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2 | [저널초점]
문학상에 대하여
글·이천두 문화저널 발행인
(2004-02-12 13:13:13)
‘상’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잘한 일을 칭찬하여 주는 표적’이라 풀이하고, 이와 반대되는 말로 ‘벌’을 들고 있다. 상과 벌의 이런 뚜렷한 개념이 전제로 되어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리라. 신상필벌이란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줌’이라 풀이되어 있다. 상과 벌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 그것은 세상 만사를 다스리는 기본 원리라 하겠거니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세상일이 반드시 그 원리대로 가는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다. 죄지은 자가 권력을 잡아 휘두르고, 옳음을 주장하는 사람이 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박해를 받는 일이 허다하였던 그 동안의 우리 현실을 돌이켜보아도 이는 이내 알 수 없는 일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빈말일지라도 잘했다고 칭찬을 받고 싶어하지 잘못했다고 벌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 찬물이라도 상이라면 반갑다는 말이 나온 것이리라. 상이라고 주는 그 내용이 비록 찬물 한 잔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이 사람을 과연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선택되어서 칭찬을 받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넉넉히 흐뭇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칭찬을 할 만한 사람이 남을 칭찬하고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이 칭찬을 받아야지 남을 칭찬할 주제도 못되는 사람이 남을 칭찬한다든지, 도는 칭찬받을 만한 건덕지도 없는 사람을 까닭없이 치켜세운다든지 하면 이는 사람들 보기에 한낱 웃음거리밖에 될 수가 없다. 상이 상으로서 누구나가 수긍할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상을 줄 만한 사람이 상을 주어야 할것이고 또 상을 받을만한 사람이 상을 받아야 한다. 상을 주는 사람도 이를 받는 사람도 별로 신통치 않다면 그 상의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신통한 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상이라면 비록 찬 물 한잔이라도 반갑다는 말이 있지만 상이라 할 땐 역시 상다운 내용이 담겨 있어야지 이름은 버젓한 상인데 그 내용이 찬물 한 잔이라면 이 또한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동안 각지에서 시행해 온 숱한 상들 가운데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상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학상의 경우가 심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문학상이 약 400종 된다는데 그 중의 많은 것이 앞서 말한 바 줄만한 사람이주고 받을 만한 사람이 받고, 그 내용이 또한 충실한 상이 못된다는 것이다,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성취욕을 고취하는 자극제가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칭찬이나 시상이 너무 헤퍼져 버린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수상자를 선정하고 심사하는 과장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공공기관에서시행하는 상 가운데 이런 경우가 많다. 상이란 주는 쪽에서 공정하고 엄격하게 선정하여 그야말로 찾아서 주는 것이라야 받는 쪽에서도 자랑스럽고 주는 쪽도 떳떳한 법이지 신청을 받아서 심사를 하는 식의 시상 방식은 아주 폐단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상을 받는 쪽은 마치 선거에 출마하는 입후보자의 꼴이 되고 주는 쪽은 상을 줄 테니 희망자는 줄을 서시오 하는 꼴이 되니 모양도 좋지 않고 후유증이 파생할 가능성도 짙다.
꽤 오래 전의 일인데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여 화제에 오른 일이 있다. 이보다 더 오래 전에 영국의 극작가 버너드 쇼우도 자기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근래에 작품을 쓰지 않았더니 책망하느라고 그러나부지?” 하며 역시 거부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전에 문학상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주는 무슨 문화포장(?)을 받은 적지 않은 작가가 있었다. 이런 분들의 행위에 대하여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어떻든 상을 타기 위해서 로비활동까지 벌이는 사람조차 있다는 요즈음의 우리 세태에 견주어볼 때 역시 교훈의 소재가 된다고 하겠다.
올해도 이제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올해를 결산하는 여러 가지 시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0월 17일에는 우리고장에 모악문학상의 시상식이 있었다. 이 모악문학상은 우리고장의 한 시인이 출자하여 제정한 상으로 금년들어 제 4회를 마쳤다. 이 상은 우리 고장의 상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통틀어서도 자랑할 만한 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첫째로 이 상은 한국의 한 유구한 시인이 자기 동료 후배들을 격려 고무하기 위하여 제정한 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문학을 생각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떠한 의도도 있지 않은 순수한 상이라는 말이다. 둘째로 그 내용이 파격적으로 충실한 상금 1천만 원의 문학상이다 2천만 원의 대산문학상 다음으로 큰상이 바로 모악문학상이다. 그런데 대산문학상은 큰 기업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듣고 있거니와 모악문학상은 한 시인의 정재(淨財)로써 마련된 상이라는 점에 그 유다른 뜻이 있다고 하겠다. 셋째로 이 상은 그야말로 알아서 챙겨 주는 상이라는 점이다. ‘상을 줄 테니 신청하시오’ 하는 식이 아니라 조용한 가운데 알아서 챙겨 주는 상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상이 잇달아 생겨났으면 좋겠다. 사르트르나 쇼우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 H씨처럼 아예 상 따위를 거들떠보지 않는 삶 또한 존경받아 마땅하겠으나 잘한 이를 잘했다고 칭찬하는 일, 칭찬할 만한 자격을 갖춘 이가 칭찬하는 일, 그것도 두둑한 내용으로 갖추어서 칭찬하는 일, 그것은 신상필벌의 원리를 정립하는 차원에서 보아도 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