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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 | [문화저널]
영화 평론가들이 꼽은 나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이 지긋지긋한 삶을 떠나라
글/이효인 영화평론가 (2004-02-12 12:26:43)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 여자가 있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다 보고난 후 내가 혼자서 중얼거린 말이다. 이 영화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메라는 수시로 흘러다니며 대사는 생략되거나 압축적이고 주인공의 감정과 정서는 현실성과는 상관없이 도드라져 있다. 도대체 있을 법한 얘기만으로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퍼뜨린 문화산업이 되지 못한다. 아니 적어도 구경거리도 못된다. 여기서 리얼리즘과 ‘구경의 쾌락’ 사이에 놓인 경게선은 파르르 떨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경계에 대한 얘기는 다른 자리로 미루자. 이 영화는 참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과 사건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 물론 우리가 겪는 일상 중에서 또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느 해괴한 사건은 정말 있을 법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자주 있다. 영화, 예술, 문화상품은 이런 헛갈림 속에서 존재 가치를 가진다. 아내로부터 버림받고 아이마저 빼앗긴 주인공이 지독한 알콜 중독으로 쓸쓸하게 죽는다. 그리고 그만큼 삭막하게 살아온 여자가 마지막 임종을 지켜준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들의 쓸쓸한 삶이라기 보다는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주인공들의 ‘대표성’이다. 그 대표성응ㄴ 포스트모던에 대한 백 마디의 언급보다는 더욱 가볍고 그래서 그만큼 폐부를 찌르낟. 그러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포스트모던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처치 곤란해 하는 ‘근대적 삶’에 - 과학과 이성이 우리의 삶을 보장해 줄것이라는-대한 강철같이 단단한 비판이다. 하지만 이 비판은 결H 직접적이지 않다. 우리가 행복해 하는 동안 누군가는 불행에 울고 있다는, 우리가 90년대에 들어와서 까맣게 잊어버린, 참으로 평범한 사실의 자각을 유도하는 ‘뒷발질’이다. <시네마 시네마>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 온 영화 글/김지석 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 몇 년 전에 소개되었던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작품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아마도 관객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자극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영화와 관객은 추억을 떠올리는 주체와 그 대상의 관계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관객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과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추억을 음미할 뿐이다. 이것은 영화란 곧 꿈이며, 먼 가상의 세계라는 영화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얼마나 영화의 세계에 뛰어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영화로 보여 준다면 얼마나 새롭겠는가, 아니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현재 전세계에서 이란영화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두 명의 걸출한 감독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수퍼스타급 감독이지만 이란 내에서는 또 다른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인기에 미치지 못한다. 마흐말바프는 말하자면 이란의 국민감독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가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95년에 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가라는 소박한 주제를 가지고 한 편의 세미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마흐말바프감독의 신작에 출연할 신인배우 공모에 응모한 일반 시민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장면을 모아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어떻게 그러한 영화가 만들어지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최근에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본 적이없다. 배우지망생 가운데는 말 그대로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아들을 영화배우시키기 위해 데려왔다가 자기가 테스트를 받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자기는 인상이 험악하기 때문에 악역만 해야 한다는 순진파, 파리로 간 애인을 만나기 위해 스타가 되어야 한다는 순정파 여인, 배우시켜주지 않으면 자리를 뜨지 않겠다고 버티는 막무가내파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작품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하기는 하지만 마흐말바프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다시 <시네마 천국>으로 돌아가 보자. 누구나가 다 영화에 대한 추억은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나와 거리가 먼 세계이다. 마흐말바프는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몰려든 5,000여 명의 일반 시민들을 보며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자기 스스로에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영화가 일반 시민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가상의 세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영화와 일반 시민이 함께 어울리는, 같은 세계의 일원이 되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영화관이 탄생한다. 물론 과거 영화사를 돌이켜 보면 일반인이 다 함께 참여하여 영화를 만든 목적은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영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그래서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말흐말바프에게 있어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과정이야말로 그의 영화의 핵심이고 주제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영화 100년 간 서구의 폐쇄적인 영화관이 지배해 온 영화세계에 반기를 드는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카메라테스트에 참여했던 5,000여명이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었고, 실제로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제 비로소 영화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영화 탄생 100주년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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