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1 | [저널초점]
문화의 정체성과 긍지 회복의 시작
제35회 전라예술제
글·김태호 문화저널 기자
(2004-02-12 13:13:39)
10월 18일 「치솟는 예술의 땅으로」라는 주제를 내걸고 시작된 제35회 전라예술제가 24일 저녁 열린 중국 강소경 경극단 전주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의 전라예술제는 전북예총과 도내 8개 시·군 예총 그리고 전북예총 산하 10개 협회가 주최, 전주를 중심으로 남원, 정읍, 익산, 군산, 임실, 부안, 고창 등 각 시 군에서 펼쳐졌다.
여전히 적잖은 문제를 내포한 채로 막을 내렸지만 올해 전라예술제는 그 동안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것이었다. 많은 문제점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변화의 작은 움직임들이 하나의 밝은 출구를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고, 시민들 또한 외면하면서 “전라예술제는 더 이상 이 지역 문화예술의 대표적 무대가 될 수 없다.”는 그동안의 평가를 감안한다면 올해의 변화가 비록 작은 것이지만 시민과 예술제가 한 걸음 가까워진 느낌을 주었다.
이번 예술제는 우선 양적으로 풍성했다. 전시 5건, 강연 1건, 공연기획물 15건, 전국대회 1건, 영화상영 1건 그리고 특별기획물 등 1건 등 총 24개 행사 33차례 마당(전시 5마당 포함)이 펼쳐졌다. 하루 평균 3.4개 행사 5차례에 이르는 마당이 열린 셈이다. 질적인 면에서도 몇몇 협회의 일부 행사를 제외하고는 이전의 겉치레에 굳어진 자세에서 한 꺼풀 벗어날 모습이었다.
전북예총이 특별기획한「깊어가는 가을밤 상설 예술마당」은 예술제의 주제가 담고있는 새로운 도약과 예향의 이름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비교적 잘 살린 프로그램이었다. 상설 예술마당은 월요일인 21일부터 24일 폐막까지 4일 동안 전주코아백화점 광장 특설무대에서 매일 저녁 6시 30분부터 1시간 여 가량 펼쳐졌다.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시간에 시내 중심가를 찾아 펼쳐진 가을밤의 예술 마당에는 민속 국악 프로그램이 단연 돋보였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사물놀이, 해금연주, 시낭송, 탈춤, 설장구, 모듬북 연주와 상모놀음 등은 오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70의 나이에 이르는 명인들의 농익은 예술적 기량에서부터 젊은 재주꾼들의 패기가 한데 어우러져 예술과 문화 고장의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전라예술단의 순회 공연 또한 임실, 고창 등지를 돌며 펼쳐져 전주 중심을 탈피하는 예술제의 지역적 확대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시민들의 호응도 예년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예술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냥 먼발치에서 던지던 차가운 시선이 아닌 관심어린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예술회관 2층 사진작가협회전을 찾은 한 시민은, 점심시간 동안 문을 닫으려는 실무자의 편의주의적 일처리를 지적하기도 했는데 문인협회의 시화전, 미술협회 회원전 등과 함께 예년보다 짜임새 있는 기획력을 보여주었다. 문인협회의 시화전은 55세 이하시인의 시작 68점을 유휴열, 이방우, 지용출, 김윤진, 김부견씨 등등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10여 호 크기의 액자에 담아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때마침 중국 강소성 경극원 전라북도 방문단이 전라예술제 기간 동안 전북을 방문했다. 정읍, 남원, 전주를 돌며 보여준 중국 전통경극은 시민들에게 중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무대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상호 교류 방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극 협회와 함께 실무적 진행을 도맡아 온 창작극회(신중선 대표)는 경극원 방문단의 도내 순회공연을 전라예술제에 일환으로 치루면서 공연 외적인 문제로 지나치게 민감한 모습을 보여 도내 문화계 인사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기도 하였다.
전라예술제 특장부분으로 열린 제 14회 전국농악경연대회는 작년보다 많은 단체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지만 심사의 불미스러운 일이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참가자들의 의식 전환과 심사의 공정한 투명성이 여전히 요구되기도 했다.
몇몇 행사를 제외하고는 예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홍보 부족과 짧은 준비로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집안잔치로 끝나고 마는 아쉬움을 여전히 던져주었다.
올래 예술제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갖게 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도의 예산지원이 높았다는 점이다.
개막을 앞두고 증액된 도의 예산지원은 3천만 원으로 이전의 예술제에서 새롭게 도약하려는 의욕을 북돋우는 큰 몫을 담당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기간을 두고 지원되지 못해 보다 효과적인 성과를 얻기에는 어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역의 뒤떨어지지 않는 높은 문화예술적 역량을 문화예술인들의 창의성과 적극적 자세를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이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점들을 안은 채로 막을 내린 제 35회 전라예술제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예감을 충분히 갖게 한다.
전라예술제가 곧 전라북도의 문화예술의 현주소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 지역의 독특한 문화예술적 특성을 담아내고, 한해의 지역 문화예술계의 큰 흐름까지도 담아낼 수 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민의 따뜻한 참여의 관심이다. 외면하지 않고 참여하는 시민정신은 보다 건강하고 알진 문화예술적 자긍심을 누릴 수 있는 전북을 만들 것이다. 또한 예술인들은 밖으로 시민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전라북도 전체의 관심으로 하나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흡인력을 가지는 문화예술 축제로서의 위상 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이점에서 올해의 전라예술제는 하나의 출구로 나서는 작지만 큰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그 작은 움직임들을 통해서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경험, 즉 문화의 정체성과 긍지를 회복할 수 있는 계단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전라예술제가 지역문화 터전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이곳에서 훈훈한 문화 예술의 향기를 맛보며 이웃과 더불어 가까워질 수 있는, 삶의 만족감을 주는 품 넓은 나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