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0 | [저널초점]
저널초점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
글■황안웅 향토사학자
(2004-02-12 12:48:26)
‘신토불이’라는 말은 천만 옳은 말이다. 그 까닭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나’ 라는 몸이 어디에 있든지간에 몸은 언제나 흙을 밟고 설 수 밖에 없고, 설사 이 몸이 균형을 잃고 자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 있는 한 흙바닥에서 엎어졌으니 흙을 짚고 다시 일어 설 수밖에 없겠기로 앉으나 서나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 둘째 내가 밟고 있는 것은 흙인데 저와 내가 하나이듯 모든 환경이 흙으로 말미암았으니 자나깨나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 셋째 나는 나일 수밖에 없지만 내가 나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내 위에 조상이 있고 내 밑에는 후손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지금 내 조상은 거의 흙이 되어 있으니 나 또한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기로 죽으나 사나 모모가 흙은 둘이 아니다.
또 몸과 흙이 둘이 아니라는 점은 각각 그 쓰임새대로 이름을 붙여져 있다는 사실에서도 다를 바 없으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또한 명분을 강조한 말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남대동의 병장 전해산이 내세운 의병운동 삼불가 대의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니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상 대대로 내려 받은 강토는 한 치라도 남에게 잉여할 수 없고 둘째,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인민은 한 개라도 오랑캐가 될 수 없으며 셋째,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도학은 하루라도 땅에 떨어뜨릴 수 없다.
이처럼 흙과 몸, 그리고 그 속에 담겨져 내려온 이름을 지켜 내자는 것이 의병을 일으킨 세가지 대의였으니 이를 풀어 말하자면 결국 흙과 몸과 이름을 고스란히 지켜 내자는 것이었다. 천만번 옳은 일이긴 하였으나 뜻과는 달리 흙은 짓밟혀 졌고, 몸은 더럽혀 졌고, 이름은 망가뜨려져 버리고야 마랑싿. 아! 아무리 바람이 모질었기로 높은 산이 낮아지고 깊은 바다가 얕아진 예로 이처럼 실한 일이 예전에는 없었다.
거금 400여년전 저 임진년에 호남의 수부 전주 침공을 위해 도적들이 건넜던 적래천(賊來川)이 피리 불며 한가롭게 목동이 노는 지래천으로 바뀌었고, 그에 앞서 운봉이 모인 아지발도 군을 때려 잡기 위해 남하한 이성계군이 마지막 밤을 뜬눈으로 세우며 장차 출범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난데없이 산중 촌닭이 울어 부랴부랴 나섰기로 황산대첩을 이룰 수 있었다는 용계기(龍鷄里, 장수읍에서 산서로 넘는 들머리 마을)는 닭이 물로 바꿔져 용계리(龍溪里)가 되어 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명산 지리산이 가로 막고 명장 이성계가 달빛을 끌어 들어 좌우 합작으로 겨우 쌀도적떼 70여명을 남기고 몽땅 죽여 쌓인 시체를 동서로 나눠 동무덤과 서무덤을 이뤘거늘 동무덤은 간데 없고 서무덤만이 서무리(西茂里)로 고쳐졌으니 왜놈 시체의 기름발이 하필 서쪽 무덤에서만 솟았다는 말인가?
“소남 잣나무가 천리를 잇게 되면 명산의 혈에 구멍이 뚫리고 철마가 소리치며 밤낮으로 왕래하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맥이 하나하나 끊겨서 일은 맥없는 일이 되지만 땅은 갈기갈기 나누어져 종내는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갈리리라”는 구전비결이 과연 맥없는 소리였단 말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골따라 바람이 다르고 물따라 인심이 달라지기 때문에 땅은 얼어지면 얼어진 만큼 시원스럽기도 하지만 인심이 싱거질 수 있고 닫혀만 있으면 닫혀 있는 만큼 깝깝하기도 하지만 인심은 그런데로 순후할 수 밖에 없다.
다만 틀림없는 사실은 흙을 소흘히 버려두면 종내에는 제 설 자리마저 잃기 마련이지만 흙을 소중히알면 수중히 아는 만큼 제 스스로도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인데 지금 돌아가고 있는 꼴은 과연 어떤가?
양전옥토를 버리고 신작로 길다라 고향을 버린 것은 한참 지난 일이요. 이제는 논바닥에 물이 고일 필요가 없기로 온통 우리 국토는 점차로 건성화되어 가고야 말 얄궂은 운명에 직면하고 있지 아니한가?
뼈에도 물기가 있어야 부드럽고 혀속에 침이 촉촉하게 고여야만 건강하다 하듯이 촉촉한 피부에 되도록 맑은 물이 언제나 고여 있어야 건강한 자연이라 말할 수 있고, 자연이 건강해야 그 속에 몸담고 사는 몸도 자연히 건강한 것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제가 선 제 자리를 모르고 제 자리가 그저 제 자리가 아니라, 살아도 이 자리에 살 일이요 죽어도 이 자리에 묻힐 자리임을 확실히 깨닫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싶어 매우 슬프다.
우리가살고 있는 전주는 어떤 자리인가? 솟은 산으로 보아도 온전하여 ‘완산’이고, 흐르는 물로 보아도 마땅하기로 ‘전주’라 하였으니 백두를 머리로 보면 백두대간의 척추요, 백두의 유맥 지리산은 민족정기가 뭉친 ‘단전’일지라. 호남이야마롤 민족의 살림을 온통 꾸려 왔던 영양가 높은 삼겹살 바로 그곳이다.
그렇기로 민족의 은인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도 “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이 나라도 없었을 뻔했다.”하였고 면암 최익현 성생께서도 “저 임진의 난리에 나라를 건지기 위해 불처럼 일어났던 의리의 고장 호남을 찾아 나라구할 방도를 취하리라.”고 갈파 하신 바 있다.
곤지산과 건지산 사이로 밤낮으로 흐르는 전주천은 그 모양이 우선 태극일지라 천변만화는 오직 변화일 뿐이요 다만 일음일양은 곧 도이니 정신만 온전히 차려 불변하는 마음으로 온갖 변화를 대하고 보면 끝내는 원시반종한 소식을 소리 없는 소리로 말해 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옳다. 전주는 전주요 완산은 완산인 만큼 그 속에 담겨 있는 우리가 꼼짝없이 전주인이요, 완산인일 수밖에 없는데 어지하여 전주 사람이 전주 사람 노릇을 못하고 완산인이 완산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깨닫지 못하느뇨?
남고의 저녁 종소리가 그친지는 오래지만 그래도 기린이 뱉는 밝은 달은 밝은 보름 저녁이면 여전히 덩스러히 솟아 오르며, 천 길 바위위에서 쏟아지는 한 가닥의 위봉폭포수는 가뭄과 장마에 따라 그 양이 다르지만 그래도 ‘흥’하는 시위소리는 이따금 숲속에 잠든 닥산 새들의 단잠을 깬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천년을 건너온 예스런 정취는 어김없이 저 산하에 닮아 있고, 모진 바람에 벗겨진 흙이 먼지되어 어지럽게 날렸던 그 심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온 우리네 땅은 그래도 우리 땅이기에 더 이상 갈 곳없는 이 땅의 이흙을 내 몸같이 아껴 결코 몸과 흙이 둘이 아니라는 점을 똑똑히 보여 주자.
그리하여 도적이 건넛던 내는 그때 그 모양대로 당초 이름대로 부르고, 망하는 고려의 길목에서 새로운 조선의 아침을 알렸던 닭의 울음 소리가 났던 그 자리는 자리대로 그대로 부르며 자칫 묵혀지고야 말 운명에 놓인 우리의 땅을 잘 가꾸어 가자. 내 몸이 바로 저 흙이요, 흙이 바로 내 몸이 아닌가?
황안웅/ 1943년 전주태생. 동국대 대학원에서 노장학을 전공했다. 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전북 충절사」를 집필하고 있는 열정넘치는 향토사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