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 | [문화저널]
조선후기 문화사 이해의 길라잡이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이태호, 학고재, 1996)
글/최선주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2004-02-12 12:29:56)
우리 나라의 미술사 연구는 서양의 장구한 역사에 비해 매우 짧으며 연구 또한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미술사 연구의 성과는 부분적인 것에 치우친 경향이 없지 않으며,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 집약시킨 결과물 역시 만족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한 시대의 미술을 쳬계적으로 밀도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흔하지 않은 실정이다.
전남대 이태호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 발표하였던 글 가운데 조선후기 사실주의와 통하는 글만을 모아 일부 수정하고 보완하여 다양한 예술분야 중에서 트히 회화의 문ㄴ화역량이 풍부하였던 조선후기의 회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이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하여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미술사가 단순한 그림의 해석에 그친 도판해설이 아니라 작가의 하나의 그림을 화폭에 담아 내기까지의 감정과 분위기를 이해하려고 우리산천의 골짜기 골짜기를 발로 뛰어 화가가 그린 작품의 그린 장소를 찾고 그림과 실경을 직접 비교하는 철저함과 부지런함으로 미술사학도들에게는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작가가 숨쉬었던 한시대의 정치 문화 역사 그리고 사회문화등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그림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통한 당시의 주변 정경과 삶의 양상들도 추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76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일반인들도 조선후기의 문화사를 이해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책의 구성은 모두 5장으로 이뤄졌다. 제 1장은 18~19세기 회화의 전반적인 화풍(畵風)을 개관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이 시기의 사회변동과 회하의 동향을 조선풍 독착성 사실정신으로 집약시켰다.
제 2장에서는 진경산수화를 다루고 있는데 조선후기 대표적인 진경산수화가인 겸재 정신을 중심으로 한 정선화풍의 변모와 영향 및 쇠잔의 양상들을 체계적으로 다룬 「정선 진경산수화풍의 계승과 변모」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또한 당대 문인화가들의 젼경 산수화에 대한 이념과 이 시기의 대표적 문인화가인 심사정, 이인상, 강세황, 정수영 등이 우리 나라 산천을 기행하고 거기에서 감명받은 부분을 표현한 「문인화가들의 기행사경」편이 수록되었다.
제 3장에서는 우리 나라 풍속화의 발생과 전개, 풍속화가 회화사 분 아니라 문화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학계에서 지금까지 연구되었던 결과를 토대로 저자의 견해를 진솔하게 소개하고 그 이전의 풍속화적인 요소와 풍속화로서 지녀야 할 조건 등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다룬 「조선후기 풍속화의 발생과 문인 화가의 속화」라는 글이 있다. 이와에도 풍속화가 어떻게 우리 화단에 정착되었고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에 의해 결정을 이루다가 19세기에 와서 왜 사라지게 되었는가를 사회적 변동과 함께 깊이 있게 고찰한 「조선 후기 풍속화의 유행과 퇴조」라는 두 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제 4장에서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유형과 양식변천을 조선 후기 뿐 아니라 조선왕조 전체를 대상으로 다룬 「초상화」와 조선시대 회화 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동물화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동물화」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제 5장에서는 저자가 책이름을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이라고 붙인 이유를 알수 있게 하는 사실의 의미를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실주의적 회화론」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 장에서는 「공재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을 중심으로 각각 추론하고 있어 기록이 영세한 조선후기 화가 연구의 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공재 윤두서는 조선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로 서민들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아 조선후기 풍속화를 꽃피우게 하는 풍속화의 선구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며, 실학 사상가로 우리 역사에 많은 부분을 새롭게 하였던 다산 정약용의 행적을 통한 예술적 형성 배경과 사실주의적 서화론, 단아한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회화를 통관하고 있는 회화론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 분야에서 지나치기 쉬운 문화사적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높다고 하겠다.
저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직접 작품활동을 습득한 바탕 위에 홍익대 대학원 미학 미술사학과에서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였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 근무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작품 분석 또한 구도 기법 양식 이외에 도 미세한 부분까지 들춰 내어 매우 세밀하게 다룬점이 돋보인다.또한 저자는 조선후기 회화사 연구 뿐 아니라 고구려 고분벽화를 중심으로 한 많은 논문을 쓴 바 있다. 우리의 문화중심이 서울에 편중되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자료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 미술사가들이 현재 화단의 동향을 간과해 버리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광주에 있으면서도 한 달에 서너 번씩은 서울 인사동 화랑 골목과 박물관을 기웃거리면서 끈질기게 새로운 자료들을 섭렵하고 안목을 키우는 부지런함으로 「우리시대 우리미술」이란 미술평론집을 낸 바 있다.
끝으로 저자는 가끔 작품의 진위에 따른 시비로 곤혹을 치룬 적도 심심찮게 있다. 이것은 터놓고 자기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 학계의 풍토에서 바라볼때 일종의 반란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저자의 왕성한 연구 활동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의 진위 여부에 따른 저자의 의견은 지금 당장 혹독한 비판을 받을 지언정 논쟁의 쟁점을 부각시켜 관련 분야의 심층적 이해를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회화의 문외한인 필자가 이 책을 서평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며, 숲만 보고 나무를 못보는 것으로 생각되어 저자의 넓은 식견과 진지한 연구 성과에 두고두고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