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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 | [문화저널]
옹기장이 이현배의 이야기 아! 옹구가 옹기네
문화저널(2004-02-12 14:18:42)
지금은 떠났는데 작년에 일 배우러 왔던 친구는 우리가 옹기를 ‘옹구’ 라고 하니까 왜 ‘옹구’ 라고 하느냐고 묻더니 얼마만큼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그 친구도 옹기를 ‘옹구’라고 한다. 그 친구가 왜 옹기를 ‘옹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옹기일을 더 붙들고 지내보면 알거라 했다. 그 친구도 옹기일로 생각이 많아질 때쯤에 독백처럼 ‘아 옹기가 옹구네’, ‘아 옹기가 옹구네’ 하게 되었다. 옹기는 옹구나 왜 옹기가 옹구냐? 옹기에는 호흡이 있기 때문이다. 옹기가 학교 칠판에서 분필이 내는 소리라면, 옹구는 할머니와 어머니 삶의 목구멍에서 우러나옴직한 목소리다. 그 걸걸해 보이는 물건이 아주 맑은 맛난 소리를 내는 것도 옹기가 옹구이기 때문이다. 호흡이 있다는 거, 숨을 쉰다는 거, 그건 곧 소통이다. 안과 밖, 위와 아래, 어제와 오늘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교통한다는 것이다. 이건 숨쉬는 그릇이라는 호흡기능 말고도 조형도, 색감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릇과 함께 하는 생활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도자기라는 게 별거 아니었다. 청자기를 두고 중국사람들이 '고려청자', '고려청자' 하면서 대단하다 하니까, 백자기, 분청사기를 두고 일본사람들이 '이조백자', '이조사기' 하면서 대단하다 하니까 우리도 '아 대단한 거구나' 했잖은가. 그렇다고 이걸 우리가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관념미와 생활미에 대한 구분 없이, 생활에서 철저하게 실천도덕을 완성시켜왔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도자기의 절반을 잃었다. 도자기의 절반인 자기의 전통이 단절되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남은 독이 즉 옹기마저 온전하지 못하다. 다만 아직까지도 우리의 생활에 가깝게 있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옹기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외국의 경매시장에서 우리의 묵은 도자기가 최고가로 팔렸다는 것은 우리의 도자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관념미와 생활미의 구분이 없는 세상' 그게 바로 우리 도자 한국의 자부심이어야 할 것이다. *옹기와 옹구는 같은 말이다. 옹기는 옹구의 사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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