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 | [특집]
특별좌담
지방화 1년, 지역문화 어디로 가고 있나
문화저널(2004-02-12 12:32:52)
참석자
김용택(시인)
김은정(편집위원·전북일보 문화부 기자)
박병도(전북도립국악원 국악장)
송만규(화가)
유기하(전주문화방송 기자)
윤덕향(운영위원·전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이규현(KBS 전주방송총국 PD)
사회 이종민(편집위원·전북대 영문과 교수)
정리 원도연(문화저널·편집장)
일시 1996년 8월 9일(금) 오후 6시
장소 전주 우진문화공간
이종민 안녕하십니까. 저희 문화저널이 9월호로 통권 100호를 맞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 것도 100호를 기념해, 여러 선생님께 축하받고 문화저널이 그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평가도 듣고 또 한편으로는 지방자치제 1년을 넘긴 이 시점에서 지역문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자 하는 뜻에서 입니다.
오늘 주제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과 우리의 문화 상황이 되겠습니다. 우선 편집부에서 준비한 전북도의 문화정책에 대한 개괄을 듣고 지역문화란 말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원도연 지난1년 민선지방정부가 내세운 문화정책의 핵심은 전북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라북도는 민선지방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체성 회복을 위해 이른바 ‘자랑스런 전북만들기’라는 캠페인의 성격이 짙은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습니다. 자랑스런 전북만들기 사업과 함께 또 한가지 전라북도 문화정책의 특징은 세계화 전략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북도가 지방정부 1년을 지나면서 21세기 3대전략 50대 사업이라는 것을 밝혔는데 여기서 3대 전략은 첫째 세계로 뛰는 전북경제, 둘째 선진수준의 사회복지 추구 셋째, 전북인·전북문화의 국제화라는 전략속에 전북도 문화정책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셈입니다.
이종민 도의 문화정책을 보면 우선 개발중심적 전략이라는 느낌이 짙군요. 어쨌든 우선 오늘의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 상황에서 지역 문화라는 개념이 유용한가 혹은 타당성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하죠.
요즘의 상황을 보면 문화의 홍수시대 라고 이야기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제 정치의 시대는 가고 문화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흔히 보면 문화적 환경이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또한 TV 등 전파매체가 갖는 위력 때문에 우리들 정서 자체가 획일화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역문화를 어떻게 바라 보고 평가해야 할까요.
지역문화란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
이규헌 지역문화란 그 지역에 있는 사람의 살아있음, 즉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음으로써 당연히 추구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문화예술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문화란 살아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문화란 지역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그 자체가 아닐까요?
이종민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일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내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지역문화의 타당성 혹은 유효성은, 크게는 지방자치의 필요성, 작게는 지역언론의 유효성과도 연결될 수 있을텐데요.
유기하 지역방송의 경우, 로컬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이 낮으면 낮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로컬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면 또 사람들은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르냐를 말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봐요. 지역문화 역시 그런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정보화 시대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고, 또 일본사람들이 많이 쓰는 용어 가운데 정보발산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보 혹은 문화의 수용도 꼭 중앙으로부터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방송이나 문화 역시 바꾸어 생각하면 얼마든지 지역성을 살릴 수 있지요.
김은정 문화가 삶과 언어와 모든 것의 총합체라고 할 때 거기에는 공간적인 문제도 있고 시간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시대의 문화 그대로를 가지고 지금 시대에 살 수 없듯이 공간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문화를 전라북도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의 한 양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요. 이 지역의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땅의 정서나 문화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삶의 언어가 있기 마련이고 바로 그 지역적인 고유성으로부터 창출되는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존중되어야 하지요. 우선은 서울문화와 지역문화가 이중적이고 배치되는 가치로서가 아니고 각각의 고유한 문화가 가지는 시간과 공간을 따져야 하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중앙과 지방이라는 문제에 자꾸 빠져들곤 하거든요.
김용택 지역문화가 모여야 그 나라의 문화가 되는 것이고, 그 나라의 문호가 모여야 또 세계문화가 되지요. 지역문화는 분명하게 있지요. 그것이 또 한나라의 문화의 바탕이 되는 것이구요.
이종민 자본주의 사회는 문화생산자와 수요자들 사이에 항상 전문화와 분업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문화예술조차도 생산자와 수요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 일과 놀이가 하나의 문화로 어우러졌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과 문화를 즐기는 시간이 따로 배치되고 일터를 떠나서 어느 일정한 공간으로 가야하지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자본의 힘이 열악한 지역의 경우, 자본력에서 우세한 중앙문화에 의해서 지역문화가 위축될 수도 있고 지역문호가 낮게 평가될 수 있는 우려도 있을 수 있겠는데요….
송만규 우리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에는 일제에 의해서 단절과 왜곡을 겪어왔고, 해방된 이후에는 군사문화나 독재문화에 의해서 아래로부터의 지향이 단절되고 마비되어 왔습니다. 지역문화의 경우도 중앙집권적 형태로 흘러왔던 것들이 90년대 이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비로소 지방이 어떤 독자성을 갖고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그 지역의 독특함을 끌어내고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습니다만, 이제는 UR이라는 더욱 강력한 장애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국가가 형성하고 있던 전통과 문화라는 것들이 공존하면서 지구촌을 형성해 왔는데 이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UR 이후에 문화와 경제를 같은 재화로 놓고 보기 시작하면서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의 파시(波市)로 형성되지 않을까 그런 우려를 갖게 됩니다. 한 나라로 보자면 그 나라의 독특한 전통과 역사성을 가진 문화를 지켜나가는 것들이 그런 것들에 대항할만한 문화라고 볼 수 있겠고, 그것을 협의적 차원에서 보자면 지역은 지역대로 지방정부가 형성되었든 안되었든지간에 나름대로 삶의 현장에 끈끈하게 묻어있는 땅과 거기에 스며있는 향기를 일구어내고 변화, 발전시켜나가는 지역문화의 역할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런것들이 또한 전통적 지역문화가 갖는 재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용택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전라북도의 문화적 특색이 뭔가를 보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고 또 오늘날 많이 활성화 되어있는 국악 또는 판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것들은 결국 농경문화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화 형태를 바탕으로 생성된 것이랄 수 있겠는데요. 그것이 오늘에까지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재창조되고 또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놓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지역문화가 아닐까요. 따라서 이러한 자산을 살려내는 노력이 아까 송만규 씨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UR이라는 거대한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것만이 그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계적인 것을 만들수는 없잖아요. 예컨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판소리의 문화는 우리만이 발전시킬 수 있고 우리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럴때 지역문화라는 것이 보편성을 획득하고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지요.
지방자치 1년, 지역 문화행정 1년
이종민 지역문화의 소외는 문화가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분업화나 전문화와 연관이 되겠습니다. 어쨌든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뽑은 민선지방정부가 문화정책을 입안할테니까 뭔가 구체적이고 지역민들의 정서에 합당한 지역문화가 활성화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속에 1년이 지났습니다.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역문화의 현황은 어떤가를 이야기해보지요.
유기하 민선자치단체장 취임 이후 지역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아직은 좀 이르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도청을 출입하면서 지방자치 1년 특집 평가를 얼마전에 했는데, 지난 1년을 놓고 지방자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조금 무리스럽지 않은가 싶어요. 변화를 요구하기에는 1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 아닌가요. 예를 들어 예술회관같은 문제도 지금 이야기 하기에는 진도가 너무 안나갔고, 문화정책이 지방자치의 틀안에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기도 어렵지요.
김용택 분위기가 어떤가 하는 정도가 되겠지만 저는 그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은정 그렇지요. 그런데 너무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과 이번 1년을 비교해보면 지난 10년동안 이루어졌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자체가 우리에게 이러게 무서운 급류와도 같구나 실감했는데요, 다른 부분 정치, 경제 같은 부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90년대가 지니는 의미는 무척 크잖아요. 지자체 출발 1년의 성과라는 표현 보다는 그 시작이 갖는 의미와 방향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가늠하고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기하 민선단체장 출범 이후에 가장 중요한 행정의 변화로는 어제(8월 8일) 내무부장차관 회의에서 5개 시도에 문화관광국 신설을 허가해준 일이겠는데요. 제가 오늘 토론을 위해서 문화예술계에 들러서 각 시도별 문화예술 예산현황을 뽑아보았는데, 거의 1조에 가까운 전체 도 예산 가운데 3억을 약간 넘기는 정도, 그러니까 대단히 미미한 정도에 지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제 민선지사 취임 이후에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 하고 또 문화관광국도 신설되었으니, 앞으로 예산도 많이 늘어날 것 아닙니까 했는데 막상 담당자들은 그렇게 큰 기대는 아직 하지 않는 분위기에요. 문화관광국 역시 우선 기구만 만들어 놓았지 실제로 거기서 무엇을 하고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송만규 제가 느끼기에도 아직은 가시적으로 큰 변화가 왔다 이렇게 체감되지는 않아요. 이제 일년이 조금 지났는데 지자체가 들어오는 초기 단계 아닙니까. 지금 시기는 뭔가 장단기적인 계획이 없이 누가 지원 요청하면 들어주고 또 이게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속에서 예산이 투입되고 이런 식의 가시적인 사업들이 펼쳐지는 단계가 지금 아닌가 생각되요. 아까 처음 이야기하면서 전북도가 21세기를 내다보면서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지금 지사나 시장 각 단체장들이 임기중에 실현시키지 못할지라도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완벽하게 만들어 낸다면 이후 지역문호가 탄탄하게 세워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규헌 저는 지방자치제 1년과 연관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치가와 행정가는 심리적으로 업적 위주지요. 투자되면 효과가 나야하고 반응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문화예술은 투자를 해도 잘 보이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당분간 지방정부가 문화예술쪽에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해결방법은 문화예술인들이 앞서야 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행정에 요청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춘천에 10년 동안 있다 왔는데 춘천인구가 20만이 못됩니다. 그런데 이런 도시에서 국제 인형극축제를 합니다. 인형극축제를 하는데 시가 먼저 앞장서서 하지는 않아요. 거기 연극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지요. 선진국에서처럼 문화가 곧 경제다. 또는 <쥬라기 공원> 한편이 자동차 150만대를 판 수익과 맞먹는다랄지 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당분간은 문화예술쪽이 뭔가 기획을 하고 그 사람들이 단합을 하고 만들어내고 요청을 하고 그래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도연 그런 과정이 정상이라고 보는데요. 지난 1년 동안 도는 상당히 많은 일에 앞장을 서왔지요.
이규현 민선지방정부의 의욕이 넘치는 경우가 꽤 있었지요. 어쨌든 도지사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닙니까.(웃음)
문화예술 전문관료가 필요하다.
박병도 당장의 성과를 내다보는 에드벌룬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직은 관에서 주도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정체적 기획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디서 나오고 있으며 실현 가능성에 대한 타당성은 조사가 된 바가 있는지, 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정책적 모토가 내세워져 있다면 그것에 대한 주위 여론이나 공청회는 거친 바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문화예술 파트에 지원을 할 때 그런 일들은 어떤 채널을 통해서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지원의 구체적 진행상황은 어떤 그라프를 그리고 있는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김용택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대로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정책화시키는 팀이 대개 어떤 분들이 있나요.
유기하 바로 그점 인데요. 제가 이번에 취재를 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확인했는데, 담당계장이나 문화예술계 행정 공무원들이 그런 일들을 맡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요. 그런데 세계소리축제라는 행사는 봅시다. 지금 준비되고 있는 서예대전이나 소리축제 이런 행사들이 모두 기획단으로 모인 행정 공무원들이 서둘러서 하는 일인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교육청에 출입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현재 도교육청에 있는 장학사나 장학관들이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미 자식들이 대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시집,장가 다 보낸 사람들이거든요. 교육현장의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지금 제 아이가 중학교, 국민학교 다니는데 저는 실제로 문제를 피부로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나 이런 사람들은 젊은 40대나 30대로 해야한다 이렇게 이야기 했었는데, 문화정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요. 실제 문화예술에 관한 행정을 도에서는 예산집행만 하고 이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선정되어야 제대로 효과가 있을 것이예요.
김용택 그렇죠.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관리들이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잘못된 관행과 분위기속에서 안주해왔다고 봅니다. 이번 도에서 내놓은 자료도 군대식으로 도표화되어 있고, 사고의 범위가 너무나 좁아요. 문예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 전반에 대한 종합능력도 없고 제가 보기에는 이런 식으로 문화정책을 입안하다 보니 정작 바람직한 성과는 가져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때문에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정책화한다고 했을 때는 전문인 집단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직접 입안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정책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게 없고 그냥 자기들이 앉아서 만들어내다 보니까 너무 얄팍하게 되지요. 그런 것이 너무 많이 보여요.
윤덕향 지금 말씀하신 중에 근본적으로 정책의 문제다 이런 말씀인데, 여기 도에서 나온 두권의 책자를 보면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문화행사 기획안이지요. 문민정부가 되었다 어쨌다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가 싶어요. 정부 자체가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정책을 고민하고 그 방향을 연구하기보다는 문화행사에 대한 계획만 있지요. 도에서 이제 문화관광국을 신설하고 그 앞에 ‘문화’자가 들어갔습니다만 그것 역시 어떻게 운영될지 걱정이 됩니다. 지방정부 역시 그 정책을 어떤 식으로 잡아나갈 것인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논의도 없이 문화행사만을 연구하고 도에서 문화관광국을 신설했지 않습니까? 혹시 문화관광국의 궁극적인 목표가 관광정책이라든가 관광행사를 위한 것은 아닌지, 문화는 단지 그 앞에 수시거로 들어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원도연 중요한 것은 문화예술인들와 정책입안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봅니다.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어떻게든 지사나 시장만 만나려고 하고 또 단체장들은 여러 가지 경로로 얻어진 정보들에 대해서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지요. 그럴 때 관료조직이 기능을 다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거지요. 일선에서 문화행정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이 정보를 종합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또 지사가 그들의 의견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조건에서 문화정책의 핵심은 어떻게 그같은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민주적으로 가져갈 것이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요.
윤덕향 아까 이종민 선생님도 문화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문화라는 것이 어떤 행사나 공연을 말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것만이 문화라면 한국문화도 필요없지요. 미국문화를 옮겨다 놓으면 되지요. 또 아까 김용택 선생님 말씀하실 때 문화관료들이 히트쳐서 좋은데로 가겠다는 생각이다 하셨는데, 그 사람들은 히트쳐서 좋은데 갈 생각은 아닙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지금 문화를 기획하거나 행사를 주도하는 문화팀의 경우는 재수없이 밀려와서 그 자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가면 됩니다. 히트칠 생각도 않고, 사고 없이, 거기서 더 나쁜 곳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시간만 채우고 다른 곳으로 가면 그것은 영전이니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문화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한 행정공무원들의 인식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요구가 있어서 요청을 한다해도 대부분 수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까 예를 들어주신 춘천이나 전남의 경우 가능한 수용하겠다는 자세라고 갖고 있어서 우리보다는 훨씬 교감이 있지요.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의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주변에서 어떤 안을 제시했을 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수용하겠다는 의지 자체도 극히 빈약한데 어떻게 문화행사가 제대로 설정될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문화정책이 입안될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에서 저는 문민정부 이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컨대 춘향제의 경우 관주도에서 벗어나서 민간으로 넘기겠다 이렇게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을 기획하는 공무원들의 경우 이러이런 것들은 해야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전라북도에서 향토축제라는게 똑같아 지지요. 미스 춘향 뽑고, 미스 고추장 뽑고….
문화예술인과 문화정책의 관계는
이규현 그 말씀에 공감을 하는데 언뜻 생각하니까 쉽게 말해서 건설쪽의 경우 인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돈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인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문화예술의 경우 돈이 없지요. 거기에 가면 그림이라도 한 장 잘 얻을 수 있다 그런 소문이라도 났다면 좀 다를 수 있을텐데.(웃음)
이종민 그대도 조금은 안바뀌었을까요. 지방자치제 전과 지금을 놓고 보면.
유기하 저는 어쨌든 문화정책이든 문화행사가 되었든 현재 자치단체장들의 의지는 상당하다고 봅니다. 문화진흥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윤덕향 물론 저도 비관적으로 생각을 않고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뭔가 비판을 했는데 대안을 제시한다면 예컨대 제도적인 장치 같은게 마련되어야 합니다. 관료들이 이것 저것 다 감독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기획에 대한 목표나 의식을 확실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