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 | [서평]
정직하고 자유로운 글쓰기
『관념과 생리』김교선 지음, 신아출판사
글·전정구 전북대 교수·국문학
(2004-02-12 14:32:46)
국내 유수의 문예잡지인 『현대문학』이나 『창작과비평』의 필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김교선 선생이 두 번째 평론집 『관념과 생리』(1996)를 상재했다. 이번 발간된 평론집에는 선생의 삶의 태도랄까, 혹은 체취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다. 선생이 현실에 몰입하거나 집착한 일이 없었듯이, 선생의 비평 역시 작품에 집착하거나 몰입하는 법이 없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작품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선생의 글쓰기에서 상상할 수 없다. 항상 작품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찬찬히 분석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위 속에서 선생은 ‘작품과 나, 그리고 작가와 독자’ 그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비평의 기본 원칙을 고수한다.
시류에 타협을 시도한 일이 없었던 평소의 삶이 선생의 글쓰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관념과 생리』의 내용이 조화와 균형을, 일정한 객관성을 유지한 비결은 순전히 선생의 삶의 자세나 태도에서 기인한다. 선생은 결코 문단의 유행조류에 휩쓸리거나, 작품·작가와 영합하는 일이 없다. 비교적 정직하고 자유롭게 비평활동에 임해올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이 문학 외적인 문제에 속박되거나, 어떤 이론이나 조류로 자신을 위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갖 서구 지식의 폐기물이 득실거리는 지적 유희에 몰두해 옴으로써 비평계는 문예독자들의 외면을 받아온지 오래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평단은 특정 작가의 인기에 편승한 헌사비평, 특정 문예지의 실력자나 그 산하의 전속 문인에 대한 정실비평, 유유상종의 근친상간비평 등 온갖 찬사와 현학으로 덧칠된 글쓰기 무대로 전락했다. 「한국의 문단풍토 이대로 좋은가?」를 비평계의 비리와 부조리에 대한 조용한 경고로 받아들여도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생은 “어떤 방법론이나 목적의식을 무기로 하여 작품을 재단하는 메마른 비평가의 논평”(401)을 경계한다.
「문제의식만 앞세우는 비평문학」에서 지식을 과시하거나 실험하는 글쓰기로 타락한 비평문학의 병폐를 지적한 바, 선생은 비평 고유의 임무에 충실한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어떤 비평 형태가 되었건 감상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비평은 문예비평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403-404) 선생은 현학적 난해함으로 독자나 작가를 옥박지르거나, 어떤 이론이나 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어느 한 작가를 다루더라도, 선생은 그 작가의 작품을 소상히 읽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문학사적 맥락에서 그 작가의 문학세계를 점검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김정한의 「사하촌」을 평한 글에서 선생은 ‘농민소설의 방법’ 뿐만 아니라, 농민소설의 몇 갈래 유형을 점검하고, 왜 김정한 소설이 좋은 소설인가를 밝히고 있다. 선생의 글쓰기가 객관적 자세를 잃지 않고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이다. ‘조화미의 한 정점’을 이룬 이효석 작품세계를, 서정적·감각적·관능적·탐미적 경향의 리얼리즘으로 규정한 평론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었을 때에 그의 작품은 소설로서 결함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요소들에 서구적인 새로운 기법을 절제 있게 적용하였을 때에 그의 소설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미감은 현대적인 미감의 차원으로까지 변용되어지고 작품의 수준은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점은 그의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신문학 60년의 역사를 통하여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정평이 있는 소설에서는 대체로 이런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가령 이태준, 김유정, 김동리, 황순원, 같은 작가들의 대표작에서도 이런 점은 발견되는 것이다.(39-40)
삶 자체가 그렇듯이 선생은 결코 생경한 논리나 허황한 주장을 앞세우지 않는다. 오상원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난 후, 말로우의 작품 세계와 비교를 통해 “「모반」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의식구조의 바탕은 전통적인 한국인의 그것이다”(153)는 결론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구체적인 분석과 예증을 거친 선생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문학과 전통」이나 「작가와 작가정신」에 대한 선생의 평소 지론도 『관념과 생리』의 1부와 2부 작가론과 작품론에서 엄밀하게 분석되고 예증을 거친 후에 제기된 것이다.
“작가의 사상은 지식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앞서 체험으로 얻어진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작가의 체험은 중요한 의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394-395)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구상적 이미지와 체험적 상상력으로 성숙시킬 때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선생의 주장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지만, 그것은 작품분석의 실증을 바탕으로 제기된 체험적인 것이다. 관념소설의 대표적 유형으로 나도향과 이청준의 작품을 접근해 간 평론에 잘 나타나 있듯이, 선생의 글쓰기에 담긴 평범한 내용 속에 한국문학의 진수가 담겨 있다. 「벙어리 삼룡이」에 대한 분석과 「관념소설론」은 물론이고, 어떤 주의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정직하게 작품을 읽어나간 「이효석론」, 「윤홍길론」, 오영수의 작품을 논한 「원초적인 삶의 의지」는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의 평론계가 거둔 결실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을 몇 편만 골라 좀더 구체적인 해설을 첨가하여 보겠다.”(43) “필자는 농민소설을 계통적으로 검토하여 본 것도 아니고 많은 작품을 검토하여 본 것도 아니다. 다만 우연히 읽게 된 몇 편의 농민소설을 서로 비교한 결과 얻어진 견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219) 스스로를 가식없이 드러낸 정직함과 그 무엇에도 속박됨이 없는 자유로움이, 선생의 글쓰기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생리와 관념’ 이라는 두 단어로 한국 소설작가의 유형뿐만 아니라, 문학과 전통의 관계 그리고 소설 형상화의 방법과 그것의 성공여부를 함축한 김교선 선생의 『관념과 생리』는, 정직한 평론의 길이 무엇이고, 자유로운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정구 / 1954년 출생. 전북대학교와 동대학원.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주요 논문으로는 「만해 한용운 시」, 「김소월 시의 언어시학적 특성 연구」등이 있고, 현재 전북대학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