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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 | [문화저널]
제 50회 백제 기행 지지리 냇가에는 물고기가 산다.
글/이혜경 기전여중 교사 (2004-02-12 12:29:24)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불볕더위 속에서 ‘물고기가 사는 냇가’로 백제기행을 간다는 기대는 한줄기 소나기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곤 하였다. 민지 말대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언제나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과 설레임 한켠에는 정현이를 데려갈까 말까 망설임이 작지않았다. 다섯 살배기를 데려가면 다른 분들께 페가 되지 않을 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남편이 같이가면 덜 미안하겠는데 다른 곳에 가야한다고 하낟. 얄밉게도 남편이 간다는 모임의 출발시간과 장소도 백제기행과 같다. 아무튼 가보자는 심보로 두 아이와 함께 버스에 올라보니,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마치 융치원 야유회가는 버스처럼 꼬마 손님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역시 50회 기행이라 다르기는 다르구나! 이제 백제기행에도 신세대의 바람이 불어오는가? 휴가철이 막바지에 이른 탓인지 버스 뒷켠이 비었다. 저번에 민지와 함께 참가했을 때는 좌석을 메운 기행 참가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는데. 출발이 늦어지는데도 아이들은 불평이없다.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그저 설레임만 찰랑댄다. 하긴 김은정 기자는 한달 전부터 두 조카가 말썽을 피울때마다 “17, 18”한마디로 원상회복을 시켰다니 꼬마 손님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눈매가 선해보이고, 검게 그을린, 당당한 체구의 아저씨가 땀을 훔치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올라오신다. 아하, 저분이 물고기박사 이완옥 선생이로구나. 작년 휴전선 기행에서 생태계에 관한 탁원한 강의와 함께 수많은 유행어를 히트시켰다는 분이구나. 그런데 늦으셨네요. 출발! 우리가 탄 차가 도심지를 벗어나자 서로 돌아가며 인사를 시작하였다. 낯익은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한 식구이다. 이완옥 선생은 얕보지 마시라고 온 가족이 참석했는데, 자신을 비롯하여 사모님과 두 아들의 몸집으로 충분히 밀어부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신다. 전공이 어류이고 복어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는데 그 후 온 가족이 복어처럼 배가 나왔다나.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더니 옛말이 맞다. 자료집에 소개된대로 장수는 참으로 외진 곳이었다. 타지사람들이 장수로 첫 발을 디딜 대 너무 외져서 겁이나 울고 떠날 대는 장수 인심에 정이 들어 섭섭해서 운다고 한다. 저 멀리 길게 뻗은 산맥과 사이사이 푸른 논을 그리는 평지가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한다. 돌담너머 흙벽을 올린 집을 보았다. 풀을 뜯는 아기 염소 곁에 까치가 앉아있다. 버스가 지나가도 옆 날개짓으로 조금 물러서기만 한다. 까치가 염소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었나 보다. 산기슭 송전탑은 은빛으로 빛난다. 어미소와송아지가 실개천 옆에서 다정하게 풀을 뜯는다. 이런 풍경은 민지가 재재거리며 내게 일러주던 것들이다. 비포장길로 들어서자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요동이 심하다. 가파르고 좁은 길을 계속 올라가니 꼬마들의 비명이 자지러진다. “청룡열차 탄 것 같애.” 비행기재를 돌아가는 구비는 끝이없다. 여기서도 산자락을 깎아 길을 넓히고 있다. 푸른 산이 맨살을 드러내고 신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완옥 선생은 이틀 동안 계속해서 “개발이 보존에 우선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시는데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다면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얹어야 할까? 창밖을 휘둘러보기 여러 차례. 정말이지 지지리는 지지리도(?) 멀고 깊은 곳, 험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위대한 인간들이 여기까지 찾아와 피서하고 있다. 길가에 주차한 승용차를 비켜가느라 우리가 탄 버스는 다시 몸살을 앓는다. 삼천리가 죄다 유흥지로 변했다더니, 우리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얘들아, 우린 깨끗하게 다녀가자. 아! 산이 저리 고울 수 있나! 이 산골짝에도 벼는 자라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푸르름이익어 노랗게 변하고있다. 하차하여 잠시 걸으니, 우리의 목적지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에 위치한 동화초등학교 지지분교가 나타난다. 여기는 행정력이 잘 미치지 않던 동네라더니 학교이름도 앚기 바뀌지 않았다. 하긴 새마을운동도 비켜간 동네라고 했지. 어쩌면 이렇게 작은 학교가 있을까? 교실 두 칸, 앞에 운동장, 뒤에 사택과 화장실. 비교적 넉넉한 운동장으로 사내애들이 달려간다. 어느새 어우러져 공을 차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끼지 못하는 작은애들은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잠자리를 쫓는다. “엄마, 여기는 시골이라서 그런지 잡기가 쉬워요. 도시에는 차들이 많으니까 잠자리가 잽싸게 피해야 살잖아요. 그런데 시골잠자리는 그럴필요가없나봐요.” 민지는 연신 흥겹게 종알댄다. 즐거운 저녁시간. 돼지소금구이는 먹어 본 사람만이 맛을 안다. 그것도 창원(에서 오신)정판사가 준비한 것이라면. 여기서 정판사는 법조계가 아니라 출판계의 용어임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 송 사장님 왈, “너무한다. 너무해, 나도 한점 주쇼.” 옆에서 누가 거든다. “이러다 바닥나는 거 아뇨?” “이제부턴 냄새만 맡아요.” 설거지를 하러 학교 옆 계곡으로 내려갔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이완옥 선생이 제일 먼저 물가로 달려 오더니 버들치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아올린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고기보다 날쌘 동작으로 후려치듯 잡아야 할텐데 저 체구로 어떻게 잡나 궁금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다정한 손길로 외부의 압력을 느끼지않게 조심하면서 내집이구나, 내노는 물이구나, 이런 느낌을 안겨주며 살짝 들어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강연을 들었다. 주제는 ‘전북의 민물고기’였다. 운동장에 설치한 슬라이드를 보면서 자세한 설명을 함께 들으니 물고기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사는 물고기는 900여 종 이상인데 그중 민물고기가 189종에 이른다고 한다. 민물고기 가운데 49종이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특산종, 다시 말해 고유종이고, 이들 고유종을 포함한 대부분의 물고기가 외국학자들에의해 려지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가슴 뿌듯하고 놀라운 사실을하나알았다. 경제적으로는 바닥을 기는 전라북도에 우리나라 담수어 189종 가운데 101종이나 서식하고 있단다. 농경지가 넓다는 것은 큰 하천을 끼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산업화가 뒤진 덕분에 오염이 덜 되어 많은 어종이 살아남은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이 사실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전북의 수계의 특징으로는 남해와 서해로 흐르는 대형 하천이 여럿이고 변산의 백천, 고창의 인천강 등 특징적인 소하천이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이 산업화를 위한 인위적인 조작으로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존이개발보다 먼저”라거나 “무식하니까 용감하다”는 이 선생의 말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진하게 배어있다. 그 물고기가 그 물고기 같았는데 자세히 배워보니 다 다르다. 제일 깨끗한 계곡에 산다는 버들치, 금강산에 살고 등지느러미에 검은 점이 있고 노란 줄무늬를 지닌 금강모치, 변산 백천에만 사는데 급격하게 수가 줄어들고 있는 부안종개(이 물고기는 이 선생님이 찾아낸 종이다.), 전주천 하리 다리에서도 발견되는 새코미꾸리, 전북의 하천에서만 발견되는 좀구굴치, 거품을 내서 새끼를 키우는 버들붕어, 참종개, 임실납자루, 칼납자루, 말뚝망둥어 등등. 참 물고기도 많다. 메기는 배가 터질때까지 먹고, 꺽지는 지 몸무게의 열배를 먹고, 자가사리는 윗입이 크고 아랫입이 작지만 통가리는 위아래 입이 같고, 빠가사리는 동자개의 사투리이고, 피리는 피라미의 사투리인데 숫컷을 불거지라고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내 고향에서는 불거지를 갈피리라고 불렀다. 이름이랃 남긴 물고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름도없이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는 물고기도 있을 거라는 말을 들으니 처연하고 답답했다. 이 선생은 포크레인이 한번 지나가면 물고기가 10여종이 사라지고, 회복되는 데 최소 50년은 걸린다고 지적한다. 그전에 기계가 한 번 더 지나간다면 더 말할 것이 무어랴.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개발공약을 남발했던 단체장들이 환경보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공약이 허튼 소리로 그쳐도 좋으니 늦어지더라고 제대로 개발했으면 좋겠다. 이어서 판소리 공연이 있었다. 학생대사습에서 장원을 했다는 내일의 명창 장문희씨가 심청가 가운데 청이가 남경상인을 따라 떠나는 대목과 춘향가 가운데 어사상봉하는 대목을 불렀다. 어린이들이 매기는 추임새는 엉뚱한 대목에서 터져나왔지만 예쁘게 봐주기로 하자. 들어보아야 맛을 알지. 진도 아리랑이 장작더미 위로 불꽃을 타고 올라간다. 흥에 겨워 김정수 씨가 기타를메고 나온다. 정말로 연주할 셈인가? 강 화백 따님이 노래를 한다. 다음은 누구지? 꽁무니를 빼고 숨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숙소가 따로 없고 교실 바닥이 잠자리이다. 칠판에는 단원명이 세 개나 적혀있다. 그래, 고실이 두 칸이니 세 학년이 함께 공부를 해야지. 40명 한반보다 20명 세 반이 훨 씬 나을지도 몰라. 우리 아이들은 처음 접하는 딱딱한 잠자리가 영 맟선 모양인지 뒤척이고 있다. 이런데서 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거야. 덩달아 뒤척이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깨어보니 새벽 바람이 서늘했다. 계곡물에 손을 담그니 흠칫 손이 먼저 놀란다. 산안개는 아침 햇발이 솟구치는 눈치를 채고 무지개빛으로 흩어진다. 앙ㄴ개로 병풍을 두르고 단장을 하던 앞산 뒷산이 서둘러 나아온다. 그래, 화장은 끝만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은 수틀을 뒤집어 놓은 꼬락서니와 다를게 없다. 수면에 얼굴이라도 비추어 볼까하고 고개를 숙여 보지만 계곡을 타고 흐르는 시내에는 거울이 뜨지않는다. 물고기를 만나러 여기까지 와야 하다니 좋은 풍경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져서 발길을 돌렸다. 어른 아이가 모두 들떠서 물가로 내려갔다. 실물은 역시 느낌이 다른모양이다. 미리 짐작했던 대로 보들치,갈겨니, 자가사리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다. 버들치는 누르스름한 바탕에 갈색 점이 있고, 갈겨니는 버들치보다 색이 더 선명한 것 같다. 그렇지만 몇 번 더 들여다 보아도 쉽게 구분이되지않는다. 이완옥 선생은 물속에 있는 녀석도 위에서 보고 이름을 일러 주시는데 거기있는지 찾아내기도 힘들다. 자가사리 꼬리에 노란 반달 무늬가 없는 것을 보면 이 냇물은 낙동강수계가 맞다고 설명을 덧붙이신다. 높은 계곡에 산다는 꼬리치레도롱룡도 보았다. 어린 꼬리치레도롱룡은 아가미가 입 밖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물고기 비린내를 싫어하는 편이다. 어떤 물고기들은 생김새가 징그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기행에서, 살아남은 물고기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느끼며, 자세히 보면 다 제 모습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엄마, 하루살이가 1급수에 살지요? 여기는 돌을 들추기만 하면 하루살이가 많아요.” 민지의 말을 듣고 돌을 들추어 보니 구물구물거리는 하루살이들이 정겹다. “여러분, 내일이면 볼 수 없는 물고기들을 만나고 계신 겁니다.” 이 선생의 말이 거짓이기를 빌고 또 빈다. 아니, 거짓말로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을 해 본다. 한쪽에서는 물놀이를 시작했다. 저렇게 좋을까? 내가 어릴적엔 다가산 밑에서도 목욕을 했었지. 애기바우니 각시바우니 하던 자리는 다 어디로 숨었을까? 이러다 먹는 물도 수입에 의존할 날이 올지도 몰라. 쌀도 들여오는 판인데. 물고기가 없는 나라라니. 길이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된 조국이 이런건 아니겠지. 생각에 잠기는데 난데없이 물벼락이 쏟아진다. 누구야? 송사장님이 아니면 누가 시작했겠어. 먼저 뒤집어쓴 진순 씨가 명창과 고수를 끌고 들어가 -물귀신(?)-그러다 보니 내 차례가 돌아왔던 모양이었다. 그래, 이 물을맞으러 여기까지 달려온거야. 소중하기도 해라. 위쪽에서는 정현이가 태호 삼촌을 따라다니고 있다. 마음껏 놀아보렴. 출발을 몇 번씩 외쳤는데도 물놀이 터에 미련이 남아 투정이 들린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찾을 때는 더 맑은 계곡이기를, 더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기를 기원하였다. 집에 돌아가거든 합성세제는 아예 출입금지를 시켜야지. 기름기 묻은 그릇은 종이로 닦아낸 뒤에 씻어야지. 물을 아껴야해. 아이들에게 오늘의 경험을 되살려서 물고기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라고 일러두는 것도 잊지말아야지. 다음 기행에는 새벽장에 가을을 팔러 간단다. 식구가 다 모이면 얘기를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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