았으나 시간 변경과 대회진행의 무질서 등으로 순수 공연장이 제대로 질서가 잡히지 않아 공연문화정착을 위해선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이 개관되어 열린 세계대학예술축전은 세계대학민속예술제와 대학무용제, 대학음악제, 97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 등으로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특히 번듯한 문화공간이 전북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공연장에서 마련된 각종행사는 조명과 음향 등 부대시설 등으로 그 빛을 더했으며 대학무용제 중 광주 발레단의 ‘지젤’과 국내정상급 최현수, 박세원이 참여한 대학 음악제는 그나마 이번 행사에서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밖에 소극장 연극제는 창작극회, 극단 황토, 극단 갯터, 극단 토지, 전주시립극단, 극단 춘향 등 도내의 대표적은 연극단체가 참여해 도내 일원을 순회하며 막이 올랐으나 나열식의 한계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관중동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는 평가다.
또한 전주시와 전주예총이 주관한 97U대회 개막식 축하공연은 빙상경기장이란 특수성을 감안해 주최측의 기획력이 돋보였으며 도립 국악단의 총체적인 추진력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단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았다.
이와 함께 전국대학생 문화예술제전과 마당극 별주부전은 젊은이들에게 대중예술의 다양성을 접하게 했으며 특색행사로 마련된 토속적인 관상과 사주보기 등도 충분한 볼거리 문화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선수친 일대와 각 종 경기장에 있는 문화예술공연에서는 보안상의 문제로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아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선수촌 일대에서 풍성한 잔치와 이에 따른 도민들의 참여열기로 전북문화를 한 단계 승화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단지 보여주기 위한 나열식 공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점을 노출시켰다.
전시 U대회를 겨냥해 급조한 기획전의 허실
글·이종근 전북도민일보 문화부 기자
전북 특유의 독창성을 살린 전시 이벤트, 또는
전북 고유의 미술 정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획전 등이 드물었던 까닭에
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 관람객들과
문화예술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을 받았다.
지난 2월 2일로 막을 내린 97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스포츠 경기 못지 않게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잇달아 열리면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2백만 도민의 능동적인 참여와 역량을 결집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모색, 예향 전북의 자긍심을 널리 고양시킨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제 1 회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를 비롯, 눈그림 6백년전, 97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 등의 대형 전시회는 어디에 내놓아도 큰 손색이 없는 행사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전시회를 제외하고는 전북 특유의 독창성을 살린 전시 이벤트, 또는 전북 고유의 미술정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획전 등이 드물었던 까닭에 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 관람객들과 문화예술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을 받았다.
15종 안팎의 각종 전시회가 열렸지만 외화내빈(外華內貧) 그대로였다.
대다수의 전시회가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겨냥해 급조한 나머지 해당 행사 명칭 앞에 97무주·전주 유니버시아드대회 기념이라는 말을 공수표로 사용했을 뿐 그 동안 해 왔던 전시회(또는 행사)를 확대해 치르는 등 관람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도민들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 현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의욕만 앞선 주관 단체의 주먹구구식 행사준비와 기획력 부족, 투철해야할 예술 정신의 결여에서 파생한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우리는 이 같은 문제점들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짚어보고 반성하는 가운데 겸허한 자세로 수용, 전북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도약의 전기로 삼아야만 한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단 한 번의 행사로 얼마 전 끝났을지라도 전북의 문화예술은 예서 멈출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일회용 전시회를 지양하고 장기적인 안목의 성격을 지닌 채 열린 전시회가 제1회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단 한 종에 그쳤던 현실은 무척 아쉽기만 한 것이다. 또, 젊은 미술학도들이 참여한 전시회가 전국 대학생 서예대전 등 극소수에 그쳐 기성 미술인들의 잔치마당으로 변해 버렸던 현실도 문제로 제기된다.
어디 세계의 젊은 미술학도들의 출품을 유도한 전시회가 있기나 했었나 자문해 본다. 결단코 없었다. 젊은 미술학도들이 미술을 통해 국경과 이종을 초월해 하나라는 인식을 같이 할 기회를 도둑맞았다고(?)보면 어불성설인가.
비록 그들의 작품이 완성도가 떨어지고 완숙미가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써 의미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올림픽이 아닌 유니버시아드대회였으니까. 이유야 어떻든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 관심을 끈 미술 전시회를 짚어볼 필요성을 느낀다.
한국의 서예가 43명을 비롯, 중국의 서예가 14명, 일본의 서예가 6명 등 8개국에서 71명의 서예가가 참여한 제1회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만 45세 이상 65세 미만의 작가가 출품한 이 행사는 전북 서예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임과 동시에 문자 예술의 진수와 현대적 조형성의 현주소를 확인케 하는 등 세계 서예계의 판도를 한 눈에 보게 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3천9백여만원의 예산을 투자하고도 홍보는 잘 됐는지, 또 얼마나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느냐에 직면하면 다소의 의구심이 생긴다는 것이 이 행사를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개막 당일에 펼쳐진 즉석 휘호 행사와 국제 학술대회, 97전북서예초대전을 제외하면 별다른 부대 행사가 없어 전시회 이상의 행사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함께 주로 아시아권에 국한된 서예를 놓고 세계 서예 전북비엔날레라는 명칭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전북서단의 분열현상과 원로작가들이 출품을 배제한 것 등은 옥의 티였다.
세계대학 예술 축전 행사의 하나로 선보인 ‘97한국미술 오늘의 상황전’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위: 「눈그림 6백년전」에 출품됐던 전 이제현(李濟賢, 1287~1367)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옆: ‘97 무주전주 동계U대회 세계대학예술축전의 일환으로 열린 「’97 한국미술 오늘이 상황전」에 출품됐던 오현성 作 「마당이야기(소)」
한국화, 서양화, 조각, 공예 등 4개 장르의 작품을 통해 한국 미술의 다양성 속에서 한국적 정서라는 공통 분모를 충분히 모색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다. 그러나 주로 전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출품작가들의 경우, 주최측인 전북대 미대 교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해 상대적으로 도내 타 대학교 교수들의 참여가 빈약했던 사실은 형평성에 대한 논란의 대상이 됐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마련한 ‘눈그림6백년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다.
고려 말의 작가 이재현과 조선조의 안견부터 근대화가 이상범에 이르기까지 6백년 세월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설경과, 겨울을 주제로 한 작품 1백여점이 전시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동안 전주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제공했다. 특히 국보 100호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지난 70년대 일반에게 공개된 후 25년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 많은 관심을 모았었다.
한국의 흙·불전 등 여타 전시회들도 나름의 의미를 둘 수 있겠지만 전시장의 위치선정 문제, 작품의 수준과 완성도 등 행사의 내용, 전시회의 준비상황, 관람객들의 호응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앞서 소개한 행사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두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