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3 | [저널초점]
저널이 본다
민심 건조주의보, 그 참뜻을 아는가
글·이동엽 문화저널 운영위원
(2004-02-12 15:00:55)
온통 시끄럽다.
앞이 조금도 안 보인다고도 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버젓이 저질러 놓고도 어느 분 말씀 그래도 깃털 몇 개로 몸체를 가려버리는 솜씨를 보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손오공이나 홍길동을 만나는 기분이다.
순진하고 우매한 백성들 쯤이야 가슴이 터지고 메어지건 대형사고 몇 개쯤 때맞춰 터뜨리고 어쩌고 하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대충 잊어주면 고마운 일이건만 이번 일에는 왜들 그리 관심도 많고 물고 늘어지는지 큰산, 작은 산 산중 사람들도 퍽 답답할 일이다.
성역을 없애라는 명령이 성역의 존재를 더욱 확실히 일깨워주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어지고 한 점 의혹도 없이 하라는 지시가 새로운 불신만 더 늘려 놓은 결과로 나타났으니 이 잘못된 선례(두고두고 애용될 무질서의 표본)들이 앞으로 이 사회 전반에 걸쳐 가져올 악영향을 생각하면 산중 사람들이 아닌 도시의 소시민들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일 것이다. 윗사람의 위엄이 땅에 떨어지고 명령이나 지시의 하달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흔들리는 조직 아래서는 모여선 선(線·힘)을 만드는 각각의 점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버려 가지런히 정돈된 질서를 기대할 수 없으며 이에 따르는 비능률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듯이 계획되고 정리된 질서 아래서 모두가 힘을 합치고 더해도 개혁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국인데도 쓰레기통속같은 상황의 연속이니 도무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요즈음 이 정당, 저 단체에서 저마다 내놓은 난국대처의 대안들을 살펴보면 모두 다 옳으신 말씀들이다. 항상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말씀들이니 우리 같은 순박하고 겁많은 백성들 가슴이야 저으기 안심이 되기도 하고 제발이지 그래지기를 간절히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말씀들이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책방에 가보라, 책갈피마다에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진리의 잔치이고 높으신 분들의 조찬기도회가 아니더라도 각 정파(政派)와 종파(宗派)들이 내세우는 얘기 하나 하나가 진리이며 금과옥조(金科玉條) 아닌 것이 있었던가 생각해 볼일이다.
나는 이 귀한 지면을 빌려 훌륭하신 분들의 말씀이나 우국충정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시시비비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백·천마디 말씀보다는, 뒤에서 수근거리는 비생산적인 불평·불만보다는 말씀에 어울리는 하나의 행동이 더 필요한 현실이 아닌가 하고 얘기하고저 할 뿐이다.
지나간 우리 역사의 거울로 볼 때 위기에 처한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고 변화를 주도했던 역할은 통치자나 전문적인 정치·종교집단의 의식보다는 자기의 양심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의 몫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했던 양심들이 저마다 열린 마음으로 손잡고 연대하여 흩어진 질서를 바로 세우고 그 양심에 기초한 질서의 틀 속에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분명하게 세웠으리라. 그리하여 쓸 것과 몹쓸 것의 분별과 위 아래의 전통이 확실하게 섰을 것이며 󰡐나󰡑만 아는 나쁜놈과 나보다 먼저 󰡐우리󰡑를 생각하는 참된 이의 구분을 해내고 그 틀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공동체문화를 발전시켰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현실에서 살고있는 우리가 모두 얼 가버린 얼간이거나 얼빠진 놈이 아닐진대 우리의 핏속에 전통문화 속에 면면히 이어 흐르는 자랑스러운 내것을 다시 찾아내어 저마다 하나하나 실천해 간다면 다시금 번듯한 새 질서를 굳건히 세우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는 각자가 마음을 비우고 열린 마음으로 열어 이웃들과 양손을 서로 이어잡고 커다란 울타리(연대)를 형성해야만이 이성과 원칙이 존중되고 위아래가 서로 화합하고 존경하는 올바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말에 열이라는 숫자는 쥐고 있던 (펴지 않고 숨겨두었던 ) 손가락들을 남김없이 모두 펴보인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숨김없이 열어 펴보인 마음이 진정한 열린 마음이리라. 열지않고 닫힌 마음으로 그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즈음 다행스럽게도 이 지역에서는 열린 마음들끼리 서로 이어지는 ‘울타리 형성운동’이 사회의 여러 계층과 부문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운명을 잘못된 세력이나 집단에 볼모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개척한다는 기본원칙하에 힘들을 모아 참된 인재를 키워내고 다시금 자랑스런 전통을 세우고저 하는 모임들이 하나 둘씩 뭉쳐져 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힘만을 내세워 질서를 무시하고 참된 원로 선배나 여리고 착한 사람들의 가슴에 못박았던 쓰레기 같은 몹쓸 것들이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독선으로 진정한 민의를 무시했던 정치인들, 물려받을 줄만 알았지 물려줄 생각은 전혀 없는 못된 사업가나 비양심적인 지식인들께서는 조금은 걱정이 될 것이다.
눈 크게 뜨고 제대로 된 잣대로 자기들을 재려하는 양심세력들이 부쩍부쩍 힘을 키워 갈 것이기 때문에.
40일이 훨씬 넘도록 겨울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민심의 건조주의보 산사람들 산불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