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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 | [매체엿보기]
풀피리 연주의 신묘한 경지
글·류장영 전북도립국악원수석연구원 (2004-02-12 14:37:41)
문화의 목적은 그것을 누리자는 데 있다. 우리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문화, 우리민족과 더불어 삶을 풍요롭게 이끌어 주었던 수많은 문화는 간직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그렇게 우리가 흘려버린 문화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만든다. 「대금·퉁소·풀피리의 명인」이라는 제목의 이 음반에는, 수집에서부터 복각과 해설에 이르기까지 들인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들의 정성과 노력이 곳곳에 역력히 배어 있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음악 언저리를 기웃대는 사람치고 진도 씻김굿을 듣고 반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진도 씻김국의 기예능 보유자인 박병천의 조부뻘 되는 이가 박종기(朴種基)이며 처음으로 대금 산조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음반에는 먼저 박종기가 남긴 유성기 음반을 모두 찾아내 그것을 복각한 후 한곳에 모았다. 박종기의 연주곡으로는 대금산조 중에서 진양·중머리·국거리·중머리·군로사령나가는데 등의 제목으로 9곡이 실려 있고, 박종기의 뒤를 이어 대금산조의 중시조라는 평을 받은 한주환의 50년대 중반 연주곡 중에서 진양조와 중머리 부분이 이어서 실려 있다. 이 음반에는 유동초의 퉁소 연주곡으로 산조와 봉작취(鳳雀吹)가 실려 있다. 고구려 안악 고분의 벽화 등에 보이는 길다란 종취적(縱吹笛:長)의 모습은 고려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퉁소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 고려 때 당악에 편성되었던 퉁소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향악에 편성되고 민간에 폭넓게 퍼져 가장 사랑받는 민속 악기가 되었다. 음악 환경의 변화로 오늘날에는 퉁소라는 악기 자체를 찾아보기도 힘들게 되어 버렸다. 퉁소 산조도 좀처럼 대하기 어려운 귀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주로 새소리를 묘사하였으며 산조의 출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봉착취 또한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퉁소를 연주한 유동초는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 방개부락 태생이다. 선천적인 맹인이었던 그는 본명이 유봉이었지만, 그의 연주를 들은 이왕직아악부에서 “동쪽에서 이런 명인은 처음 났다.”면서 호를 동초(東初)라고 지어 주었다 한다. 풀피리, 버들피리, 보리피리, 호들기…….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문학작품 속에서 혹은 대중음악의 가사 속에서 흔히 등장했던 말이다. 그런데 퉁소 연주와 마찬가지로 풀피리 연주 역시 지금은 우리의 생활에서 멀어진 음악 유산이 되어 버렸다. 조선 성종때 편찬된 『악학궤범』에도 등장하는 풀피리는 한문으로 초적(草笛) 혹은 초금(草芩)이라고 불렸는데 궁중 음악에도 편성될 정도로 중요한 악기로 취급되었다. 이 음반에 실린 강춘섭의 풀피리 연주의 신묘한 경지는 듣는 이의 감탄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풀잎을 입에 물고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궁금하기만 한데, 당시 가사지에 소개된 내용은 강춘섭의 높은 음악성과 연주 기교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姜春燮氏는 풀닙(草笠)을 입술에 대고 못하는 소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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