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2 | [문화저널]
우리는 진실을 원할 뿐이다
최규하 씨의 증언
글·최동현 문화저널 운영위원·군산대교수·국문학과
(2004-02-12 14:22:08)
1979년에 나는 시골 중학교 선생으로 있었다. 10월 27일 아침 세수를 하다가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갑자기 닥친 사태 앞에서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잘 죽었다’ 싶으면서도 막상 모진 생각을 하니 어떻든 사람이 죽었다는데 잘 죽었다고만 하면 꼭 죄로 갈 것만 같았다. 푸른 하늘을 보았다. 이제 푸른 하늘이 열리려나, 신동엽이 4.19때 보았다던 그 푸른 하늘이 엉겁결에 열리려는가? 그 해 가을과 겨울을 나는 서울 쪽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주까지 나가 외국 시사주간지를 사서 보았다. 표지만 있을 뿐 내용은 다 뜯어내서 얇아진 시사주간지를 들고, 누군가가 굉장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만을 눈치챘을 뿐이다.
1980년 5월이 되었다.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군대가 진격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군대가 새벽녘에, 마치 적에게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듯이 전남 도청을 기습 탈환하고, 얼마 전 까지 영화를 상영하기 저에 보여주던 「대한뉴스」끝 부분에 꼭 나오던 〈월남 소식〉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들이 광주에서 벌어졌었다.
1979년 서울에서, 그리고 1980년 광주에서 백주내낮에 벌어진 일들의 편린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때 무슨 일이 알어났는가를 밝히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죽어야 했다. 그런데도 세상에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다. 총을 맞고 죽은 사람은 많은데, 총을 쏜 사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짐작은 가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시원하지 못하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죄송하다. 속아서 살아온 것이 억울하고, 그때 목숨을 바쳤거나, 그 이후에 광주의 일과 관련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영혼들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어서 죄송하다. 1979년과 1980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치고, 그 때 일어났던 일 때문에 억울하지 않고, 죄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때 그 일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 일들 덕분에 덕을 본 사람들은 안 그렇겠지만.
이렇게 집단적 상처로 남은 1979년과 1980년의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를 맞을 수 없다. 그 상처는 끝끝내 남아 여기저기를 들쑤실 것이고, 그 고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허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건들의 핵심에 서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최규하씨는 진실을 밝히는 데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그래서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최규하씨의 증언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8년 광주 청문회 시절부터 거듭된 증언 요구에 대해 최규하씨는 출석 자체를 거부하거나, 증언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좋은 일에 그런 태도를 보였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 참으로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그러기 때문에 더불어 큰 일을 의논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알고 싶어하는 진실을 은폐하는 일이며, 진실을 밝힘으로서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치유책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짓밟는 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 최규하씨도 어찌됐건 일국의 대통령까지 해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최규하씨는 지난 11일 강제 구인된 법정에서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실날같은 희망을 가져보던 사람들은, 최규하씨의 그 무거운 입에 경탄하면서, 고질로 남은 1980년의 상처가 도져 또 다시 길고 길 고통의 시절을 보내야 할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최규하씨는 법정에 강제 구인된 뒤, 자신은 ‘80 평생을 살아오면서 법집행에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행한 공적인 국정 행위에 대해, 훗날 어떤 이유나 경위로도 소명하거나 증언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최규하씨는 잘난 사람이다. 우리같이 시골에서 분필 장사나 하고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 그는 세계를 무대로 나라를 대표해서 활약했던 외교관이었고, 그리고 엉겁결에 되었을 망정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국가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말인가? 국가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엄청난 국력을 낭비해 온 것이 12.12와 5.17의 진상을 시원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어쩌면 그렇게도 앞뒤가 뒤바뀌어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예수님도 어쩌지 못할 것 같은 고집불통이라니! 이런 사람을 전직 대통령으로 가진 사람들은 불행하다. 이렇게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문제의 선후를 시골 선생만큼도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는 언제 우리가 훌륭한 전직 대통령을 가져보기나 했는가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라도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려는 사람이 있었던가? 잠시 동안이나마 최규하씨에게 그런 기대를 걸어본 우리들이 어리석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데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인가. 어차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그 진실을 밝혀야만 할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리는 대로, 그래서 오래 고통에 시달릴지라도 우리가 그 진실을 밝힐 수밖에는 없다. 그리고 역사는 반드시 밝히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