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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1 | [문화저널]
득남의 꿈
글·남춘호 전북대 교수·사회학과 (2004-02-12 13:04:48)
통계청이 발표한 ‘1994년도 인구동향 통계’에 따르면 새로 태어난 여아 100명당 남아의 숫자인 출생성비는 115.5명으로 비교대상 30개국 중 최고치를 나타냈고 이 수치는 지난 70년 이후 20년에 넘게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남아선호는 셋째 아이 이상의 출산에서 더욱 두드러져 셋째 아이의 경우 남자 수가 여자 수의 두 배를 넘어서 성비가 205.9를 기록했고 넷째 이상은 무려 237.7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2010년에는 출생성비가 129에 이르고, 이 연령집단의 경우 남자의 23%가 국내에서는 배우자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일부일처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전통적 결혼제도에 일대 위협이 아닐 수 없으며, 독신의 증가, 성범죄의 만연, 남성동성애자의 증가 등 성비파괴로 인해 예상되는 부작용은 가공할 만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직 세계 어느 나라도 국가 전체적으로 그 정도로 심각한 성비 불균형에 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의 오랜 꿈, 듣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득남의 꿈’을 실현시켜 준 의학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사실 아들을 낳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애처로운 노력은 이미 우리의 선조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조 영조때 유중임이 지은『증보 산림경제』를 보면 당시에 유행하던 다양한 태아의 성감별법이 기록되어 있다. “배위를 쓸어보아서 술잔을 엎어놓은 것과 같으면 아들이고, 팔꿈치나 목처럼 울퉁불퉁 일어나면 딸이다.” “왼쪽유방에 핵이 들어 있으면 아들이고 오른쪽 유방에 핵이 들어 있으며 딸이다.” “왼쪽 맥이 빠르거나 크게 뛰면 아들이고 오른쪽 맥이 빠르게 뛰면 딸이다.” 심지어는 “복숭아나무 도끼자루나 수탉의 꼬리깃을 임부가 깔고 자면 뱃속의 여자아이가 사내아이로 바뀐다.” 는 용한 비법도 적혀있다. 오늘날 돌이켜보면 너무도 허무맹랑하여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소위 아들만 골라 낳는 비법은, 오늘날까지도 옷을 갈아입고 선보이고 있다. 체질을 알카리성으로 바꾸기 위한 식이요법, 배란시기를 조정한 성교, 여성으로 하여금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방법, XY정자분리 등등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방법들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거나, 혹은 임상에 적용할 경우 성공확률이 아주 낮다고 한다. 산부인과 의사 김모씨는 아들을 골라 낳아주겠다고 선전하여 소문들 듣고 찾아온 여성 1천 8백여 명에게 알칼리 질세척 등을 하고 8억여 원을 받았다가 피해 여성에 의해 사기죄로 고소되어 재판에 계류중이라고도 한다. 이 정도까지는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 줄 의술의 발전이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과학적 근거를 가진 확실한 방법들이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니 다름아닌 태아의 성감별과 그에 이은 인공유산의 방법이다. 원래 융모막 생검이나 양수천자, 초음파검사 등의 기술은 검사자체가 위험부담이 크고 합병증의 우려가 있을 때만 불가피하게 시행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오랜 꿈, 득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정도의 위험부담이야 문제될 게 없다. 성감별 결과 뱃속의 아이가 여아인 경우에는 비정하게 ‘살해’ 해버리고 만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한 생명을 없애 버린다’는 자각조차 없이 낙태를 시켜왔다. 이러한 낙태의 성행은 과거 우리의 산아제한 정책에 기인한 바도 적지 않다. 산아제한이라는 지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법적 인공유산을 방치 내지 조장해 온 측면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간절한 소망은 그것이 꿈으로 남아있을 때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제 아들만 골라 낳는 꿈이 달성되어 모든(?) 가정에서 아들을 가질 수 있게 된 지금, 그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커다란 재앙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제 정부는 태아 성감별을 한 의사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의사의 도움 없이는 발전된 새로운 비법을 이용할 수 없으니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연 확실한 처방이 될 수 있을까? 과거의 집값이 천장지부로 솟을 때 이를 막기 위해 양도소득세를 도입한 적이 있지만 주택의 공급량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양도소득세는 오히려 주택가격을 더욱 인상시키고 만 적이 있다.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는 결국 위험부담비용을 높여서 이 새로운 기술의 이용료만 높이고 말지는 않을까? 실제로 태아성감별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되었으나 친척이나 주변 친지들은 통한 청탁과 담당의사의 은유적인 암시 등의 방법으로 태아 성감별은 여전하며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성감별의 결과도 더욱 암시적 방법으로 전달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뭐가 안보이느냐?”, “다소 문제가 있다” “심장이 씩씩하게 뛴다” “태아의 골격이 튼튼하다”는 등의 선문답이나 혹은 그저 얼굴 표정만으로 의사가 전달되니 당사자 외에는 알길이 없고, 이를 근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되면 의사의 도움 없이 간단한 시약만으로 태아의 성감별이 가능한 시기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인공유산의 경우에는 이미 간단한 앙ㄹ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얼마 전 임신중절용 알약이 미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약은 프랑스에서 개발되었는데 임신 7주 이내에 복용할 경우 95.4%가 중절에 성공한다고 하며 유럽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의 꿈을 버릴 때가 되었다. 이미 우리는 이를 경험한 바 있다. 배고픔에 굶주렸던 우리들은 ‘진지 잡수셨습니까?’라는 말로 문안을 드렸던 적이 있다. 이제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이 밥과 고기를 배불리 먹어보고픈’ 오랜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꿈이 이루어지자마자 바로 영양과잉과 비만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된 우리들은 이제 ‘이밥과 백미’ 대신 ‘현미와 채소’를 먹기로 생각을 바꾸어 가고 있다. 그러나 꿈은 항상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계중심 혈연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이등시민’에 불과한 딸을 낳기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낳고자 하는 오랜 득남의 꿈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합리적이 소망이었다. 결국 뿌리 깊은 남녀 불평등이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한 남아선호의 꿈은 포기하란다고 해서 저절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난 추석에도 예외없이 귀성전쟁을 경험하였다. 끼리끼리 모여지내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의 생활질서에서 보면 고향찾기란 교통대란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흐뭇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난 추석에 외가나 처가쪽의 조상묘에 성묘를 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암암리에 남아선호를 부추기는 가족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아무리 어려도 아들이면무조건 호주승계 1순위에 올라가는 호주제도는 문제가 있다. 여자쪽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동성동본이어도 문제삼지 않으면서, 어디서부터 갈라졌을지 모를 수백년 전의 할아버지가 같다는 이유로 결혼을 못하게 하는 동성동본 금혼제도의 끈질긴 생명력에는 할 말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부모 봉양의 책임을 아들에게만 맡기는 풍습 또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고령화 시대에 걸맞는 연금제도와 각종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해 노인문제를 국가차원에서 떠맡는 과제 역시 시급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적극적으로 강제(?)해야한다. 남녀의 차별은 너무나도 우리사회에 체화되어 있어서 남녀간에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사태를 호전시킬 수 없게 보인다. 이미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여성의 고용이 얼마나 진전되었는가? 이제 우리도 구미각국이 도립한 각 사회 각 분야에의 여성쿼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기회의평등이 아니라 결과가 평등을 말해줄 수 있도록 고등교육기관에서 입학이나, 기업체에의 취업, 공직자 임명 등에서의 여성을 최소 쿼터를 정하고 이를 지키는 기관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주어 이 제도의 정착성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남춘호 /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91년 「석탄광업 노동시장분절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산업사회학과 방법론을 전공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하버드대 엔칭연구소 초청으로 그곳에서 1년간 연구활동을 했다.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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