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 | [시]
눈 쓰는 사람
유강희
(2004-02-12 14:33:21)
이마에 퍼런 별이 박힌 사나이가
새벽눈을 쓸고 있다.
밤새도록 눈 내리는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지샜는지
아니면 외롭고 쓸쓸한 긴 편지를 쓰느라
밤을 꼬박 보냈는지
사나이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두 눈은 많이 운 사람처럼 부어 있다.
그래도 사나이는 고행의 수도사처럼
오로지 눈 쓰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마치 이 세상의 마지막에 선 사람처럼
부지런한 새도 아직 잠에서 덜 깬
이른 새벽의 어둠을 뚫고
살끝을 에는 차디찬 바람속에서
사나이는 이제 소리없이 울고 있다.
자신의 뜨거운 눈물로 언 몸을 녹이며
하지만 지치거나 피로한 기색도 없이
눈 쓰는 일을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데
사나이는 흰 눈사람이 되어가는데
그의 이마에 박힌 퍼런 별은 더욱 빛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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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희 / 1967년 전북 완주에서 출생.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4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시「어머니의 겨울」당선. 1996년 시집 「불태운 시집」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