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2 | [문화칼럼]
문학의 해, 무엇인들 달라졌는가
글·김승종 전주대 교수·국어국문학과
(2004-02-12 14:12:59)
올해는 ‘문학의 해’ 였다. 한국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고, 정부로부터 이를 지원하는 지원금이 있었다. 몇몇 문인들은 훈장을 수여받았고 이 와중에 원로 소설가 황순원 씨는 훈장 수여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부의 문학에 대한 인식변화, 문학인의 자성과 분발 및 왕성한 창작,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열기 회복 등 그 중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다.
단지 빛깔뿐인 행사 - 몇몇 문인이나 정부 당국자들이 생색내는 행사들만이 몇 차례 치러졌을 뿐이다.
진실로 ‘문학의 해’ 를계기로 우리 문학의 중흥을 꾀하려는 범문인적 차원에서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문학인들, 병고로 신음하는 문인들,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 있는 문인들을 도와주려는 시도도 없었다. 최근에 ‘황석영 석방을 위한 모임’ 이 결성되었지만 좀 더 일찍 모든 문인들이 열정을 지니고 이러한 행사를 벌여야 했다.
또한 ‘문학의 해’를 맞이하여 문인 단체들은 우리 문학사를 문인의 입장에서 재정리하는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오늘을 바르게 알 수 없고 다가오는 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문인 단체에서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문인들 중 카프(KAPF)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작가, 카프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해방 후 문학가건설본부 활동을 했던 작가, 순수문인이면서도 월북 혹은 납치되어 북한에서 활동한 작가, 친일 작가, 북한의 작가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바 없다.
카프의 작가들은 코민테른의 지침에 따라 한국의 변혁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설정하였다. 그들은 당시 한국의 주요 모순이 민족 모순임을 자각하고 계급해방에 앞서서 민족해방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주나 자본가들이 대부분 일제와 야합하고 있던 그 시기에 그들에 대한 저항은 곧 일제 식민지 체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비카프계열의 작가와 카프 계열의 작가들은 서로 어울리며 친우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한다. 따라서 카프 출신의 작가라 하더라도 우리 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이들을 기념하는 행사나, 그들의 생가를 보전하는 문제, 그들의 문학적 업적을 재평가하는 문제 등에 대해 문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해방이 되자 임화, 김남천 등이 주동이 되어 ‘조선문학가 건살본부’ 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해방기 남한 사회의 변혁 단계 역시 프롤레타리아변혁 단계가 아닌 부르주아 민주주의 변혁 단계임을 천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민족세력이 연대하여 봉건적 잔재 및 식민지 잔재를 타파하고 토지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완전한 자주 독립을 쟁취할 것을 제안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순수 문학을 추구했던 작가라 하더라도 이러한 제안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이태준,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등 ‘구인회’ 출신의 순수문인들이 이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실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한에 진주한 미군과 이승만은 영어가 통하고 반공적 색채가 강한 지주·자본가 출신들의 결집체인 한민당 세력과 결탁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그 당시 반드시 해결했어야 할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였다.오히려 문학가건설본부의 후신인 문학가동맹을 용공단체로 모는 바람에 카프 출신의 작가들은 물론 순수 작가들마저 대거 월북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우리 문인들은 이제 당시의 상황을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 당시 우리가 친일파들을 정당하게 응징하고 농민위주의 토지 개혁을 조기에 실시하였더라면 해방기에 대구, 제주도, 여수, 순천 등지에서 발생한 대량 살상은 물론, 600만 이상이 희생된 6.25한국전쟁도 미연에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문학가동맹에 맞서는 문인 조직이었던 ‘청년문학가 협회’ 는 문학가동맹처럼 적극적으로 당시의 시급한 역사적 과제를 문학인의 입장에서 수용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이는 곧 문인들이 그 시대의 문인들에게 지워진 역사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승만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을 기만한 행위들에 대하여 문인들이 올바르게 저항하지 못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해방기 이래 양심적인 문인들에 의해 이 땅의 모순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문학적 작업이 꾸준히 전개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양심적인 문인들은 민중들이 당하는 고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든가 왜곡된 역사 전개와 기형적 사회 구조가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켜가고 인간성을 고갈시켜 가는 양상들을 날카롭게 지적함으로써 부도덕한 지배층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저항했다. 또 어떤 작가들은 분단의 비극을 형상화하고 민중중심의 사관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가 하면 미국의 횡포를 고발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문인들의 문학적 노력은 진보적인 지식인 및 노동운동가 등의 노력과 더불어 길고 길었던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올 ‘문학의 해’ 는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문인들의 공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계기가 되었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난날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지금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인들이 지향해야 할 바를 분명히 설정하는 한 해여야 했다.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과제가 있으면 하루 빨리 그것을 푸는 노력이 있었어야 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문인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했으며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각종 영상 매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문학이 재도약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는 한 해여야 했다.
그러나 올 ‘문학의 해’ 는 겉치레 행사 위주로 지나가고 마는 듯하다. 물론 무슨 무슨 해니 무슨 무슨 날이니 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는 띨 수 있다. 그렇다면 모처럼 맞은 올 ‘문학의 해’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내는 노력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비록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문학의 해’ 는 지나가고 말았지만 심정적인 차원에서 문인들은 앞으로 맞는 모든 해가 '문학의 해‘ 라고 생각하고 이 시대에 문학이 감당하여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의 내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영상 매체와 당당하게 겨루면서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영향을 주고 건전한 여론을 조성하고 우리 민족이 나가야 할 바를 힘차게 제시하는 문학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김승종 (金昇宗) / 1956 전북 전주 출생. 서울고 및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염상섭소설연구」 와 「동학전쟁의 소설화 연구」등이 있으며, 「문학과 의식」등에 평론을 발표한 바 있다. 1993년부터 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소설 및 비평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