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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저널초점]
검은리본을 달자! 선진국으로 가는 길
글·천이두 문화저널 발행인 (2004-02-12 14:38:59)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한 코미디언의 사회로 진행되는 매우 인상적인 프로를 시청한 일이 있다. 자정이 지난 시각인데 그 코미디언과 그의 일행은 짐차에 대형 냉장고를 싣고 한길 건널목 근처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차들 중에서 교통신호를 제대로 지키는 차가 있으면 그 운전자에게 그 대형 냉장고를 상으로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회자의 걸죽한 익살에 어느새 말려들어 나도 그 행운의 냉장고 주인을 만나는 사업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새벽까지 기다려도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빨간 불이 켜 있는 건널목을 속도도 줄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지나쳐 버리는 것이었다. 교통순경도 없고 또 내왕하는 사람도 없으니 빨간불인들 못 지나칠 게 뭔가, 하는 심사인 듯하였다. 이따금 제법 속을 차린 한두 시민이 빨간불을 보고는 잠시 차를 멈추는 성의를 보였으나 그것은 잠시일 뿐 결국 파란불 들어오기까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내 건널목을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중에 한 시민은 꽤 오랫동안 제법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제야 진짜 냉장고 주인이 나타나는가 해서 괜히 조바심이 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역시 파란불이 들어오기 직전에 결국 발차하고 말았다. 애가 닳는 것은 냉장고를 끌고 나온 그 코미디언 사회자와 일행일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명코미디언일지라도 웃기고 익살을 늘어놓고 할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마침내 그 사회자도 잠시 자기생업을 잊은 듯 사람 웃기는 일과는 정반대의 개탄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런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 또한 서글프다 못해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이 샘솟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요.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잠만 밑졌다는 느낌과 함께 자리를 피려고 일어서는데 그 때 차 한 대가 빨간불이 켜진 그 건널목에 이르러 차를 멈추는 것이었다. 아하 이번에는 제법 속을 차린 시민이 한 사람 나타났구먼 하는 생각과 함께 공연히 또 한 번 속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밤잠을 설쳐 가며 기다리던 보람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끝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고 파란불이 들어온 연후에야 차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진짜 시민을 찾아 새벽까지 망을 보던 코미디언 일행이 마침내 쾌재를 불렀다. 그 시각까지 화면을 지켜보던 나 역시 쾌재를 불렀다. 밤잠을 설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시민이 나타났으니 쾌재를 부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코미디언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차를 세우로 그 운전석을 비추었다. 화면에 클로즈업되어 나타나는 그 운전자는 지체가 몹시 부자유스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운전자 옆 좌석에 앉은 여인도 지체부자유자였다. 그들은 부부 사이라고 하였다. 사회자는 그 운전자에게 운전면허증 좀 보자고 하였다. 운전자의 지체자유의 정도가 하도 심해서 혹시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그러노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운전자는 자기 면허증을 내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량없이 기뻤다.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 우리 시대의 진짜 영웅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연전에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얼마간을 지낸 일이 있었다. 그들의 경제력은 당시의 우리로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였다. 도로가 깨끗한 점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길거리에서 담배같은 것을 물고 다니는 사람을 구경할 수 없었다. 버젓한 신사차림의 인사가 길거리나 대합실 어디서 나 담배를 피워 대는 것은 물론이요, 그 꽁초를 아무대나 슬그머니 버리는 요즈음 우리 주변의 풍경과는 달랐다. 차량이 많이 다니기로는 요즈음의 우리 풍경과 다르지 않았지만 거의 교통순경의 모습을 구경할 수 없었다. 각자 알아서 교통 질서를 지키는 탓이었다. 교통순경이 여기 저기서 휘각을 불고 손짓을 보내고 하는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달랐다. 특히 놀라운 것은 아무리 자정이 지난 뒤라도, 그래서 다니는 사람도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해도 빨간불이 켜 있는 건널목을 마구 건너는 택시 기사를 한 사람도 만나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정부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말하고 머지않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것이라고 말한다. 듣기에 반가운 말인 것은 사실이나, 경제 형편이 좀 나아졌다해서 금방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 좀 벌었다고 몸보신하는데 정성을 쏟느라고 온갖 희귀동물들을 밀렵하게 하고 그도 모자라 외국까지 몸보신 원정을 나가고 곰쓸개다 뱀탕이나 하다가 남의 나라 유치장 신세까지 지고 돌아오는 우리의 모습, 자동차의 물결이 일대 공황을 이루고 잇는 나날의 우리의 길거리 모습, 공장 폐수를 밤중에 슬그머니 버려서 젖줄 같은 하천을 오염시키는 우리의 모습, 며칠 지난 식품에 포장만 새로 하여 새 상품으로 둔갑시켜 진열하는 우리 백화점의 모습……. 이런 모습들을 그대로 거느린 채 과연 우리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을까? 1997년의 새 해가 밝았다. 이제 21세기도 바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돈 좀 벌었다고 금방 선진국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선진국민이 되어야 우리나라도 비로소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글·최재호 자유기고가 이젠 한 집 걸러 한 대 정도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사치품의 등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유지비’명목으로 불리는 기름값은 모든 자동차 운전자의 고민거리이다. 정부의 계속적인 유가인상은 주머니가 가벼워진 운전자들을 자극했고, 유가인상에 반대하는 「검은 리본 달기 운동」이라는 대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시대의 요구일까? ‘통신’이라는 쌍방향 미디어의 위력을 자동차 운전자들이 이용한 것이다. 최근 하이텔의 카(car)란에 유가인상에 반대하는 한 사용자의 의견이 올라왔다. 이 사용자의 의견은 많은 사용자들의 호응속에서 온라인 상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검은 리본과 구호를 적은 스티커를 차 뒤편에 부착하는 ‘검은 리본 달기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 운동은 각종 사회단체가 조직하는 대규모 대중운동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우선 주체가 불분명하다. 「검은 리본 운동」도 한 사용자의 제의와 그에 따른 호응에 힘입어 실행단계에 들어섰지만 실제로 제의자가 주체는 아니다. 주체는 이 제안에 호응한 모든 사용자들이다. 즉 통신인 스스로「검은 리본」과 차량 뒤편에 붙일 ‘스티커’를 제작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부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의 특성이 드러나는 점은 또 있는데 바로 전국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온라인 운동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소위 총대를 매는 구심점이 없는 관계로 도중하차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01410요금인상 반대운동은 초기 많은 사용자의 지지를 얻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곧 사용자들의 관심영역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공감을 표시한 많은 사용자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단계에 가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확장완성형 반대시위인데 실제 한글윈도우95 발표회장 앞에서 계획된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7명을 넘기지 못했다. 이처럼 온라인 상의 대중운동은 물리적 행동에 있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여론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기여를 한다. 7명밖에 참여하지 않는 확장완성형 반대시위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출시 직전에 기존의 완성형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01410요금인상 반대운동은 두 번에 걸친 요금인상 계획을 무산시키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가요계에 불어닥친 룰라와 김민종에 대한 표절 의 혹 제기도 좋은 결과를 얻은 바 있다. 더욱 더 많은 통신인들의 ‘자기 목소리 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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