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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0 | [문화칼럼]
문화는 인간이 되게 하는 핵심
글·김용복 한일신학대학교 총장 (2004-02-12 13:00:25)
요즈음 급변하는 우리의 상황은 민족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다. 특별히 우리 향토의 문화를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야흐로 지구적 차원에서 문화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이것은 우리 민족문화와 우리 향토 문화에 지대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급격한 지구적 변화를 사람들은 지구적 시장화(global marketization) 라고 칭한다. 이것은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으며 우리 민족 경제나 우리 지역 경제도 이에 편입되고 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지역 경제난 민족 경제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주역을 하지 못한다면 지구 시장에서 소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지역 경제는 우리가 지구 시장의 논리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지구 시장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기보다는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지구의 시장화를 말하는 것은 경제적 차원에서보다는 문화적 차원에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21세기 지구 시장의 경제활동은 60%정도가 문화 정보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한 전략가는 21세기는 문명의 충돌을 야기시킨다고 말하였다. 경제 진영간의 경쟁이 문명간의 충돌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동아시아 문명은 서구 문명과 충돌한다는 뜻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 또 독일의 한 사회비평가는 이러한 충돌은 지구 시장에서 ‘문화 전쟁’이라는 양상으로 벌어진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 영역이 전쟁터가 되고 시장의 문화와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문화 사이에 ‘전쟁’과 같은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향토 문화와 민족 문화의 상황과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화란 인간이 인간 되게 하는 핵심적인 것이다. 우리의 향토 문화는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여 주었고 우리의 민족문화는 우리 민족 공동체를 인간답게 살게 하여 주는 것이다. 문화란 인간 공동체가 자연 환경, 사회와 역사 환경과 부단히 상호 작용하면서 창출한 것이기도 하고 지역이나 민족 공동체가 살림살이를 하는 데에 있어서 그 기반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문화 때문에 인간이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민족 문화와 향토 문화는 지난 1세기가 넘게 동서양 문명의 충돌의 소용돌이에 있었고 이제는 지구 시장의 급속한 전개에 따른 세기적 충격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다음 네 가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우리 민족과 우리 향토의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이다.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어떻게 보전시키느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21세기의 문화적 상황에서 우리의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로 부각된다.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은 역사적 문화유산의 계승을 절대적 요건으로 할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문화적 유산이 세계적 수준으로 재창조 발전되지 못한다면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 민족과 향토의 문화적 정체성의 기반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민족과 향토문화의 유산은 그 길이와 높이가 철저히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유산의 단순한 보전은 오히려 그것을 골동품화 할 위험이 있다. 문화적 유산은 오늘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살아 있는 문화로 경험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로, 문화는 우리의 삶을 살게 하는 양식을 제공하여 준다. 우리 민족 그리고 우리 지역의 살림살이는 의식주 생활에서부터 정신생활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문화적 양식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지구 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색한 서구식 삶의 양식을 불편한 줄도 모르고 그것의 인간적 가치도 모르고 강요(?)당해 왔다. 아마도 우리는 단순히 과거의 삶의 양식으로 복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향토에서 오랫동안 체험되었던 과거의 인간다운 삶의 양식의 기틀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우리의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 민족 문화와 향토 문화는 보편적이면서도 고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이란 변화하여 인간 공동체를 인간답고 풍요롭게 지탱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오늘의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도 할 수 있고 더 높은 차원의 가치관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적 향토적 가치관은 인간 공동체를 행복하고 윤택하게 함에 있어서 창조적이고 해방적이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의 시장 문화는 우리의 문화적 유산은 물론이고 우리의문화적 감성도 상품화하고 상품 거래의 과정에 천박하게 악용되면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아름다움의 신비는 이제 광고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민족 우리의 향토인들은 심오한 심미적 정취를 축적하여 왔다. 우리의 전통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과 연예가 그런 것들이다. 우리의문화적 심미의 세계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이루어진 높은 경지에 달하여 있다. 이러한 신비로운 심미적 경지는 보편적 지평과 고유한 향토적 지평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서 체험되는 심미의 지평도 융해하면서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 향토 문화의 여러 가지 차원을 하나의 무지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다양하게 경험되는 현대적 또는 현대 이후적 문화 경험도 민족과 향토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하나의 동·서양 악기를 총망라한 신 교향악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의 문화적 경험은 지극히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획일적인 문화로 돌아 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들이 무지개처럼 교향곡처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무지개나 교향악 연주의 조화를 이루는 문화는 다양한 요소만 배열하여서 그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휘자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민족 문화와 향토 문화의 핵심적 근간과 근본적 기반을 구축하지 않으면 문화적 혼란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며 새로운 민족 문화와 향토 문화의 조화를 이루어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심층적 문화 근간을 구축하지 못하면 이것은 태양 없는 무지개, 지휘자 없는 교향악 연주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우리 민족 우리 향토에 이러한 근원적 문화 근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리 문화의 종교적 기반을 탐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곧 우리 나라 불교, 유교, 기독교 그리고 기층 종교의 지평을 융화할 수 있는 ‘초월적’ 혹은 ‘원초적’ 기반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역사 안에서 경험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백제 이후 호남의 종교사는 이러한 점을 예시하여 주고 있다. 우리 문화를 인간답게 살림살이하도록 하는 기반으로서의 근간을 이런 종교적 유산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김용복 / 38년 김제 출생. 연세대 철학과를 마치고 미국 프린스톤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활동했다. 1980년 『한국민중과 기독교』,87년『한국민중사회전기』등의 저서를 냈으며 국내보다는 외국에 더 널이 알려진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1992년부터 한일신학대학교에서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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