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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 | [문화저널]
1996년 12월호
문화저널(2004-02-12 13:17:21)
문화칼럼 문학의 해, 무엇인들 달라졌는가 글·김승종 전주대 교수·국어국문학과 올해는 ‘문학의 해’ 였다. 한국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고, 정부로부터 이를 지원하는 지원금이 있었다. 몇몇 문인들은 훈장을 수여받았고 이 와중에 원로 소설가 황순원 씨는 훈장 수여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부의 문학에 대한 인식변화, 문학인의 자성과 분발 및 왕성한 창작,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열기 회복 등 그 중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다. 단지 빛깔뿐인 행사 - 몇몇 문인이나 정부 당국자들이 생색내는 행사들만이 몇 차례 치러졌을 뿐이다. 진실로 ‘문학의 해’ 를계기로 우리 문학의 중흥을 꾀하려는 범문인적 차원에서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문학인들, 병고로 신음하는 문인들,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어 있는 문인들을 도와주려는 시도도 없었다. 최근에 ‘황석영 석방을 위한 모임’ 이 결성되었지만 좀 더 일찍 모든 문인들이 열정을 지니고 이러한 행사를 벌여야 했다. 또한 ‘문학의 해’를 맞이하여 문인 단체들은 우리 문학사를 문인의 입장에서 재정리하는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오늘을 바르게 알 수 없고 다가오는 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문인 단체에서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문인들 중 카프(KAPF)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작가, 카프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해방 후 문학가건설본부 활동을 했던 작가, 순수문인이면서도 월북 혹은 납치되어 북한에서 활동한 작가, 친일 작가, 북한의 작가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바 없다. 카프의 작가들은 코민테른의 지침에 따라 한국의 변혁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설정하였다. 그들은 당시 한국의 주요 모순이 민족 모순임을 자각하고 계급해방에 앞서서 민족해방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주나 자본가들이 대부분 일제와 야합하고 있던 그 시기에 그들에 대한 저항은 곧 일제 식민지 체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비카프계열의 작가와 카프 계열의 작가들은 서로 어울리며 친우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한다. 따라서 카프 출신의 작가라 하더라도 우리 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이들을 기념하는 행사나, 그들의 생가를 보전하는 문제, 그들의 문학적 업적을 재평가하는 문제 등에 대해 문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해방이 되자 임화, 김남천 등이 주동이 되어 ‘조선문학가 건살본부’ 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해방기 남한 사회의 변혁 단계 역시 프롤레타리아변혁 단계가 아닌 부르주아 민주주의 변혁 단계임을 천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민족세력이 연대하여 봉건적 잔재 및 식민지 잔재를 타파하고 토지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완전한 자주 독립을 쟁취할 것을 제안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순수 문학을 추구했던 작가라 하더라도 이러한 제안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이태준,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등 ‘구인회’ 출신의 순수문인들이 이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실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한에 진주한 미군과 이승만은 영어가 통하고 반공적 색채가 강한 지주·자본가 출신들의 결집체인 한민당 세력과 결탁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그 당시 반드시 해결했어야 할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였다.오히려 문학가건설본부의 후신인 문학가동맹을 용공단체로 모는 바람에 카프 출신의 작가들은 물론 순수 작가들마저 대거 월북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우리 문인들은 이제 당시의 상황을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 당시 우리가 친일파들을 정당하게 응징하고 농민위주의 토지 개혁을 조기에 실시하였더라면 해방기에 대구, 제주도, 여수, 순천 등지에서 발생한 대량 살상은 물론, 600만 이상이 희생된 6.25한국전쟁도 미연에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문학가동맹에 맞서는 문인 조직이었던 ‘청년문학가 협회’ 는 문학가동맹처럼 적극적으로 당시의 시급한 역사적 과제를 문학인의 입장에서 수용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이는 곧 문인들이 그 시대의 문인들에게 지워진 역사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승만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을 기만한 행위들에 대하여 문인들이 올바르게 저항하지 못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해방기 이래 양심적인 문인들에 의해 이 땅의 모순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문학적 작업이 꾸준히 전개된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양심적인 문인들은 민중들이 당하는 고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든가 왜곡된 역사 전개와 기형적 사회 구조가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켜가고 인간성을 고갈시켜 가는 양상들을 날카롭게 지적함으로써 부도덕한 지배층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저항했다. 또 어떤 작가들은 분단의 비극을 형상화하고 민중중심의 사관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가 하면 미국의 횡포를 고발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문인들의 문학적 노력은 진보적인 지식인 및 노동운동가 등의 노력과 더불어 길고 길었던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올 ‘문학의 해’ 는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문인들의 공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계기가 되었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난날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지금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인들이 지향해야 할 바를 분명히 설정하는 한 해여야 했다.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과제가 있으면 하루 빨리 그것을 푸는 노력이 있었어야 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문인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했으며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각종 영상 매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문학이 재도약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는 한 해여야 했다. 그러나 올 ‘문학의 해’ 는 겉치레 행사 위주로 지나가고 마는 듯하다. 물론 무슨 무슨 해니 무슨 무슨 날이니 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는 띨 수 있다. 그렇다면 모처럼 맞은 올 ‘문학의 해’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내는 노력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비록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문학의 해’ 는 지나가고 말았지만 심정적인 차원에서 문인들은 앞으로 맞는 모든 해가 '문학의 해‘ 라고 생각하고 이 시대에 문학이 감당하여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의 내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영상 매체와 당당하게 겨루면서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영향을 주고 건전한 여론을 조성하고 우리 민족이 나가야 할 바를 힘차게 제시하는 문학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김승종 (金昇宗) / 1956 전북 전주 출생. 서울고 및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염상섭소설연구」 와 「동학전쟁의 소설화 연구」등이 있으며, 「문학과 의식」등에 평론을 발표한 바 있다. 1993년부터 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소설 및 비평을 강의하고 있다. 문화가 전북예술회관 부지문제 타결 전북예술회관 내년 7월 착공한다 전북대학교가 마침내 전북대와 도 문화예술회관 건립 부지 교환을 수용한다고 발표함으로써 2년여 동안 표류해왔던 예술회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전북대 장명수 총장은 지난 11월 27일 전북도가 제안했던 전북대 보유의 문화예술회관 건립 예정부지 3만여평과 도가 보유한 김제시 백구면의 도유지 3만여 평과의 교환을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도는 전북대에 10억 원을 농과대학 특성화 대응 자금으로 추가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 문화예술회관건립의 최대 장애가 되었던 건 부지교환의 문제가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음으로서 전북도는 우선 지난 7월 중지되었던 시설용역 설계를 재개하여 내년 2월까지는 기본 및 실시설계를 마치고 7월부터 본 공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도에서는 우선 내년 예산에 2백억 원을 편성했으며, 매년 3백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연차적으로 투입해 99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도 문화예술회관은 국비 1백억 원, 도비 7백59억 원, 문예진흥기금 50억 원등 총 9백 9억원 의 사업비가 투자될 예정이다. 신축예술회관은 약 3만5천 평의 부지에 연건평 9천 평의 규모로 지하 3층, 지상 2층으로 세워지며 제1동 공연장은 2,200석의 대극장과 700석의 소극장으로 꾸며진다. 그리고 전체 무대면적 500평에 승강, 회전 수평팀과 예총, 향토 사료관, 레스토랑 등이 이곳에 자리잡게 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300석 규모의 국제회의실과 50석 규모의 소 회의실이 마련된다. 제4동은 국악관으로 전체 1천 평에 연습실, 전수실, 강당 등이 들어서게 된다. 여기에 야외 시설로 1,200 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과 야외공연장 등이 세워진다. 어쨌든 문화예술회관 문제가 최대의 난제를 넘어서as서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만드느냐의 과제가 될 것이다. 예향 전북의 상징으로 보다 항구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화공간을 원하는 도민들의 한결같은 바램을 전북도는 잊지 말아야 한다. 건축물 미술장식품 심의 道로 이관 문화의 거리를 위한 진정한 노력 절실 도심의 빌딩숲, 그 빌딩들 앞에 선 조각 한 점은 때로는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기도 할 것이고 어쩌면 도시 전체를 바꾸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건축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감동이 없거나 눈에 띄지도 않고 오히려 보행공간만 어색하게 차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건축물에 미수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는 제도는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적절한 미술작품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배치되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탈도 많았던 건축물 미술작품에 대한 심의가 지난 9월 5일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조례가 개정됨에 따라 해당 시·군 건축위원회에서도 도 단위 미술위원회로 이관되었다. 건축물 앞에 설치되는 미술 작품은 건축이 아닌 예술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전문적인 미술위원회에서 맡아야 한다는 인식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또한 건축물에 설치할 수 있는 분야는 조형예술 (회화·조각 ·공예·사진·서예 등) 과 환경조형(벽화·분수대·상징탑 등)도 되어있음에도 잘못된 인식으로 지금까지 회화작품은 설치가 불가능하고 대부분 조각품들만 미술장식품으로 대접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미술계에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부당하게 이루어졌던 심의 과정을 검토하여 새로운 조례를 개정, 보다 정당하고 공평한 운영이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그 동안 건축물 총 공사비의 1/100이었던 미술장식품 비용이 공동주택의 경우 총 공사비의 1/1000, 기타 건축물의 경우 5/1000으로 낮아 졌으며, 건축물 미술품 신청 접수만 각 시·군에서 받아, 도지사에게 심의 신청서를 전달, 도의 미술위원회가 일괄 심의하도록 했다. 20m 이상의 도로에 접한 대지에 6층 이상이거나 면적이 1만㎡ (미관지구일 경우 7천㎡) 이상인 건축물, 11층 미만이거나 연면적이 1만㎡의 건축물일 경우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권장해오던 것이 연면적이 1만㎡ 이상인 건축물 중 근린생활시설, 의료, 업무, 숙박, 판매, 관람(공연장, 집회장), 운수(철도역사), 방송통신 시설의 건축물인 경우에는 거리나 다른 제한조건 없이 무조건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개정되었다. 미술장식품에 대한 심의는 배점기준을 명시, 채점 평균치 산정, 승인과 재심을 결정하고 공평한 심의를 위해 작품을 제작한 위원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전라북도 미술위원회는7명으로 구성되었다. 임기는 2년. 도 문화관광국장, 주택과장은 당연직이고, 위촉직으로는 김종범(57·서예가), 문복철(55·우석대교수), 박진희(37·전주교대교수), 이상찬(48·한국화가, 전북대교수), 한봉림(49·도예가, 원광대교수)씨 등 5 명이 위원들이다. 도 미술위원회는 지난 11월 14일 첫 심의를 실시했다. 제5회 영호남 문학인 대회 “이제 한국문학은 지역문학이다”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면서 ‘이제 한국문학은 곧 지역문학이다’ 라는 영호남 문학인들의 선언과 다짐의 자리가 열렸다. 11월 30일과 12월 1일 이틀에 걸쳐 목포 남경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영호남 문학인 대회가 ‘이제 한국문학은 지역문학이다’ 라는 주제로 약 300여명의 문학인들이 모여 진행되었다. 영호남 문학인 대회는 비공식적으로 모임을 가져오다 92년 영호남 문학인들이 모여 지역 감정을 해소하고 지역문화를 고르게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결성, 일년에 한차례씩 대회를 열어왔다. 이들은 그 해 문단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주제로 삼아 서로 토론하고 문제점을 제시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함과 더불어 영호남 문학인들간에 친목도모에도 노력해 왔다. 전남 광주에서 창립대회를 가진 뒤 부산, 남원, 고령을 거쳐 이번에는 전남 목포에서 치러졌다. 이번 대회를 현지에서 주관한 고재종 시인은 “목포는 술과 문학이 있는 도시이며 시대적 갈등과 시련을 겪어 오면서 많은 문학작품과 인재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열악한 도시로 인식되어져 왔다” 고 말하고, 목포의 문학인들은 이번 문학인 대회를 계기로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심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 전남 민족 문학인협의회가 주최하고 영호남 문학인 대회 추진 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문학인 대회에는 송기숙(소설가, 전남대교수), 황현산(문학평론가, 고려대교수) 씨의 주제 강연이 예정되었으나 전국에 내린 폭설로 황현산 교수의 강연이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송기숙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문학 소설로서 유명했던 『토지』, 『태백산맥』, 『황토』 등의 작품들은 기실 모두가 지역을 무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지역문학은 한국문학의 실질적인 토대가 된다고 주장하고, 지금까지 중앙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문학활동의 시대를 끝내고 이제는 지역작가들이 나서서 보다 적극적인 창작활동으로 지역문화를 살리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열린 여흥프로그램에서는 김순자(광주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씨의 국악 공연. “직녀에게” 의 가수 김원중 씨의 노래 공연을 비롯한 시낭송, 목포 음식맛 탐험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며, 둘째날에는 MBC 기념 시화전, 유달산, 박화성 문학관, 국립해양박물관, 농업박물관 등의 문화기행이 진행되어 목포의 문화와 역사를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전북지역에서는 전북민족문학인 협의회와 전북 청년문학회의 회원 30여 명이 참가했다. 손정자 ‘우석발레인스티튜트’ 창단 공연 무용의 생활화를 내건 전문발레단 전북의 첫 발레 연구단체가 만들어져 발돋움을 시작했다. 11월 15일 전북학생회관에서는 손정자 교수의 발표회와 함께 우석발레인스티튜트의 창단 공연이 펼쳐졌다. 우석발레인스티튜트는 우석대학교 무용과에서 발레를 전공한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발레 연구 공연단체다. 이날 공연은 무용의 생활화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최근 들어 전북 무용계에 새로운 자극과 활기를 몰고 있는 발레분야의 활성화와 대중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우석발레인스티튜트는 손 교수를 중심으로 열두 명의 발레전공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숙희, 김성태, 조용범, 송성호, 장경인, 최숙향, 박미애, 오은미, 김미경, 안혜진, 고선화, 김미현 씨 등 졸업생 1기부터 4기까지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대학 시절 각종 콩클에서 화려한 수상경력과 함께 활발한 발표활동의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1기 졸업생인 김성태·조용범 씨는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송성호 씨는 광주시립무용단에서 각각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기대주들이며 그 외에도 대부분이 대학원 과정에 있거나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1부 발레 공연에서는 〈바로크협주곡〉·〈빠 드 카트르〉·‘칼멘 중에서’ 등 손정자 교수 안무 작품과 함께 조용범 씨의 〈연습실에서〉, 김성태씨의〈그랑 빠 크래식〉, 송성호씨의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등 세 명의 작품도 선보였다. 우석대학교 손정자 발레단 단원들과 함께 선보인 이날 공연의 작품들은 세련된 구성과 실험적인 창작발레의 색채를 보여주어 일반 관객들의 감상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2부의 생활무용 프로그램은 대중문화로서의 무용을 새롭게 인식시킨다는 취지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재즈댄스, 3인조 에어로빅, 리듬체조, 힙합 에어로빅 등 운동과 무용의 요소가 배합된 작품들이 빠른 템포의 음악과 효과적인 조명이 어우러졌다.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은 2부의 생활무용 프로그램은 무용을 생활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했다. 대한민국 환경조각대전 자연과 어우러진 조각의 아름다움 가족들이 오붓하게 겨울 나들이를 나서기에 좋은 곳이 있다. 대한민국 환경조각대전이 익산시 금마면 저수지 관광지에서 열리고 있다. 자연 풍경 속에 놓은 조각품들은 그 동안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강원, 대전, 부산, 인천, 경북, 경남, 전북, 전남 등 전국 각지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이곳은 저수지를 옆에 끼고 있어 작품감상의 분위기가 더욱 독특하다. 한국그린크로스 전북지부가 주최하고 ‘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조직 위원회와 전라북도 전북 조각회가 주관한 이번 전시는 지난 11월 12일 개막돼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 지방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조각전으로 동계 U 대회 기념과 지구의 환경을 보호·보존하자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어 지금까지 있었던 소규모 실내 조각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며, 야외 전시장을 이용할 수 있어 작품들은 주로 대형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돌·철조·브론즈 등의 대형작품들이 약 160여점 전시되었는데 지난 8월 초 동계 U 대회 기념 ’한국의 흙, 불전‘ 의 일부 작품과 함께 환경조각공원에 영구 전시할 계획이다. 이번 조각전은 전국의 조각작품을 비교·감상하고 한국 조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3만여 평의 환경조각공원은 아직 정돈되지 않아 어수선하고, 조각작품들만 쓸쓸하게 서 있어 주변 조경사업이 서둘러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정 갤러리 개관 3주년 기념전 중견한국화의 거장 3인, 현대화 모색 오래 전부터 한국화의 현대화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전통적 화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한국화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 한국화가들이 전시를 가졌다. 정 갤러리(관장 정병표) 개관 3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이번 전시에는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김병종·이철량·장혜용씨가 초대되었다. 현대화된 한국화, 그렇지만 각자 독창적이면서 개성있는 한국화 작품이 내걸어져 눈길을 모았던 이번 전시의 주제는 〈생명의 노래, 소리, 얼〉이다. 한국화의 현위치를 재어보고 한국화의 현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주로 실경산수에 근거를 둔 문인화가 오랜 세월동안 한국화의 자리를 메꾸어 오다가 근간 한국화의 현대화 운동이 시작되었고, 여전히 민족성과 전통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화법으로부터 탈피해 새롭고 독특한 한국화를 창출하는 작업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오랜만에 전주를 찾은 김병종(서울대 교수) 씨의 작품은 거칠면서도 과감한 붓놀림이 작품 전체가 시원하게 만든다. 이번 작품들은〈생명의 노래〉연작물인데 우연하게도 이철량 씨와 주제가 같다. 같은 주제이지만 그들의 작품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김병종 교수는 닥지를 사용해 화면의 질감을 살리고 탁한 황토 계열의 채색으로 전통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고양이, 학, 닭 등 한국적 동물이 화면에 등장하고 있어 약간은 풍자적이면서 고풍스런 한국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동양 화단에서 고유의 정서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이철량(전북대 교수) 씨는 작품에서 진한 먹을 피하고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을 살려 먹이 갖는 고유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화면 속에 미세한 필선으로 새겨 넣은 새, 꽃 등의 형상들에서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 느껴지고 마치 민화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장혜용(전주대교수) 씨는 80년대에 주로 먹을 사용하여 엷은 묵염을 통한 점선의 움직임 등을 그려오다가 90년대에 들어 강렬한 색면처리를 통해 벽화를 연상시키는 채색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도 굵은 먹선, 꺾임선, 무질서한 서과 가파르게 휘는 선들의 즉흥적인 붓놀림과 더불어 적·황·청색의 강렬한 채색으로 그려진 작품들이다. 〈얼〉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전통오색을 사용하여 한국의 멋스런 한복이나 단청을 떠오르게 한다. 특집 문화의 시대와 인구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를 통계로 보면 얼마나 될까. 우선 지방정부나 문화예술단체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통계는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두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통계를 확인해보고자 하는 시도도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문화의 대중성과 문화적 저변이라는 의미는 일정하게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문화영역에서도 이제 지피지기(知彼知己)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집은 전북지역 문화인구의 저변을 점검해 보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 글은 문화저널의 취재기사로 전북의 문화예술인구는 과연 몇 명인가. 그리고 문화예술을 향유한다고 볼 수 있는 대중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를 나름대로 실증자료를 가지고 점검해 보았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계속되는 문제에 부닥쳐야만 했다. 기준이 되는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하고 최소한의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으로만 전해지는 관객수, 사람마다 고무줄처럼 변화무쌍한 추계, 유명무실한 협회, 기록에 충실하지 못한 단체, 정부기관의 무성의와 불성실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따라서 제한된 시간과 인력으로 추진된 이번 작업은 시론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널리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이 지역문화의 저변을 점검하는 기초적인 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후속작업과 방법론상의활발한 비평 및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 글은 오랫동안 연극계에서 활발하게 기획을 해왔던 한 공연기획자의 글이다. 그는 여기서 전북의 문화적 저변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실감나게 말해준다. 생활문화가 탄탄해야 지역문화가 산다 글·원도연 문화저널 편집장 예향의 자존심 예향 전북의 자존심이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영상매체의 무차별적인 공략은 결코 ‘예향’을 비껴가지 않는다. 한 지역의 문화적 가능성은 총체적으로 주어진다. 생활문화의 현장이 탄탄하고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며 그 기반 위에서 순수공연예술의 장르가 폭넓게 개방되어야 한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는 섣부른 기대와 성급한 예측으로만 주어지지는 않는다. 생활문화의 장을 넓히고 문화인구로 흡수해내는 일은 지역문화의 저변을 넓히는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는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그 문화인구들은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지역문화의 번성으로부터 해답을 찾는다면 문화적 저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할 필요가 있다. 그 문화적 저변을 구성하는 요소는 인구와 공간을 비롯해 많은 변수들이 있다. 예컨대 지역내의 문화유적이나 유물 혹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인명록 등을 체계적인 정리하는 작업들도 문화적 저변을 다지는 작업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들은 단순히 수량적인 호기심을 넘어 지역문화의 기초를 세우고 객관적인 전략을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는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문화인구를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화의 영역이 그만큼 광범위하고 따라서 어떤 활동을 문화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료를 통해서 문화인구의 범주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는 있다. 여기서 문화인구의 범주를 확인하기 위해 첫 번째로는 전라북도 지역주민에 대한 조사결과를 사용하여 문화인구의 수치 및 특성을 보고, 다음으로 주요 문화공간의 공식·비공식 집계자료를 분석했으며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활동해 온 전문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활용했다. 사회학 연구자의 모임인 지역사회 연구모임에서 올해 1월 전라북도 지역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통해 추산해본 문화인구는 약 5만 6천명에서 27만명 가량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먼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서 얻어진 응답자의 비율과 문화예술활동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다고 응답한 잠재적 문화인구의 수치를 전체 인구수에 대비해서 얻은 결과였다. 장르별로는 연극·영화인구가 역시 가장 많았고 음악인구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역사기행이나 고적답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미술인구의 경우 수치는 낮게 나타났지만 미술품과의 접촉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가장 정예화된 인구일 수 있다. 연극·영화인구가 높게 나타난 것은 영상매체에 대한 선호도가 역시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결과는 지역별로 보면 역시 농촌보다는 도시 거주자들의 문화적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차이는 예상보다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특히 연극·영화와 역사기행의 경우 잠재적 문화인구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적극적인 미술인구의 경우 농촌이 오히려 도시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전문적인 미술인구의 경우 개별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농촌에 들어가 활동하는 숫자가 다른 장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성별로는 문학과 영사기행에서는 남성이, 음악, 미술, 연극·영화에서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나타났으며 잠재적 문화인구는 문학과 음악은 여성이, 연극·영화와 역사기행에서는 남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가 연극·영화와 음악을 주로 즐기고, 40대와 50대가 음악과 역사기행, 60대는 주로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연극·영화인구의 경우20대가 전체의 42%, 30대가 29%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젊은 애호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는 문학과 미술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역사기행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60대의 경우 음악인구가 비교적 높게 나타난 것은 판소리나 국악애호가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반영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문화활동에 가장 관심이 없는 계층이기도 했다. 역시 전반적으로는 30대가 문화활동에 관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만 미술인구의 경우 수는 작지만 연령에 관계없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소비수준이 높을수록 문화활동에 대한 관심도 높게 나타났다. 거의 전체 장르에서 소비수준이 높을수록 문화적 관심도도 높게 나타났지만, 문학의 경우는 소비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관심도가 높았다는 점도 이채로운 결과였다. 열린음악회와 김홍도전 다음으로는 조사결과가 아닌 실제 결과를 놓고 전북의 문화인구를 살펴보았다. 먼저 최근 3년동안 전북에서 벌어진 각종 문화예술 이벤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몰렸던 프로그램을 분석해 보았다. 역시 가장 성공적인 이벤트로 꼽힌 것은 작년 6월은 열린음악회로 약 3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또 옥내 대중공연으로는 94년 12월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패티김’ 공연으로 역시 1만 4천여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전시로 기록된 것은 국립전주박물관이 주관하여 올해 3월 12일부터 한달여동안 열린 김홍도전이었다. 박물관측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김홍도전에는 한달동안 무려 5만 9천여명이 몰린 것으로 집계되어, 전북의 인구 가운데 100명당 3명꼴로 전시장을 찾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성공적인 이벤트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전북의 문화인구는 대략 5만여명 안팎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또한 국립전주박물관의 일년 관람객이 올해를 기점으로 20만명을 넘어섰다는 것도 의미있는 기록이다. 이러한 수치를 문화인구의 최소한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전북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잡아 왔던 전북예술회관의 지난 3년간의 관객현황을 조사했다. 1년동안 예술회관에 드나드는 관람객들의 연인원에 대한 공식통계는 없다. 다만 예술회관 관계자들이 전시장은 하루 5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고, 유료 공연의 경우 문예진흥기금 정산을 위해 정리해두는 서류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무료공연인 경우는 방법이 없다. 공간과 문화인구는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공간은 물리적인 시스템이므로 평가되는 것이므로 문화인구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전북지역 공연인구의 현황은 파악될 수 있다. 먼저 예술회고나 유료공연의 관객현황을 보면 평균 300-400명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94년이 371명, 95년이 319명, 96년은 298명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문화 매니아라고 볼 수 있는 유료관객의 수는 대체로 60-7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같은 결과는 전북지역의 문화인구가 아직은 공연물에 대한 접촉이 활발하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전체 인구 가운데 잠재적인 문화 인구들이 적극적인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빈도가 아직은 매우 낮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느리지만 진지한 관객들 앞서의 조사결과와 전문가들이 꼽는 전라북도의 문화인구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문화의 반응이 느리다는 점, 그리고 20대의 젋은 층이 문화인구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30-40대가 주요 문화인구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또한 장르별로는 국악의 경우 애호가들의 노령화로 인한 자연감소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여주고 있다. 도립국악원의 수강생은 처음 시작했던 81년에 비해 무려 4배이상 증가했으며 어린이나 주부수강생들도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음악이나 무용인구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은 전공자들이 해마다 배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용자들의 폭은 제한되어있고, 연극인구는 전문적인 인력의 배출기관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이것은 공연에서 조직동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한다) 다른 장르와 비슷한 정도의 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한 양상이다. 결국은 전통적인 농경사회로서의 문화적 토대를 지니고 있었던 전북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산업화된 사회구조속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판소리의 본고장으로서 어느 곳에서나 소리 한가닥이 흘러나오던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 점차 소멸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문화적 장르들에는 익숙하지 않은 전환기적인 지역정서가 문화현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험한 생각은 전북이 산업화를 이루고 인구증가를 이룸으로써 지역문화의 저변이 넓혀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올해 초 진행된 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전북의 대중들은 문화적 발전을 소망하면서도 동시에 산업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문화적인 발전에 대한 강한 열망과 생활문화의 정착을 원하면서도 문화적 발전과 경제적 성장을 등치시키지 못하고있다는 것이다. 산업발전과 인구는 문화발전의 충분조건이기는 하지만 결코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진도시들의 사례는 보여준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화의 저변을 넓히고자 하는 지방정부와 문화예술인들의 의식적인 노력이다.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이런저런 노력이 잠재적인 문화인구를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특히 젊은 층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잘못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방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깊은 자성도 필요하다. 선거때마다 앞다투어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자치단체장들은 문화적 저변을 넓히기 위한 보다 치밀한 기획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문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생활문화를 살려내는 문화기반시설의 확충이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전북지역의 문화적 토양이 반만년의 농경적 전통에서 생성된 생활문화에 기반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문화적인 전략도 지역적 특성에 맞게 끈질기게 모색되어야 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우리시대 일그러진 영웅들을 위하여 글·이근영 진포문화예술원 기획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학창시절 학급회의 시간의 의사결정 과정으로 배운듯한 육하원칙이 늘 머릿속에 떠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공연 기획자’ 라는 낮설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내 명함에 찍혔던 시절. 늘 ‘신장개업’ 간판을 눈여겨보며 만나는 사람의 명함을 항상 모으곤 하던 시절이었다. 혹시라도 우연히 회사의 홍보실이나 총무과, 관리과에 소속된 사람들을 만나면 열심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곤 하던 바로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상품처럼 팔거나, 상품(?)을 작품처럼 팔아야 하는 일인 공연기획이 나의 사회적 책임인 양 들떠 최후의 판단도 팔고 결과까지 팔아버리고, 끝내는 빨리 잊어 치워버리는 것을 최선으로 알던 그 일을 사실은 지금도 손에 붙여두고 산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책임 때문이건 별다른 선택이 없어서 하는 일이건 전북지역의 공연문화의 저변을 검토해보는 일은 아직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다시 공연기획의 육하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어디서?’ 당연히 지역 내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사실 ‘어디서’는 전문적인 시설이라고는 보잘 것 없기만 한 전북의 현실에선 그다지 고민스러운 일도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좁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기획자의 번거로움을 많이 줄여준다. ‘언제’라는 것도 무조건 공연장 사정에 따라야만 한다. 비어있는 날짜, 미리 대관신청을 해두었다면 몰라도 보통 공연 3-4개월 전에 공연 가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무조건 비어있는 날짜만 잘 골라내면 된다. 전주에서 심심치 않게 평일에도 공연이 올려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질문이다.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오늘의 공연장엔 ‘관람객’ 이 아닌 ‘구경꾼’만 가득한 것이 현실이다. 전시장에 오는 손님들은 말한다. “아 작품이 너무 난해하네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정작 화가는 전시장에 오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도 몰라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를 가르치기 위해 전시회를 여는 작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들도 말한다. “이 연극은 너무 딱딱하네요. 의상이 나 분장도 좀 조잡한 거 같고. 뭐랄까 전위적이라고 할까?” 명성과 물량으로 공습해오는 ‘세계적인’ 혹은 ‘전통적인’ 유명 공연단의 공연장은 언제나 가득 메워주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미덕이 되어 버렸고 “역시!” 라며 아낌없는 찬사까지 보낸다. 물론 그 중에는 뛰어난 작품들도 있고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현상으로 뛰어나게 보여지는 작품들도 있다. 대형화되고 기관이나 언론의 영향력 아래 올려지면서 홍보전에서 일단 한수 접고 들어가는 공연물은 개인의 감성을 뚫고 작품으로 인정되어 박수를 받고 지역 예술인의 표현은 그 사람의 ‘편력’ 또는 ‘특이한 끼’ 의 산물로 보여져 ‘동정’을 받는다. 물론 이런 상황들이 전적으로 관객들의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점을 찾아내고, 반드시 답을 제시하라고 학습 받아온 시민들에게 공연단이 친절하지 못한 점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예술인도 한 사회의 구성원이고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이다. 경제적 논리 앞에 무능력한 시민, 은행에선 무자격자 개인 하나 하나가 모인 단체는 어떠한가? ‘자생력’ 이라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논리앞에서 예술단체는 한결같이 당당하지 못하다. 지역문화의 견인차, 원동력, 돌파구, 가능성 등등의 온갖 수식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단체라 하더라도 정당한 거래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즉 제작에 들인 공력만큼 합당한 가격에 손님을 모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공연은 올려지는가. 우선 재원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몇 가지의 실날같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비록 일부분이지만 문예진흥기금이나 시, 도 예산 등을 지원 받는 방법이다. (관립예술단이다 시, 도 국립예술단의 봉급 및 제작, 운영비는 해당기관에서 전액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만 받는 곳도 더러 있다. 민간단체는 공연비 일부를 지원 받기도 하지만 기획자들끼리는 때로 ‘나눠먹는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인쇄물 제작비 마련을 위해 기업의 후원 또는 협찬금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첫 번째 경우보다 더 비감해지기 마련이다. “어려운 줄은 아는데, 도와줘야 하는데, 돕고는 싶지만...예산이 넉넉하지 않아서 내년에도 하죠? 내년에 봅시다.” 담당자들의 이런 설명을 들을 때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걷으러 아니 구걸하러 다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래도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이런 방법 말고는 사실 이렇다할 길도 없다. 이도 저도 안된다면 마지막으로 입장수입이 공연의 성패를 가름하는 유일한 원천이 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 셈이다. “1인당 예매, 8천원(일반)5천원(학생)/현매 1만원” 관객 입장에서는 수천억을 들여 제작한 영화나 시청료만 내면 볼 수 있는 드라마에 비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싼 가격이라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입장료도 사실 일관성이 없다. 후원금 또는 회비를 내는 회원도 거의 없는데 ‘극단 동인’이라거나 ‘후원자’들은 할인된 가격에 모셔야하고 단체 특히 중·고생은 거의 절반가격, 삼천 원 정도의 할인권을 따로 제작해야 한다. 거기다 초대권까지 챙긴다. 최후의 보루는 이제 앙상해진다. 대부분 공연단체에 소속된 배우들의 지인이거나 얼굴도장 찍기 위해 오는 관객이 점차 많아지는 이런 공연장 현실을 어쩌면 단체 스스로 묘안을 찾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한회 한회 공연만 거듭해 오면서 생긴 악습일 수 있고 이미 구조적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시판도 없는데 프스터는 이삼천장씩 만들어서 불법 부착을 감행해야 하고 팜플렛은 24페이지는 제작해야 웬만큼 지역에서 흉내내는 수준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법 하다. “배우도 없고 관객도 없고 돈도 없는데 그런데도 공연은 계속된다. 너무 엄살이 지나친것 아니냐?” 이제공연기획의 마지막 질문인 “왜” 아른 물음에 답해야 한다. 무용, 국악, 연극, 음악 등 공연분야의 예술인들은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는다. 오랜 도안의 실기 레슨과 연습은 물론이고 공연에 적합한 몸을 만들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차마 지켜보기 안스러울 정도의 고난에 가깝다. 전북에서만도 매년 수백여명이 되는 공연분야 에술학과의 졸업생들이 학사학위를 박고 사회로 진입해 들어온다. 그들은 예술가라는 이름을 걸고 여기 저기를 기웃거려 보지만,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상인, 직장인, 주부로 평범한 생활인이 된다. 결국 창작을 통해자기실현을 이루고자 뛰어든 예술세계에서의 ‘전문가’ 는 이제 ‘문화재’ 라고 불릴 정도로 귀하고 드문 존재가 된다. ‘예술’ 이 지구를 구원하기에는 아직 힘에 벅찬 것이다. 그래도 마치 복사기로 찍어내듯 전 세계의 공중에서 무차별로 살포되는 영상매체와는 달리 지역의 정서와 고민을 가장 장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역시 ‘공연’ 밖에 없다는 인식에 전업 예술가들은 뜻을 같이한다. 결국 그들은 또 다른 표현양식을 찾아 늘 고민하고 있고 지금도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조직에 만들어나는 일에는 언제나 일정한 힘이 존재한다. 그래서 집단은 때로 스스로 최면당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 개인적인 창작물에도 늘 구경꾼들이 모이는 일도 있다. 전문예술가라는 이름앞에도 석박사 학위 하나 정도는 붙고 사회적으로 탄탄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야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도 최근의 경향이다.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 들은 너무 고단한 것이다. 이근영 / 전북대 독문과 졸업. 대학 졸업후 지역 연극계에서 활동하면서 전주창작극회와 시립극단에서 공연기획을 맡아오다 지금은 군산「진포문화예술원」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시절에는 강변가요제에 전북대표로 출전 수상할 정도로 노래실력이 빼어나고 지금은 군산 KBS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특집 문화의 시대와 인구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를 통계로 보면 얼마나 될까. 우선 지방정부나 문화예술단체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통계는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두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통계를 확인해보고자 하는 시도도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문화의 대중성과 문화적 저변이라는 의미는 일정하게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문화영역에서도 이제 지피지기(知彼知己)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특집은 전북지역 문화인구의 저변을 점검해 보자는 것이었다. 첫 번째 글은 문화저널의 취재기사로 전북의 문화예술인구는 과연 몇 명인가. 그리고 문화예술을 향유한다고 볼 수 있는 대중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를 나름대로 실증자료를 가지고 점검해 보았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계속되는 문제에 부닥쳐야만 했다. 기준이 되는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하고 최소한의 자료에 기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으로만 전해지는 관객수, 사람마다 고무줄처럼 변화무쌍한 추계, 유명무실한 협회, 기록에 충실하지 못한 단체, 정부기관의 무성의와 불성실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따라서 제한된 시간과 인력으로 추진된 이번 작업은 시론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널리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이 지역문화의 저변을 점검하는 기초적인 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후속작업과 방법론상의활발한 비평 및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 글은 오랫동안 연극계에서 활발하게 기획을 해왔던 한 공연기획자의 글이다. 그는 여기서 전북의 문화적 저변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실감나게 말해준다. 생활문화가 탄탄해야 지역문화가 산다 글·원도연 문화저널 편집장 예향의 자존심 예향 전북의 자존심이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영상매체의 무차별적인 공략은 결코 ‘예향’을 비껴가지 않는다. 한 지역의 문화적 가능성은 총체적으로 주어진다. 생활문화의 현장이 탄탄하고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며 그 기반 위에서 순수공연예술의 장르가 폭넓게 개방되어야 한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는 섣부른 기대와 성급한 예측으로만 주어지지는 않는다. 생활문화의 장을 넓히고 문화인구로 흡수해내는 일은 지역문화의 저변을 넓히는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는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그 문화인구들은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지역문화의 번성으로부터 해답을 찾는다면 문화적 저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할 필요가 있다. 그 문화적 저변을 구성하는 요소는 인구와 공간을 비롯해 많은 변수들이 있다. 예컨대 지역내의 문화유적이나 유물 혹인 문화예술인에 대한 인명록 등을 체계적인 정리하는 작업들도 문화적 저변을 다지는 작업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들은 단순히 수량적인 호기심을 넘어 지역문화의 기초를 세우고 객관적인 전략을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는 전라북도의 문화인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사실 문화인구를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화의 영역이 그만큼 광범위하고 따라서 어떤 활동을 문화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료를 통해서 문화인구의 범주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는 있다. 여기서 문화인구의 범주를 확인하기 위해 첫 번째로는 전라북도 지역주민에 대한 조사결과를 사용하여 문화인구의 수치 및 특성을 보고, 다음으로 주요 문화공간의 공식·비공식 집계자료를 분석했으며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활동해 온 전문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활용했다. 사회학 연구자의 모임인 지역사회 연구모임에서 올해 1월 전라북도 지역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통해 추산해본 문화인구는 약 5만 6천명에서 27만명 가량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먼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서 얻어진 응답자의 비율과 문화예술활동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다고 응답한 잠재적 문화인구의 수치를 전체 인구수에 대비해서 얻은 결과였다. 장르별로는 연극·영화인구가 역시 가장 많았고 음악인구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역사기행이나 고적답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미술인구의 경우 수치는 낮게 나타났지만 미술품과의 접촉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가장 정예화된 인구일 수 있다. 연극·영화인구가 높게 나타난 것은 영상매체에 대한 선호도가 역시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결과는 지역별로 보면 역시 농촌보다는 도시 거주자들의 문화적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차이는 예상보다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특히 연극·영화와 역사기행의 경우 잠재적 문화인구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적극적인 미술인구의 경우 농촌이 오히려 도시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전문적인 미술인구의 경우 개별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농촌에 들어가 활동하는 숫자가 다른 장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성별로는 문학과 영사기행에서는 남성이, 음악, 미술, 연극·영화에서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나타났으며 잠재적 문화인구는 문학과 음악은 여성이, 연극·영화와 역사기행에서는 남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가 연극·영화와 음악을 주로 즐기고, 40대와 50대가 음악과 역사기행, 60대는 주로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연극·영화인구의 경우20대가 전체의 42%, 30대가 29%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젊은 애호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는 문학과 미술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역사기행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60대의 경우 음악인구가 비교적 높게 나타난 것은 판소리나 국악애호가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반영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문화활동에 가장 관심이 없는 계층이기도 했다. 역시 전반적으로는 30대가 문화활동에 관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만 미술인구의 경우 수는 작지만 연령에 관계없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소비수준이 높을수록 문화활동에 대한 관심도 높게 나타났다. 거의 전체 장르에서 소비수준이 높을수록 문화적 관심도도 높게 나타났지만, 문학의 경우는 소비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관심도가 높았다는 점도 이채로운 결과였다. 열린음악회와 김홍도전 다음으로는 조사결과가 아닌 실제 결과를 놓고 전북의 문화인구를 살펴보았다. 먼저 최근 3년동안 전북에서 벌어진 각종 문화예술 이벤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몰렸던 프로그램을 분석해 보았다. 역시 가장 성공적인 이벤트로 꼽힌 것은 작년 6월은 열린음악회로 약 3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또 옥내 대중공연으로는 94년 12월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패티김’ 공연으로 역시 1만 4천여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전시로 기록된 것은 국립전주박물관이 주관하여 올해 3월 12일부터 한달여동안 열린 김홍도전이었다. 박물관측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김홍도전에는 한달동안 무려 5만 9천여명이 몰린 것으로 집계되어, 전북의 인구 가운데 100명당 3명꼴로 전시장을 찾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성공적인 이벤트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전북의 문화인구는 대략 5만여명 안팎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또한 국립전주박물관의 일년 관람객이 올해를 기점으로 20만명을 넘어섰다는 것도 의미있는 기록이다. 이러한 수치를 문화인구의 최소한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전북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잡아 왔던 전북예술회관의 지난 3년간의 관객현황을 조사했다. 1년동안 예술회관에 드나드는 관람객들의 연인원에 대한 공식통계는 없다. 다만 예술회관 관계자들이 전시장은 하루 5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고, 유료 공연의 경우 문예진흥기금 정산을 위해 정리해두는 서류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무료공연인 경우는 방법이 없다. 공간과 문화인구는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공간은 물리적인 시스템이므로 평가되는 것이므로 문화인구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전북지역 공연인구의 현황은 파악될 수 있다. 먼저 예술회고나 유료공연의 관객현황을 보면 평균 300-400명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94년이 371명, 95년이 319명, 96년은 298명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문화 매니아라고 볼 수 있는 유료관객의 수는 대체로 60-7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같은 결과는 전북지역의 문화인구가 아직은 공연물에 대한 접촉이 활발하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전체 인구 가운데 잠재적인 문화 인구들이 적극적인 문화활동에 참여하는 빈도가 아직은 매우 낮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느리지만 진지한 관객들 앞서의 조사결과와 전문가들이 꼽는 전라북도의 문화인구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문화의 반응이 느리다는 점, 그리고 20대의 젋은 층이 문화인구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30-40대가 주요 문화인구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또한 장르별로는 국악의 경우 애호가들의 노령화로 인한 자연감소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여주고 있다. 도립국악원의 수강생은 처음 시작했던 81년에 비해 무려 4배이상 증가했으며 어린이나 주부수강생들도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음악이나 무용인구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은 전공자들이 해마다 배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용자들의 폭은 제한되어있고, 연극인구는 전문적인 인력의 배출기관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이것은 공연에서 조직동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한다) 다른 장르와 비슷한 정도의 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한 양상이다. 결국은 전통적인 농경사회로서의 문화적 토대를 지니고 있었던 전북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산업화된 사회구조속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판소리의 본고장으로서 어느 곳에서나 소리 한가닥이 흘러나오던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 점차 소멸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문화적 장르들에는 익숙하지 않은 전환기적인 지역정서가 문화현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험한 생각은 전북이 산업화를 이루고 인구증가를 이룸으로써 지역문화의 저변이 넓혀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올해 초 진행된 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전북의 대중들은 문화적 발전을 소망하면서도 동시에 산업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문화적인 발전에 대한 강한 열망과 생활문화의 정착을 원하면서도 문화적 발전과 경제적 성장을 등치시키지 못하고있다는 것이다. 산업발전과 인구는 문화발전의 충분조건이기는 하지만 결코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진도시들의 사례는 보여준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화의 저변을 넓히고자 하는 지방정부와 문화예술인들의 의식적인 노력이다.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이런저런 노력이 잠재적인 문화인구를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특히 젊은 층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잘못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방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깊은 자성도 필요하다. 선거때마다 앞다투어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자치단체장들은 문화적 저변을 넓히기 위한 보다 치밀한 기획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문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생활문화를 살려내는 문화기반시설의 확충이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전북지역의 문화적 토양이 반만년의 농경적 전통에서 생성된 생활문화에 기반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문화적인 전략도 지역적 특성에 맞게 끈질기게 모색되어야 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우리시대 일그러진 영웅들을 위하여 글·이근영 진포문화예술원 기획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학창시절 학급회의 시간의 의사결정 과정으로 배운듯한 육하원칙이 늘 머릿속에 떠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공연 기획자’ 라는 낮설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내 명함에 찍혔던 시절. 늘 ‘신장개업’ 간판을 눈여겨보며 만나는 사람의 명함을 항상 모으곤 하던 시절이었다. 혹시라도 우연히 회사의 홍보실이나 총무과, 관리과에 소속된 사람들을 만나면 열심히 그의 얘기를 들어주곤 하던 바로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상품처럼 팔거나, 상품(?)을 작품처럼 팔아야 하는 일인 공연기획이 나의 사회적 책임인 양 들떠 최후의 판단도 팔고 결과까지 팔아버리고, 끝내는 빨리 잊어 치워버리는 것을 최선으로 알던 그 일을 사실은 지금도 손에 붙여두고 산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책임 때문이건 별다른 선택이 없어서 하는 일이건 전북지역의 공연문화의 저변을 검토해보는 일은 아직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다시 공연기획의 육하원칙으로 돌아가 보자. ‘어디서?’ 당연히 지역 내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사실 ‘어디서’는 전문적인 시설이라고는 보잘 것 없기만 한 전북의 현실에선 그다지 고민스러운 일도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좁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기획자의 번거로움을 많이 줄여준다. ‘언제’라는 것도 무조건 공연장 사정에 따라야만 한다. 비어있는 날짜, 미리 대관신청을 해두었다면 몰라도 보통 공연 3-4개월 전에 공연 가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무조건 비어있는 날짜만 잘 골라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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