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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 | [문화저널]
농민의 사랑과 농민의 희망을 담았다 전북여성농민노래단 제1집<청보리 사랑>
글/원도연 「문화저널」펀집장 (2004-02-12 12:26:14)
그들은 활짝 웃고 있다. 세상을 향해 냉소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삶을 스스로 자박하지 않는 건강함이 그 속에 있다. 그 웃음 속에서 우리는 땀흘려 일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참된 자유함을 발견한다. 단장 윤애경(28.순창군), 총무 오은미(31.정읍), 심영선(33.정읍), 강명희(30,완주), 박연희(30.정읍), 이경숙(30.군산)으로 구성된 전북여성농민노래단, 이 여섯 명의 용맹한 여전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시작한 시절 좋은 애호가들도 아니다. 어쩌면 대한 민국 땅에서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서 소젖을 짜고 뙤약볕 아래서 고추밭을 매면서 집안일을 챙기고 농민회에서는 어김없이 제 몫을 하는 억척부인들이 그들이다. 이들 여섯 명의 여성농민들이 모여서 지난 28일 <청보리 사랑>이라는 노래 테이프를 만들어냈다. 봄부터 시작해서 여름이 다 가기까지 아이들을 들쳐업고 농삿일과 합숙 노래연습을 번갈아 치루어내면서 만들어낸 값진 성과들이었고, 헌신적으로 전체 과정을뒷바라지한 여섯명의 남편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20여 명이 넘는 숫자가 일구어낸 꿈같은 결실이다. ‘이 세상의 농민마음 다같은 마음/ 사람답게 살자는 게 농민의 마음/ 못배웠다 무식하다 욕하지 마라/농민들도 아직까지 죽지않았다.’ (농민의 세상)그들이 이 테이프에 담아 낸 14곡의 노래들에는 ‘아직 농민들은 죽지 않았다.’는 그들의 가슴찐한 선언으로부터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이땅의 농사일을 놓지 않는 절절함이 담겨 있다. ‘세찬 바람도 거센 눈보라도 두렵지 않다/ 모두 내가 거쳐야 할 삶의 통롤다 맞서야 한다/ 보라 들판에 얼어 붙은 눈 속에 꿋꿋하게 뿌리내린 밀과 보리.’(나의 사랑 밀과 보리) 고된 농삿일과 투쟁 속에 강철같이 단련된 이력에 결맞지 않게 그들의 노래는 고운소리결로 윤기가 흐른다. 그 속에서 그들은 힘써 일한 하루의 쓸쓸함을 섬세하게 노래하기도 한다. ‘사래긴 콩밭에 종일토록 호미질/ 짜디짠 소금땀 저녁 바람에 식고/지친 어깨너머 해가 저문다/ 어서야 집으로 가자.’(콩밭을 메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노래하는 여성농민들이 되게 했을까. 그들은 무엇보다도 농민의 노래에 대해 절실한 필요를 느꼈다고 했다. 이 노래단의 오은미 총무는 노래를 통해서 농민으로서의 자부심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기쁨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은 93년 9월으 노래일꾼 수련회에서 부터였다. 노래를 통해 농민들이 처한 삶의 조건들을 이야기하고 여성농민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던 노래단이 지금의 이름으로 발족하면서 현재의 멤버들을 갖춘 것은 94년 5월.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만나 같이 입을 맞추고 본격적인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23일 경희대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처음 섰다. 노래단의 공식적인 데뷔무대였던 셈이었다. 전국무대로 공식공연을 시작한 노래단은 작은 농민대회와 각종 집회에 초청되었고, 올해 3월에는 한국여성개발원이 주관한 한국여성대회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렇게 불리워진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이 힘을 얻는 것을 보면서 노래단의 그들의 노래가 갖는 힘을 확신했다. 그들이 처음 자신들의 노래를 테이프로 제작해서 전국의 농촌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95년 초부터였다. “농민이라고 해서 문화적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노래 부를 기회를 갖지 못하는 농민들에게 자신의 삶 속에서 나온 노랫말고 곡조들이 농민들을 스스로 격려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장 윤애경 씨의 말이다. 또한 박연희 씨는 4개월 동안의 연습을 거치면서 우리의 노래사 속에서 농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노래를 만들고 직접 불렀던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어떤 책임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노래단의 맏언니로서 중심을 잡고 있는 심영선 씨 역시 잘사는 농촌에 대한 기대와 노력이 어쩔수 없이 한계지워지는 상황에서 여성농민들의 노래가 농민들 모두에게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농촌을 둘러싼 구조적인 억압들에 맞서 싸울때 늘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 용맹한 아마추어들은 노래를 대하면서도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여성 농민들은 여성과 농민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이경숙 씨는 말한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 속에서 나온 노래들을 통해서 인생의 참 맛을 느끼고 살아가는 문화란 무엇인가를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내노라하는 대학을 졸업한 재원들이었지만 자신 앞에 주어지는 수많은 기능성들을 뿌리친 채 농촌에 들어와 그 삶속에서 전혀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넉넉한 가슴에는 물론 민족의 미래와 통일된 나라의 밥상에 대한 염려까지 담겨져 있다. ‘...반 만년을 피땀으로 지켜 내었다/ 이 민족을 살려 낼 씨앗 뿌리자/ 함경도 옥수수와 김제 만경쌀로/ 우리 민족 밥상을 만들어 보자/통일 농업 생명농업 남과 북이 맞잡은 손/ 수입파도 거세어도 우리는 또 지켜 낸다.’(통일 농사꾼) 하나의 테이프가 5천여 개의 상품으로 제작되기까지 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을 수없이 만나왔다. ‘무식이 용맹이었다’고 말한 강명의 씨는 무엇보다도 1천 1백만원의 돈은 여섯 명의 노래단원이 각각 얼마씩을 각출하고 거기에 도 농민회의 지원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래단이 고마워하는 것은 테이프가 제작되는 과정에 헌신적으로 참여한 박트리오의 존재였다. 노래단의 매니저 역할을 자임하면서 테이프 제작기획에서부터 연습과정과 자켓 디자인까지 일일이 뛰어다니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박홍규 씨, 처음에는 노래단을 시큰둥하게 여겼지만 그들의 노래를 듣고 감동에 젖어 곡을 내주고 직접 노래를 지도 했던 광주의 박종화 씨, 전북여성농민회 부회장으로 들판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일어나 노랫말을 만들고 거기에 곡을 붙여 이번 테이프에 다섯곡의 노래를 만들어준 박찬숙 씨 등이 해산의 고통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물론 거기에는 누구보다도 이 여섯명의 농민가수(?)를 탄생시킨 남편들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 아내들의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 힘을 얻었고 살아있는 노래가 주는 감동에 은혜받았다는 그들은 테이프가 만들어지는 동안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두 배로 일해야했다. 오은미 씨의 남편 최형권 씨는 “고생 많았지만 사람들이 와서 노래를 듣고 힘을 받아가는 것을 보면서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테이프가 노오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노래단은 더욱 바빠질 것이다. “최선을 다했고 아쉬움은 없다. 우리는 역량 이상의 일을 해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더욱 자랑스럽다.”는 그들은 앞으로도 ‘가장 아마추어다운 아마추어’로 남겠다고 말한다. 이 노래들이 농촌현장 엄마들의 노래로 불리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아직도 자못 봉건적인 농촌의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노래, 육아와 가사에 관련딘 노래들을 불러 보겠다는 것도 뜻깊은 소망도 갖고 있다. 테이프 제작의 전과정을 기획하면서 자신도 뜨거운 감동 속에 신명으로 일l했다는 박홍규 씨는 이 테이프가 ‘도시가 농촌을 이해하는 매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농민의 삶이 아직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 노래 테이프를 계기로 농촌이 지금 어떤 문제들로 아파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80년대의 꿈과 의지를 간직했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이제는 아예 뒤돌아서서 거꾸로 달려가고 있는 착잡한 현실을 우리는 본다. 그렇게 지치고 포기하면서 뒤돌아서서 가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고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삶의 노래들은 진정으로 힘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전북여성농민노래단(0652.231-9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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