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 | [문화저널]
검은리본을 달자!
글·최재호 자유기고가
(2004-02-12 14:42:19)
이젠 한 집 걸러 한 대 정도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사치품의 등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유지비’명목으로 불리는 기름값은 모든 자동차 운전자의 고민거리이다. 정부의 계속적인 유가인상은 주머니가 가벼워진 운전자들을 자극했고, 유가인상에 반대하는 「검은 리본 달기 운동」이라는 대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시대의 요구일까? ‘통신’이라는 쌍방향 미디어의 위력을 자동차 운전자들이 이용한 것이다.
최근 하이텔의 카(car)란에 유가인상에 반대하는 한 사용자의 의견이 올라왔다. 이 사용자의 의견은 많은 사용자들의 호응속에서 온라인 상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검은 리본과 구호를 적은 스티커를 차 뒤편에 부착하는 ‘검은 리본 달기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 운동은 각종 사회단체가 조직하는 대규모 대중운동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우선 주체가 불분명하다. 「검은 리본 운동」도 한 사용자의 제의와 그에 따른 호응에 힘입어 실행단계에 들어섰지만 실제로 제의자가 주체는 아니다. 주체는 이 제안에 호응한 모든 사용자들이다. 즉 통신인 스스로「검은 리본」과 차량 뒤편에 붙일 ‘스티커’를 제작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부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의 특성이 드러나는 점은 또 있는데 바로 전국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온라인 운동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소위 총대를 매는 구심점이 없는 관계로 도중하차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01410요금인상 반대운동은 초기 많은 사용자의 지지를 얻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곧 사용자들의 관심영역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공감을 표시한 많은 사용자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단계에 가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확장완성형 반대시위인데 실제 한글윈도우95 발표회장 앞에서 계획된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7명을 넘기지 못했다.
이처럼 온라인 상의 대중운동은 물리적 행동에 있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여론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기여를 한다. 7명밖에 참여하지 않는 확장완성형 반대시위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출시 직전에 기존의 완성형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01410요금인상 반대운동은 두 번에 걸친 요금인상 계획을 무산시키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가요계에 불어닥친 룰라와 김민종에 대한 표절 의 혹 제기도 좋은 결과를 얻은 바 있다. 더욱 더 많은 통신인들의 ‘자기 목소리 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