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0 | [시]
시
참깨
이정록
(2004-02-12 12:44:17)
아래 꼬투리는 입이 벌었는데
머리엔 꽃망울들이 매달려 있다.
내가 여물수록, 꽃망울들은 마라죽는다는
괴로움이 쩔어 기름으로 고인다
앙다물었던 입술이 터지며
바닥에 하앟게 사리가 쏟아진다.
연두빛 어린꼬투리와 함께
어금니로 돋는, 아버지의 유언
복을 벗은 뒤, 햇살처럼
어린 동생들의 솜털을 어루만진다
꼬투리라고 생긴 것은
양지에 서서
마침내 몸을 열어
참개가 된다고
쭉정이로 쏟아진 맘이, 방바닥
눈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이정록 / 1964 충남 홍성 출생 ‘93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했으며 1994 시집「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를 발간했다. 지금은 충남 홍성군 길산면 길산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