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 | [문화저널]
지역문화의 쟁점
지역문화, 세계화와 세계성 확보의 차이
글/김은정 전북일보 문화부 기자「문화저널」편집위원
(2004-02-12 12:30:28)
문화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사상을 규정한다. 이를테면 문화는 당 시대의 삶을 총체적으로 규정하고 반영함으로써 내일의 삶을 제시하는 지렛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삶은 그러한 문화로 감당되어지며 따라서 내일의 참된 삶은 문화를 올바른 이정표로 세웠을 때, 담보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지역의 문화가, 혹은 한 나라의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 나라의 문화가 지니는 자주성이 역사성과 각 지역의 개별성이 응집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면 각 지역의 독창적 문화요소야말로 그 나라 문화의 뿌리를 다지고 뻗어나가게 하는 바탕이랄수 있을 것이다. 지역문화가 개성있는 모습으로 가꾸어지고 발전되어 그 독창성을 살려가야한다는 당위성 또한 여기에 있다.
문화의 시대라 예견되는 21세기를 맞아 각 지역 단체들이 지역문화의 의미나 가치에 관심의 무게를 실어내기 시작한 것도 이런점에서 본다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움직임은 지방자치의 건강한 실현을 위한 중심에 이제 문화가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북도도 예외는 아니다. 지자체 실시 이후 전북의 문화행정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들어서 있다. 그 가장 큰 변화는 자치 단체장의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인식, 그 실천의 방법으로부터 찾아진다.
도는 최근 조직을 개편했다. 그 내용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문화관광국 신설이다. 기존의 문화체육과를 문화예술과와 체육과로 분리하고 문화예술과에 문화계와 예술계를 별도로 독립시키는 개편을 두고 문화예술계에서는 지자제 실시 1년 동안 얻어진 가장 값진 변화의 몫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문화예술분야의 행정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확실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러한 정책 변화가 과연 전북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껏 즉흥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수많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나 그 문제점에 대한 기본적인 치료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해지지 않고서는 문화행정의 전문성 확보란 헛된 구호에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자제 1년의 변화를 놓고 볼 때 문화예술인들의 이러한 우려의 시각은 설득력이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지방정부의 문화정책에 기본적인 전략이 세워져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화 발전에 있어 전략이란 곧 문화발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이를테면 문화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틀이다. 이러한 틀이 올바로 세워지지 못하면 문화 발전책은 자칫 공염불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전북도의 문화정책이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문화 정책의 기본적인 전략 자체가 미흡하거나 보다 엄밀히 따지자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북의 문화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은 거개가 문화행정의 기본적인 전략부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한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회성 행사의 차원을 뛰어넘지 못하는 각종 문화행사들과 생색내기 차원을 크게 뛰어넘지 못하는 관의 문화단체 지원활동,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그것이 그것인’ 향토 축제, 투자에는 인색하고 성과에만 급급한 겉치레 사업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8월 중순, 전북도는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기념해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개최 계획을 발표했다. 전북이 옛부터 서에의 고장으로 전통이 깊으니 그 명성을 바탕으로 서예의 본고장으로서 세계 축제를 만들자는 뜻이다. 세계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상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이름부터가 지역의 독창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지적을 한다. 각 지역마다 〈비엔날레〉의 형식을 빈 행사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때에 그 물결에 편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다 오히려 주체성을 상실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행사 이름을 가지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말 전북지역의 중견서예인들은 두 차례의 모임을 마련했다. 전북지역의 서예 전통을 되살리고 그 발전 틀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 과정에서 기획되었던 행사가〈창암서예대전〉이었고 이들은 이 사업을 전북도 제 1백주년 기념사업안으로 도에 의뢰했다. 그러나 결국 채택도지 못했다. 예산상의 문제며 기획력의 미흡 등이 이유가 되었겠지만 아무튼 도가 서예인들의 의욕을 묵살한 이후 의욕적(?)으로 내놓은 것이 그 취지가 별반다를 것 없는〈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이다. 창암 이삼만 선생의 예술세계와 그가 내려놓은 튼실한 서예의 전통을 잇는 자리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서예인들은 사업의 이름에서부터 지역의 독창성을 찾고자 했지만 결국 성사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도가 지향하는 세계화의 실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화의 세계화는 우리것을 얼마나 서구적인 것으로 만드느냐의 문제이기 보다는 독창적인 지역 문화의 자산을 발굴하고 창출해 내고자 하는 의지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정책으로 설정해 놓은 주요내용들은 대부분 개발의 논리에 맞추어져 있다. 문화를 현재의 경쟁력 개념으로 보는 때문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자치단체들이 지향하는 문화 상품의 논리는 단순한 개발에만 맞추어져 있다. 문화자산들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나 연구 없이 즉흥적인 치장으로도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은 오히려 지역 문화의 독창성을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흥적인 발상에 의해 실적 위주로 치닫는 문화사업들은 자치단체장의 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임기 동안 이루어내야 하는 일에 급급해 있는 한 지역 문화는 결코 창조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우리는 단체장들이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무지개빛 청사진을 선물로 받아야 했던가. 또 그 청사진들은 장식적인 말들만 나열해 놓은채 새 단체장의 임기와 함께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민선자치단체장이 들어서고 3개년, 5개년, 10개년 계획이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저 일상적인(?) 일처럼 관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방자치의 올바른 실현을 지향하는 민선단체장들의 의지 또한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분출되고 있지만 그 의지는 개인적인 문화적 성향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자치단체의 문화발전을 바람직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비젼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문화의 특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탁상 공론식으로 문화정책을 꾸려내는한 그 문화정책은 요란한 빈수레로 전락하기 쉽다.
문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바탕은 전략이다. 그 전략은 향토의 문화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으로부터 창출된다. 문화전문관료가 전무한데다가 문화 담당 부서의 전문성 마저도 보장되지 않은 여건에서 머리만으로 짜낸 문화정책이 신뢰를 받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자치 단체가 문화정책을 공론화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중요하다. 토론을 수용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일은 지방자치단체가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가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문화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공론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있다.
도는 최근 전라북도문예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하기 위해 전라북도지사 직속하에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두겠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전문예술단체를 지정 운영하고 건축물에 문화공간설치를 권장하며 미술 장식을 의무화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해 전라북도 미술위원회를 둔다는 규정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 조례에 대한 문화계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다. 그동안 도의 문화정책이 수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로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탓이다. 문화정책은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실천과 전략에 있다.
지역 문화의 세계화와 지역문화의 세계성확보, 그 차이를 아는가. 그렇다면 우선 지역문화의 독창성을 창출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라.
‘물먹었다’는 예향의 문화관료들
전북도가 마련해 최근 도의회에 상정한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 조례안’ 초안이 문화와 체육분야를 한 분야로 합쳤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북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몹시 분개했다. 도는 내무위소속 도의원들이 이에 대해 강하게 질타한 뒤에야 문화 부문과 체육부문을 따로 나눴다.
지난해 임기가 끝난 도립국악원장에 기대와는 달리 행정관료 출신이 임명됐을 때도 문화·예술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었다. 도립국악원장 자리는 지방 별정4급으로 돼 있어 문화·예술인들이 임명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인데다 전임 원장도 관료출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가 최근 거액을 들여 후원한 예술 행사가 사기성이 짙은 행사로 막을 내리자 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의 문화·예술정책이 근시안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더구나 판소리의 발상지임을 자랑하며 문화·예술의 본향임을 자부해 온 터가 아니던가!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이렇듯 잘못된 문화정책이 빚어지는 주요한 원인으로 단체장의 안목부족과 관료들의 전문성 결여를 꼽고 있다.
현재 전북도 행정조직 가운데 문화·예술부문을 담당하는곳은 내무국 산하 문화체육과와 도립국악원, 예술회관, 익산지구문화유적지 관리사업소 등이다. 여기에 일선 시·군의 문화공보실에서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이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일반행정직 공무원들이다.
이들 가운데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거나 높은 안목을 지닌 사람은 매우 드물다. 전문지식은 고사하고 감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화·예술분야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공무원들도 찾기 어렵다는 게 문화·예술인 들의 지적이다.
행정조직 속에 문화·예술분야의 전문인들이 몇몇 일하고 있기는 하다. 도청 문화체육과에는 지방 별정 5급에 해당하는 문화재 전문원과 조경관, 지방 6급에 상당하는 학예연구사가 있고, 도립국악원에는 계약직 연구원 2명이 있다. 그러나 숫자도 적을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고 제한적이다. 더욱이 이들은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모르는 신분상의 제약을 안고 있다.
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은 크게 보아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문화·예술단체 지원활동과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육성해 개성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활동으로 나눠진다. 현재 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은 단체지원활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어떤 행사가 좋은 행사이고 어떤 행사가 사기성 있는 행사인지를 가려낼 만한 분별력조차 없는 실정이다. 문화정책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단체장과 문화계 각 부문을 연결시켜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화행사를 기획할 만한 전문관료는 전무하다.
이 분야 공무원들의 업무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대개의 경우 이 분야로 전보되는 공무원들은 이른바 ‘물을 먹었다’며 서운해 한다. 국악원이나 예술회관에 전보되면 승진이나 도청 전입을 위해 잠시 쉬어 가는 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1년정도 대충 때우나 보면 다른 자리로 옮길 터이니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러니 자료나 know-how의 축적을 기대하기는 무망한 노릇이다.
도청 산하기관의 한 관계자는 “예술회관은 단순한 대관기관으로 전락했고 국악원은 수많은 지역공연을 싼값에 되풀이하고 있다”며 “문화와 예술에 진정한 애정을 지니고 문화·예술인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안목 있는 관료를 한 명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현행 공무원 채용 직종에 문화행정 전문직이 포함돼 있지 않은 이상 문화전물 관료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대신 별정직이나 전문직의 채용을 늘리고 이들의 신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관련분야의 발전을 위해 집중적인 힘을 쏟도록 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업무의 연속성과 우수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일정기간 문화분야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인사상의 혜택을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밖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연수부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문화행정 연수교육을 장기연수로 확대해 안목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고 지방 대학의 대학원에 지역문화정책과정을 신설해 공무원들이 전문관료로 성장할 수 있는 길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도 대부분 자신들의 전문성 부족을 시인하면서 전문관료 육성의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도청의 한 관계 공무원은 “지금처럼 공무원들이 관행에 따른 일 처리에 안주할 경우 별다른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지만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전문성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도의 조직이 개편돼 문화관광국이 새로 생기고 문화체육과가 문화예술과와 체육과로 분리되면서 문화예술계가 문화계와 예술계로 나뉘는 것은 문화·예술분야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