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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 | [문화시평]
축척된 역량 새로움 힘으로 발휘되길 시립극단의 〈리어왕〉공연을 계기로
글·김정수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4-02-12 14:29:17)
확실히 봄, 가을에 문화행사나 공연이 몰린다는 통념이 깨진 지 오랜 것 같다. 요즘 식으로 표현한다면 공연예술의 계절파괴라고나 할까? 연극의 경우 오히려 가을보다 겨울에 공연이 몰리는 경향을 보여준다. 또 한해가 간다는 스산함 속에서도 여기저기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가 그나마 연극 애호가들에게는 다소의 온기라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하는 날. 예술회관에서는 시립극단의 〈리어왕〉(안상철 연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미 지난가을에도 한차례 선보였던 작품으로 새롭게 해석을 덧붙여 재치장한 것이다. 〈리어왕〉은 설명이 필요 없는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우리들에게는 어릴 적 동화를 통해서부터 익숙해진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리어왕〉의 관극은 일단 줄거리와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책무를 벗고 있다는 점에서 편안함이 있다. 그러나 제작자나 연출가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이런 류의-내용이 이미 관객들에게 숙지된 작품은 몇 가지 곤혹스러운 고민을 가져다준다. 먼저 원전에 얼마나 충실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다. 초보적이거나 나이 어린 관객에게는 가능한한 가장 원전에 가까운 극해석과 당시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시킨 의상과 분장이 더욱 필요할 것이며, 이미 다각도로 이 작품과 유대를 갖은 관객에게는 기발한 극해석과 파격적인 형식실험의 재미가 보다 절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민은 이미 내용에 숙달된 관객에게 감정 표현의 수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지나치게 고무되고 격양된 배우의 감정은 자칫 신파적 웃음거리로 전락할 위험의 소지가 다분하고, 변화가 적고 안정감을 추구한 연기는 다 아는 이야기라는 이유로 지루함을 주기 십상이다. 모두다 내용의 인지도가 좁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들이다. 이번 시립극단의 〈리어왕〉은 이런 고민의 흔적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중도의 입장을 취했다. 원작의 우수성을 발판으로 최소한의 실험과 전제된 감정, 정확한 등장인물 성격의 표현 등으로 자칫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을 비껴 벗어난 것이다. 그럼으로써 〈리어왕〉공연의 최대 미덕을 안정감으로 꼽게 했다. 이 안정감은 배우들이 주는 연륜의 무게도 무게였지만 간명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제작된 무대가 주는 편안함도 큰 기여를 했다. 또 섬세하게 삽입된 음악과 효과음들도 한 몫을 해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매번 시립극단의 발전을 확인하는 통로가 된다. 이번 공연은 특히 십여년전 시립극단의 초창기 작품 〈르 시드〉를 연상하게 했다. 그 때 당시 상황으로서는 한껏 욕심을 낸 대작을 공연하면서 무엇보다 시립극단다운 정확하고 안정감 있는 연기에 매진하던 모습이 〈리어왕〉에 겹쳐 느껴졌다. 그때부터 활동하던 배우들이 어느새 30대 중심에 서 있고 항상 지역연극 발전의 저해 요소로 중견배우의 부족을 언급했던 시기로부터 벗어나 대부분 30대 연기자가 꾸리는 무대를 지켜 볼 수 있다는 작은 감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배우의 인기폭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다. 크게 보아 연기력으로 생각해도 되겠지만 연기력과는 다소 다른 의미에서 연기폭을 말한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의 수가 적기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이 작품 저 작품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관객들에게는 그들이 낯이 익다. 이 낯익은 배우들의 연기가 때로는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성격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어 하는 이야기다. 간혹 관극 도중 그들의 연기가 왠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타성, 혹은 관행에 의한 연기? 유사한 표현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연기의 진실성이 흐려지면 관객은 무안을 당한 느낌을 받는다. 시립극단의 발전을 위해서 전북연극의 발전을 위해서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최근까지 우리는 명실상부한 프로극단을 가져 보지 못했고 시립극단은 그런 면에서 최초의 프로극단이라는 점에서 관립극단이라는 의의 못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소속 배우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전문가 집단으로서 생명력 긴 연기와 활동을 보여주는 것만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보다 강한 프로의식으로 무장하는 일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공연 활동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점도 챙겨 봐야 할 문제다. 이점은 시당국도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으로 극단설립과 지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운영에 관해서도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모색을 함께 해야 한다는 책임 문제와 함께 한다. 극단 구성원들의 프로의식을 자극하고 그들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립극단의 발전과는 상대적으로 민간극단이 위축되는 현상도 시립극단이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과제에 속한다. 관립극단과 민간극단의 균형 발전과 바람직한 인력수급, 교류를 위한 전형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극 저변의 확대는 다양한 민간극단의 활동을 통해서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보면 좋을 듯한 연극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시립극단을 가진 전주시민은 행복하다. 그리고 그 행복감이 언제나, 보다 나은 모양으로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리어왕〉의 공연막이 내릴 때 드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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