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0 | [문화저널]
음반 감상
이 가을밤을 아름답게
슬라바의 <아베마리아>
글■문윤걸 전북대 강사 ■ 사회학
(2004-02-12 12:46:43)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아베마리아>를 듣고 황홀함에 도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의 곡이던 <아베마리아>에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넘쳐 흐른다. <아베마리아>만큼은 털끝만큼의 불결함도, 에로틱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녀는 순진무구하며 완전무결한 여성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서구인들에겐 마리아는 단순한 여성이 아닌 꿈에 그리던 완전한 여성이요, 삶을 잉태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항상 예술에 의해서 최고의 찬미를 받았다.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기사도의 사회가 등장한 것과 궤도를 같이 한다. 1.200년 경 유럽의 기사들은 새로운 정신의 리더였다. 그들은 교회로 대변되는 성스러움에서 차츰 벗어나 속스러움이 갖는 풍만한 감정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트루바도르, 민네징거 등 음유시인들은 여성을 찬미하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서정적인 연애시들을 읊으며 유럽 전체에 낭만적 사랑을 전파하고 다녔다. 이들로 인해 유럽은 교회를 제외하고는 온통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이러한 낭만적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일환으로 십자군 운동을 일으켰다. 모든 기사들은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미지의 나라로 나그네 길을 떠났다. 이제 미지의 세계에서 불안한 밤을 보내던 이들은 하늘에 떠있는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을, 그리고 위안을 주는 아내의 품을 그리워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여성을 찬미하던 이들에게 여성은 더욱 이상화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상은 한 여성에게로 모아졌다.
이제 마리아는 성모로써 숭배되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성 프란시스로 그는 오늘까지도 모든 예술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마리아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순결한 하늘의 여왕, 부드럽고 자애로우며 용서와 위안으로 가득찬 마음, 감미롭고 우아하며,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로 고통을 어루만져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주는 여인으로써의 마리아.......
슬라비의 <아베마리아>는 르네상스시기 이탈리아 마드리갈의 대가인 카치니로부터 1971년 세상을 더난 스트라빈스키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12명의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아베마리아>를 모아놓은 음반이다. 슬라비는 12곡의 <아베마리아>를 부른 연주자의 이름인데 그 이름이 참 새롭다. 그의 연주는 기존의 연주자들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그녀는 다른 연주들에서처럼 맑고 빼어난 기교로 노래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음반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그녀의 소리는 진지하면서도 차분하며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절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음반은 우선 편안한 휴식과 안정을 준다. 그리고 가을밤을 아름답게 해주는 친구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