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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0 | [문화저널]
강준만의 문화비평 호남차별에도 급수가 있다
글■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2004-02-12 12:38:12)
나는 '호남 차별‘이라는 주제로 글을 자주 쓰는데 나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은 나를 말린다. 아무리 떠들어봐야 해결되지 않을 문젠데 왜 혼자 욕 먹으며 손해볼 짓만 하느냐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꾸 그렇섹 호남이 차별받는다고떠들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반발해 오히려 지역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으니 가만히 있는게 더 낫다는 것이다. 나를 전혀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일종의 음모론으로 해석한다. 내가 호남차별을 열심히 떠들어 김대중에게 잘 보여 국회의원이라도 해 볼려고 그런댄다. 정말 놀고 있네! 이번엔 나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호남차별을 떠들어대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위선과 기만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골적으로 호남을 차별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에겐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으 절대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과 얼마든지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다. 아니 실제로 나는 그런 경험이 많다. 그러나 나는 어느 지식인이 자신은 절대 호남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아니 심지어 호남을 살아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호남을 차별하는 발언을 하는 걸 보면 화가 난다. 명색이 지식인인 만큼 무지몽매해서 그럴 리는 없다. 위선 아니면 기만이다. 나는 그 위선과 기만을 폭로하고 싶어 늘 손과 입이 간질거린다. 그러니 나를 너무 탓하지는 마시라. 호남차별의 유형을 그 정교함을 기준으로 급수를 매겨보면 어떨까? 전라도놈은 어덯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보통사람의 호남차별은 내가 보기에 8급 수준이다. 나는 오늘 1급 수준의 교묘한 호남차별 논리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실명을 거론한다 하여 절대 인신공격으로 오해 하지 마시라. 나는 한 지식인의 사생활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 지식인이 공적으로 한 발언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 하는 것을 정중하게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니까. 서강대 정외과 손호철 교수가 그 문제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서울 출신이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는 정치학자로서 호남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고 특히 광주에서 5년을 보내면서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될만큼 호남에 애정을 갖고 있다.” 그가 호남에대해 갖고있다는 애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자. 어머니가 자식에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자식을 구름 위에 띄운다. 터무니없이 자식을 미화시키고 자식에 대해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말이다. 그 자식은 평범하다. 어머니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켜줄 리 만무하다. 어머니는 자식을 꾸짖는다. 아니 때리기까지 한다. 학교에서 왜 1등을 하지 못했느냐고 자식을 때리면서 어머니는 말한다. “이게 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유감스럽게도 손 교수의 호남에 대한 애정은 호남에 대한 매질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 여론조사에서 호남인의 63%가 김대중총재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회의-자민련-TK 세력 등과 연합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는 결과가 나타난 것을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충격받는 거야 자유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의 다음 말이 문제다. “김 총재의 역지역연합 겸 보수■수구연합에 대한 지지는 5■18을 비롯해 호남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를 스스로 부정하고 그간의 숭고했던 투쟁이 단순히 ‘전라도 대통령 만들기’에 불과했던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나는 이 견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연합에 대한 호남인의 지지를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 진보주의자인 손 교수는 양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롭고 진보적인 정치 세력이 내년 대선에서 집권하기를 바란다. 나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정치는 현실’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엄연한 현실이다. 똑똑한 초등학교 학생도 알 수 있는 수준의 현실인 것이다. 전국에서 정치의식이 가장 높다는 호남인들이 그걸 모를까? 그렇다면 호남인의 63%가 그런 연합에 찬성했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5.6공을 계승한 신한국당의 정권 재창출보다는 김대중 연합 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이러한 선택에 문제가 잇는가? 도토리키재기라도 좋다. 어느 쪽에 더 민주적인 정통성이 있는가? 둘다 똑같다고 해도 김대중 연합 세력에겐 정권교체라고 하는 명분이 있다. 정권교체를 우습게 생각하면 안된다.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엄청난 진복를 이룩할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손 교수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자신의 이상을 대안으로 제시해놓고 그걸 기준으로 하여 호남은들의 선택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를 앞세우면 모든 게 통용되나? 어림도없는 소리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현실을 꿰뚫어보고 현실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손 교수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다. “호남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를 스스로 부정”운운하는 표현은 폭언이다. 설사 호남인이 ‘전라도 대통령 만들기’에 미쳐있다해도 결코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는 민권투쟁이야말로 민주화의 핵심이 아닌가? 그 민권투쟁이 지역주의적 성격을 갖고 잇는 것이 마땅치 않다면 부당한 차별을 지역주의적으로 한 역대 정권을 욕해야지 왜 호남인에게 돌리는가? 벌써 지면이 다 됐다. 조만간 책으로 바다 상세하게 손 교수의 교묘한 호남차별 논리를 폭로하겠다. 여기에 다 소개하지 못한 ‘증거’가 많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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