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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 | [문화저널]
PC칼럼 “도스 예찬”
글■최재호 자유기고가 (2004-02-12 12:53:46)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이며 ‘뻑’소리와 함께 말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프롬프트가 어느덧 모니터이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익숙한 손놀림에 내뱉듯이 화면에 뿌려지는 글귀는 “HWP". 하얀 칠판처럼 화면 가득히 글이 떠오르면 나의 후루는 조용히 그 시작을 맞이한다. 간혹 내가 묻는 질문에 “Bad command or file name"이라는 대답을 종요히 읊조리며 나를 달래주곤 하던 프롬프트의 진솔함이 좋았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모니터를 하나 가득 차지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기꺼이 모니터 뒷면으로 사라져 주는 넓은 가슴이 좋았다. 이름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화면이 일그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프롬프트가 나를 잊지 않으려고 절규하는 소리에 나는 다급하여 안철수 씨의 백신을 호출했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 땀을 날려보내려는 듯 긴 숨을 토해내며 프롬프트는 되살아나곤 했다. 가끔은 아주 돌아오지 않아서 나에게 좀 더 폭넓은 지식과 UMB, UPPER, EMS, XMS, CMOS, PCI 등등의 여러 나라 아이들도 소개시켜 주는 녀석의 숨은 배려도 맛보았다. 화려한 색상과 현란한 화면으로 무장한 “윈도우”와의 잠시의 외도에는 프롬프트는 조용히 나를 기다려 주었다. 예측할 수 업싱 곧잘 삐치곤 하는 “윈도우”에 싫증난 내가 돌아왔을 때도 프롬프트는 여전히 담담했고 조용했다. 그러나 프롬프트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FORMAT"이라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악동으로 각종 ”SHELL"류의 친구들은 프롬프트가 잠자는 하드디스크를 포맷하려 하면 이구동성으로 “Are you sure?"라며 마지막으로 프롬프트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곤 한다. 난 오늘도 프롬프트를 바라보며 이렇게 속삭이곤 한다. “우리말 할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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