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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 | [특집]
특별기고 문화유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글·윤덕향 전북대교수·고고인류학과 (2004-02-12 14:40:49)
정부당국에서는 1997년을 ‘문화유산의 해’로 설정하였다. 문학, 미술, 음악 등의 분야를 거쳐 이제 문화유산에 차례가 돌아온 셈이다. 굳이 문화유산의 해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문민정부 들어서 이루어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문화유산들은 전례 없을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또 경부고속철도가 경주를 통화하는 문제를 두고 해 넘긴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청의 철거를 둘러싼 논쟁도 일반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최근에는 골프장 건설과 문화재 보호가 첨예하게 맞서있는 곳도 있다. 문화유산의 해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문민정부 들어서 이루어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문화유산들은 전례 없을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언필칭’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문화유산 관련분야에 종사하면서 마냥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나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닌 것을 편향된 시각 탓으로면 돌릴 수는 없다. 부분적으로는 매사를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판단하고 파악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그 같은 개인적 성향과 관계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에서 비롯한다. 천년의 역사 도시인 경주의 인근으로 고속전철이 지나도록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주에 경마장을 만드는 것이 온당한 일이고 지역의 발전에 득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를 상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논의의 범위를 좁혀 우리 지역의 경우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이 있는가? 아니 문화유산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문화정책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대체로 문화가 가진 속성에 의하여 문화의 의미를 어림할 수는 있다. 문화의 속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간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이며 집단 성원들에 의하여 공유되는 관념, 또는 생활양식이다. 문화를 이런 정도로 파악할 때 오늘의 우리 문화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우리 자식의 문화에 녹아들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문화유산이라 칭하는 것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또 우리 지역의 문화(문화유산을 포함하여)는 나름의 특성을 지님으로서 우리 나라 전체의 문화에 기여하고 우리 나라 전체의 문화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한편으로 우리 지역 성원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를 소리쳐 외치는 정부에서 굳이 문화유산의 해를 설정한 이유의 하나도 바로 이 같은 우리 민족자체의 문화와 그를 통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지방자치 단체마다 지역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문화의 상품화, 또는 문화관광을 제시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었다. 이 같은 외침은 우리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그 때마다 개개 지방자치단체에는 참으로 훌륭한 문화상품이 있다고 한다. 발빠르게도 우리 전북에서는 도에 문화관광국이 설치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관광이 무공해 지역개발방안의 하나로 적지 않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관광국의 설치와 더불어 정부에서 제시된 문화유산의 해는 기막히도록 잘 부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참으로 그럴 것인지 잠시만이라도 따져볼 일이다. 현실적으로 지정문화재의 경우 우리 지역은 충남, 경북, 서울 등지에 비하여 적을 뿐만 아니라 이웃 전남지역에 비하여서도 적다. 그 이유를 단지 위에서 말한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만으로는 변명할 수가 없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가치판단의 기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유산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한 것에서 비롯된다. 논의에 앞서 문화유산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의 정의는 아직 정부당국에 의하여 제시된 바가 없으며 이로 보아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유산을 일반적인 의미로 파악할 경우 문화유산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재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재의 경우 재(財)라는 용어에 의하여 얼마간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문화유산은 가치판정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가치가 없는 것도 포함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문화재라는 용어에 함축된 가치의 판정에 대한 기준은 대단히 애매할 수가 있으며 관점에 따라 가치가 다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구체적인 발표가 없어 분명하지 않으나 정부당국에서 파악하는 문화유산은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포괄적인 문화유산이 아니라 문화재와 거의 같은 의미에서의 사용인 것으로 생각된다.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것은 문민정부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주관적으로 문화재와 같은 의미로 문화유산을 파악하고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우리 지역의 경우 주지하다시피 후백제시기를 제외하고 도읍으로 기능한 시기는 없다. 즉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중심으로 기능한 적은 없다. 그 결과 도읍이었던 경주, 부여, 공주나 서울 등에 비하여 소위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국가에 의하여 지정된 문화재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지역의 경우 흔히 말해지는 바와 같이 예술의 고장이며 산업사회이전 단계 농경을 기반으로 하던 시기에는 보다 만은 사람들이 삶을 이어온 터전이다. 이런 점에서는 적지 않은 문화재,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지정문화재의 경우 우리 지역은 충남, 경북, 서울 등지에 비하여 적을 뿐만 아니라 이웃 전남지역에 비하여서도 적다. 그 이유를 단지 위에서 말한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만으로는 변명할 수가 없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가치판단의 기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유산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한 것에서 비롯된다. 문화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도읍이었던 시기가 짧은 우리 지역의 경우 보다 강조할 수 있는 것으로 농경에 기반을 둔 기층문화, 또 동부산간지역의 경우 독특하게 형성된 역사적, 기층적인 문화에 대한 가치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유형문화재와 매장문화재의 경우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수준을 가늠하기 위하여 두 가지 사례만을 제시하겠다. 첫 번째로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지역 방송매체에서 지역의 문화재에 대하여 프로그램을 마련할 경우 익산 미륵사지와 김제 금산사를 제외한 문화재가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들 문화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 외에 우리 지역에는 문화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 지역의 수준이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지역의 경우 익산시를 제외하고 소위 문화권개발 계획에서 배제되어있다는 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즉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신라문화권, 경남지역의 경우는 가야문화권, 충남지역은 백제(또는 중서부 고도문화권), 충북지역은 중원 문화권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그에 의한 정부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전남의 경우 무등산·영산강문화권 개발계획에 의하여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방 자치 단체 중 그 같은 계획이 없는 곳은 우리 지역과 강원도가 있으며 강원도의 경우도 문화권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다음으로 각 종 건설공사는 지역발전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같은 개발에 의하여 환경이 파괴되고 문화재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다. 이는 지역발전을 위하여 감내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문제는 파괴되는 환경과 마찬가지고 아니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는 보다 심각하게 파괴되는 문화재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 기업에서 아파트를 건설하거나 토목공사를 하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보다 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실시하는 각 종 공사에서 법령으로 규정된 절차를 이행하지 않거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공영사업단을 운영하여 각 종 수익사업을 하거나 공사의 주체가 되어 경지정리 사업 등은 추진하고 도로를 개설하고 야산을 개발하고 있다. 그 같은 사업을 수행하면서 공사 시행 전에 문화재의 존재여부를 확인한 경우는 익산시와 군산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 공사 시행 중 문화재가 발견될 경우 즉각 공사를 중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법령을 따른 경우도 손꼽을 수 있다. 문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지역발전을 위한 상품으로 내세우기에 앞서 장기적인 투자와 발전 계획이 제시되어야 한다. 공산품처럼 생산과 동시에 수익을 기대하는 것으로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가 없으며 자본마저 침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도굴 등 여러 가지가 제시될 수 있으나 이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새로운 문화재의 발굴이나 보존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무형문화재의 경우는 유형문화재나 매장문화재에 비하여 우리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 우월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무형문화재는 물건이 대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능이나 예능을 보유한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문제를 지닌다. 무형문화재를 보통 인간문화재라 하며 이는 인간이 문화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는 인간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능, 예능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따라서 기능이나 예능이 소멸되었을 경우 당연히 문화재로서 지정된 것도 소멸되어야 한다. 또 그 기능이나 예능이 참으로 오늘의 우리 문화에서 의기가 있으며 우리 지역 성원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판별할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그 같은 장치는 없다. 일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기능이나 예능의 퇴보가 있던 없던 아니면 그 같은 기능, 예능을 상실하였던 아니던 관계없이 종신토록 배타적인 예우를 보장받을 수가 있다. 문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지역발전을 위한 상품으로 내세우기에 앞서 장기적인 투자와 발전 계획이 제시되어야 한다. 공산품처럼 생산과 동시에 수익을 기대하는 것으로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가 없으며 자본마저 침식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는 분명히 적지 않은 문화유산이 이다. 그 문화유산을 파악하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우리 몫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물려받은 유산을 유산(流散)시킬 것인지는 우리 지역 성원들이 결정할 일이다. 자칫 1997년이 문화유산(文化流産)의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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