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6.9 | [문화저널]
옹기장이 이현배의 이야기 쪼쟁이의 곰발바닥과 무국
문화저널(2004-02-12 12:27:35)
경남 산청에서 흙을 싣고 밤늦게 왔는데 아내가 마중 나와 있었다. 태풍이 오고 있다는데도 밤하늘은 고요하고 별은 쏟아질 듯 많기도 한 밤이다 밭가에 수숫대가 표정 있게 서있는데다 그 그림자가 기어이 한마디하게 한다. “좋다. 참 좋다.” 아내가 “정말 좋죠?” 하면서 “우리집 좀 봐요. 그림이죠?” 한다. 이런저런 풀과 나무들의 그림자가 그려진(?) 우리집이 참 좋다. 아니 우리는 같은 곳을 보았지만 같은 것을 보지는 않았다. 아내는 풀과 나무 사이의 하늘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다. 꺽 이맘때를 좋아하지만 아내는 나무 사이의 하늘을 좋아하고 나는 그 나무가 드리운 그림자를 보면 그림쟁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생기곤 한다. 아내가 “십년 전으로 돌아갔으면.....”한다. “십년 전? 십년 전이면 당신 언제 때요?” 했더니 “대학 사학년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요.”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졸업작품과 졸업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작품을 끝내고 아내는 오늘 같은 시각에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졸업시험에 「문학과 사상」이란 과목이 있는데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묻는 문제가 있어요. 현배 씨는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참으로 당돌한 여대생이다. 왜냐하면 상대가 쪼쟁이(직장에서 점잖게는 chocolate man이라 했지만 별칭으로 쪼쟁이라고 했다)이니 말이다. 현배 씨는 이렇게 대꾸했다. “나, 문화니 사상이니 그렇게 거창한 거 몰라요.내가 조리를 전공한 사람인데 이런 것은있어요. 그 귀하다는 곰발바닥 요리나 흔한 무국이나 재료가 귀하고 천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조리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 제대로 조리되어 제맛을 내면 한 밥상에 같이 놓일 수 있지요. 곰발바닥이 귀하고 값진 재료라고 해도 제맛을 못 내면 상에 오를 수 없고요. 같으 ㄴ식으로 우리 사회가 예술인이면 그 자체가 뭐가 되어 그게 행세고 방편이기 쉬운데 그럼 안되지요. 예술인의 역할까지는 모르겠어요. 아니 예술인 스스로는 알 거예요. 무엇이든 남보다는 자기가 먼저 자기를 잘 알 수 있잖아요. 안다고 하는 자신이 충실하면 우리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 질 거예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